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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 - 그리스에 대한 모욕

2006, 잭 스나이더 감독

by 로로


가끔은 이런 오락 영화도 봐줘야 한다.

사실 볼 마음은 전혀 없었는데 누군가가 재미있다고 해서, 그리고 한 때 인구에 회자되었던 영화이기에 봤다.

중간쯤 그만 보려는 유혹을 이기고 끝까지 봤다.

액션을 얼마나 잔인하게 잘 담았느냐는 관점에서만 본다면 그나마 인정할 수가 있다.


이 영화가 담은 역사적 사건은 고대 그리스 역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한 장면이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실제 역사와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고 왜곡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테르모필라이 전투로 알려진 (영화 속의) 이 전투는 스파르타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벌어졌으며 스파르타가 지휘를 한 것은 맞지만 엄연히 그리스 동맹군의 전투였다.

이 전투에서 시간을 끌어줌으로써 아테네가 주도한 해군이 페르시아에게 큰 타격을 주었고, 그 후 유명한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아 함대를 괴멸시키는 고대사의 중요한 한 페이지가 전개되었다.


이 영화는 페르시아(그럼으로써 현재의 이란)에 모욕을 주기 위해 만든 영화처럼 보인다.

할리우드가 이런 짓을 하는 것은 그들의 오래된 특기이기에 이상할 것도 없다.

페르시아인들을 흑인으로 묘사한 것은 페르시아뿐만 아니라 흑인에 대한 모욕이기도 하다.

야만으로 묘사된 영화 내용과는 달리 당시 페르시아는 근동에서 가장 선진적인 국가였고, 그 당시로서는 가장 고차원적인 종교인 조로아스터교를 발전시켰고, 고대 제국 중에서 다른 민족에게 관용을 베푼 거의 유일한 민족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용 정책으로 인해 구약성서에는 페르시아 황제를 유대민족을 해방시켜 준 메시아라고까지 묘사되기도 한다.

이러한 페르시아를 피에 굶주린 야만족으로 묘사했다는 것은 웃기는 일이지만 늘 그러하듯 할리우드니까 그러고도 남는다고 하겠다.


그런데 사실 더 중요한 것은 이 영화가 페르시아에 대한 모욕을 넘어서 그리스에게 치욕을 가한다는 점이다.

그리스 문명의 위대성은 무엇보다도 이성적인 사고에서 찾을 수가 있다. 영화의 테르모필라이 전투가 벌어진 BC 480년에서 단지 8년이 지난 후 그리스의 대규모 축제에서 아이스킬로스의 비극 <페르시아 사람들>(Persians)이 상연되었다. 이 연극은 테르모필라이 전투를 페르시아인의 입장에서 바라본 것으로 페르시아인들의 고통과 아픔에 공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생각해 보라. 한국 전쟁이 끝난 후 8년 후에 북한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본 영화나 소설이 나온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아마 작살이 날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그러한 일을 해낸 민족이었다. 이 영화가 담고 있는 그리스, 특히 스파르타는 오로지 가슴에 왕(王) 자가 새겨진 근육질로만 묘사되고 있지 않은가?


이 영화는 페르시아와 그리스에 대한 모욕이지만 한 가지 정확하고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사실은 있다. 그것은 할리우드 오락영화의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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