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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실섹시 Sep 01. 2024

30대의 삶 - 24

여행의 의미

3년 만에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아니 어쩌면 혼자서 여행을 결심하고 다녀온 건 처음인 것 같네요.


저는 원래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성격상 휴가를 가려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공수를 들이는 편이고, 늘 누군가와 함께 갔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동행들과의 이익(즐거움)을 위해 피로를 무릅써야 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또 요즘의 여행은 나의 즐거움과 행복보다는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목적으로 작용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더 기피했던 것 같습니다. 저에게 휴식의 목적은 나를 위한, 나와의 시간인데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여행을 간다? 저에게는 부적절한 로직이라서 가성비가 맞다는 판단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온전히 휴식의 목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만 있겠다는 일념하에 5일간의 휴가를 공표했습니다. 그렇게 이틀을 먹고 자기만 하다가 문득 '오픈카를 타고 해안가를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급발진하듯 처음으로 혼자서 제주 여행을 결심하고, 출발이 4시간도 남지 않은 비행기표를 급하게 예매하고, 1시간 만에 숙소와 렌터카, 공항 주차장을 예약하고 즉시 급하게 짐을 싸서 김포공항으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번 여행을 통해 왜 여행이 현대인들에게 일종의 필수재가 되어야 하는지를 깨달았습니다.


- 삼십육계 줄행랑이라는 말의 참 뜻을 체감한 것 같습니다. 

늘 도망치는 것은 비겁하다고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기질적인 성격상 그리고 지금까지의 '잠실섹시'라는 멋을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책임감'이라는 요소와 '도망'은 대조적이기 때문에 늘 그 태도를 비겁하다고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책임감을 올바르게 실행하기 위해서는 삶의 현장에서 도망치는 과감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새로운 환경에서 맞닥뜨리는 새로움은 그대로 정신의 환기로 작용이 되었습니다. 주말에 하루 이틀 집에서 쉬는 것보다 갑절은 단축된 시간만으로도 완벽한 휴식이 되니 놀라울 정도로 체력이 회복되었습니다.


색달 해수욕장 존잼. 파도가 엄청 세다.


- 무계획도 계획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불안이 높은 기질적인 성향 탓에 무엇을 해도 늘 머릿속에 계획을 세우곤 합니다. 그러니 여행이라는 새로움을 맞닥뜨리기 앞서서는 그 성향이 더욱 발현되는데 그래서 여행이 저에게 늘 피곤한 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이 실현되던 순간부터의 테마를 '무계획'으로 세웠습니다. 목적지가 없는 드라이브, 검색 없이 맞닥뜨리는 음식점에 들어가기, 무슨 해변인지도 모르는 해변에 뛰어들어 수영하기, 시간을 보지 않기, 등 불안을 잠식시키기 위해 소비하던 모든 것들을 내려놓으려고 부단히도 애썼습니다.


그러니 이내 불안은 잦아들고 되려 맞닥뜨리는 상황과 환경의 행복이 더 민감하게 와닿았습니다. 마음이 대단히 가벼웠고, 더할 나위 없는 자유로움을 느꼈습니다. 


일이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었을 때에 느끼는 만족감을 최상위 행복으로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통제할 수 없는 것들마저도 통제하고 싶은 욕심을 부리며 과도한 스트레스에 시달린 것 같습니다.


내가 누리던 행복을 위해 채택한 계획이라는 편리들이 되려 단순한 행복의 로직을 더 방해하는 것 같습니다.


숙소 선택할때 1층에 일하기 좋은 카페가 있는 것을 조건으로 했는데 하필 묵는 기간동안 카페가 문을 닫았다. 그래서 근처에 있는 카페에 가서 일하다가 바로 앞에 있던 흑돼지집.
사실 검색없이 아무 음식점을 가는건 좋은 생각은 아니다. 생각보다 맛없는데 더럽게 비싸서 짜증났다.

- 현대인들은 해방감이 필요합니다.

바야흐로 결핍의 시대인 것 같습니다.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엮여있는 현대인들의 네트워크는 과도한 경쟁의식을 부추기고 현재와 만족에서 동떨어진 삶을 삽니다. 특히나 서울이라는 화려한 도시에서의 삶을 적정 수준으로 영위하기 위해서는 대단히 피로한 몸부림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존재만으로 온전하다'는 위로에 눈시울을 붉히다가도 어느새 경쟁에 뛰어들어 현재의 충만함에 안주하면 도태된다는 두려움에 떨며 내일의 나를 위해 오늘의 나를 희생시킵니다.


욜로족을 옹호하는 것은 아닙니다. 욜로족은 제가 가장 혐오하는 인간 부류입니다.

그러나 내일의 존재가 현재의 존재로 인식될 수 있을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우리는 우주의 순리에 따라 사는 이방인들이기 때문입니다. 현재와 오늘의 나는 '존재'로써 인식되고 있습니다. 내일의 존재를 위해 오늘의 존재를 과도하게 희생하면 그 인식은 희미해지고, 희미해진 존재의식은 우울감으로 이어집니다. 


현재를 명확하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네트워크로부터의 해방감이 필요합니다.

과도한 연결로부터의 해방에서 우리는 현재의 존재를 인식하고, 현재에 대한 명확한 인식부터 내일의 존재를 위한 움직임의 시발점이 됩니다.


너무 충만한 4박 5일이었습니다.

앞으로 스스로에게 주기적으로 휴식을 부여하고 삼십육계라는 책략의 힘을 무시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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