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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실섹시 Nov 19. 2023

30대의 삶 - 6

신념은 결코 지엽적이지 않습니다.

작년 여름 지독한 폭우로 내 생활 반경 안의 지역들이 침수된 장면을 직간접적으로 목격했다. 침수의 주원인은 도시 곳곳의 배수로가 이물질로 인해 막혀서 발생되었고, 주 이물질 중 하나로 담배꽁초가 지목되었다. 


나는 흡연자다. 그리고 담배를 좋아한다. 

그러나 기호식품인 만큼, 누군가에게는 혐오를 불러일으킨 다는 사실 또한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그리고 담배 자체보다 흡연자에 대한 혐오 또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왜냐하면 흡연자들이 흡연과 동반하는 태도 때문이다. 새 담배를 사서 겉면에 포장된 플라스틱 껍데기와 곽 내부의 은박 종이를 휙 집어던지고, 흡연하는 도중 단전에서부터 가래침을 끌어모아 뱉는 것은 물론 거진 틱장애가 아닌가 의심이 되는 침 뱉기, 그리고 아무 데나 투기되는 담배꽁초까지. 특히나 그 주된 투기 장소는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는지 늘 하수구이다.


10년이 넘은 흡연자로서 이러한 태도를 일삼지 않았다고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작년에 발생된 홍수 피해를 보고 충격을 받아 적어도 담배로 인해 발생된 쓰레기만큼은 절대로 아무 데나 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하여 지금까지 썩 애를 쓰고 있다.


그 과정에서 꽤나 읍소를 하고 싶은 것은, 우리나라는, 특히 서울은 쓰레기통이 없어도 너무 없다. 뿐만 아니라 흡연자들이 마땅히 흡연할 장소도 없다. 온라인에서 흡연자들에게 향하는 질타의 수준은 기호식품이 아니라 혐오식품으로 규정되어 마땅하다. 담배에 붙는 세금은 금연을 위한 복지제도로만 활용이 되는 것인지, 금연만을 조장하는데 나는 당장에는 금연할 생각이 없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흡연권이 보장되지 않는 것에 대해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상당히 복잡한 이해관계가 엮여있다. 한국의 영토는 상당히 제한적이다. 그리고 서울 같은 밀집도시에서의 쓰레기 처리는 상당히 골치 아픈 문제다. 잉여 영토가 없는 한국에서 쓰레기 소각을 위한 장소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며 행여라도 지으려고 한다면 온갖 반대에 부딪힌다. 누구라도 내 집 앞에 쓰레기 소각장이 생기는 것을 반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어느 곳으로 운반하여 처리하자니 그것을 운반하는 데에는 어마무시한 비용을 필요로 하며, 운반된 곳은 천혜의 자연이 있는 곳으로 쓰레기가 처리되면 엄청난 오염을 발생시킬 것이다.


이렇게 몇 달간을 '시스템 개선이 어떤 식으로 되어야 할까'를 고민했던 것 같다. 그리고 더 이상 골치를 썩기보단 그냥 혼자서 나만의 흡연 에티켓을 지키기로 약속했다. 첫째. 절대로 담배꽁초나 담배로 인해 발생된 쓰레기를 쓰레기통이 아닌 곳에 버리지 않을 것. 둘째. 아무 데나 침을 뱉지 않고 가래를 끌어모으는 소리를 함부로 내지 않을 것. 뭐 말하자면 품격 있는 흡연을 즐기자는 나만의 신념이다.


내 지인은 꽤 오랜 시간 남양유업 상품을 소비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특별히 남양에 대한 엄청난 비난을 하지도 않는다. 왜냐고 물어보면 그냥 담백하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냥 본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에 대해 소비를 보이콧하고 그렇게 조용히 지킨다. 다른 지인은 늘 보부상 같은 가방에 텀블러를 들고 다니며 카페에서도 텀블러로 커피를 받는다. 그리고 빨대를 쓰지 않는다. 그렇다고 일회용품 사용을 병적으로 경기를 일으키진 않는다. 다만, 피할 수 없이 사용할 때는 다소 유감스러워한다. 휴지 소비를 지양하려 손수건을 들고 다니는 지인도 있고, 외국인 친구들 중 베지터리언 친구들도 종종 있다.


위의 신념들에는 당연히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바닥에 침을 뱉고 악! 하고 탄식할 때가 있으며, 꽁초를 마땅히 버릴 곳이 없어 들고 이동하다가 쓰레기통이 아닌 쓰레기 더미가 쌓여 있는 곳에 투기하고 마음 불편해한다. 

남양유업을 악질적으로 운영하던 운영진은 교체된 지 꽤 오래되었다. 지금은 이전과 아예 다른 운영진이 운영하고 있고 해당 기업 산하에 얽힌 수많은 노동자들은 이러한 보이콧 기조로 인해 일자리를 잃게 될 수도 있다.

텀블러를 만드는 데에는 일회용 플라스틱 컵보다 더 많은 탄소와 미세플라스틱을 발생시킨다고 한다. 손수건은 보통 저렴한 아크릴 섬유가 사용되곤 하는데 아크릴직물은 재활용이 대단히 까다롭고 비용 측면에서 효율이 적은 것으로 알고 있다.


지인들 모두 이러한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그들만의 신념을 지키며 살아간다. 가끔씩 맞닥뜨리는 무례하고 냉소적인 몇몇에게 공격을 당해도 그들은 '그건 그렇지' 하고 유연하게 받아치고 그들만의 신념을 유지한다. 


살다 보니 이렇게 복잡한 이해관계에 얽혀있는 다양한 이슈들을 맞닥뜨린다.

그리고 그 복잡한 이슈들 가운데에서 시스템에 대한 분노만 드러내는 것에 피로감을 느낀 개인들. 싸움보다는 개인의 행동으로 자신만의 방식대로 정의를 펼치는 사람들이 멋지게 느껴진다. 한편으로는 귀엽기도 하고.


작은 신념들이 모여 자존감이 되고 위기가 왔을 때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버팀목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아무리 쓸모없어 보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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