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의 사유
이직의 사유는 보통 딥딥딥빡이다. 남들보다 딥딥딥빡에 쉽게 도달하는 지름길을 탑재하고 있는 나는 남들보다 이직의 횟수가 많아 본의 아니게 프로 이직러가 되었다. (물론 아주 어릴 때는 “자기계발”이 이직의 사유가 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딥딥딥빡이었다. 나는 아니지만 이 외에 퇴직 사유들은 출산 및 육아, 진학, 건강상의 이유 혹은 개인적인 이유 등이 있을 수 있다.) 최장근속기간이 3년이라 그 과정에서 수많은 회사들에 서류를 제출해봤고 여러 회사의 면접을 본 경험이 있다. 그 과정에서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있는 “프로 면접러의 일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오늘은 프로 이직러의 일기를 써보려고 한다.
텃새
제일 힘든 건 텃새다.
100% 겹치는 직무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직러는 새로운 일을 배워야하고 새로운 사람들에 적응해야하고 새로운 시스템에 익숙해져야한다. 이를 가로막는 가장 큰 허들은 이직한 직장에 오래 근무한 직장동료들 중 텃새를 부리는 자들이다.
이직을 하면 할 수록 사람에 대한 기대감이 상당히 낮아지기 때문에 감정적인 부분보다 가장 큰 실질적인 불편함은 “업무 비협조”이며 “정보 차단”이다. 생산성을 낮추는데 기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도움이 될 사람에게는 관계 형성을 위해 적극적으로 주도적으로 노력해야하는 반면 그렇지 않는 사람은 관계를 재빨리 정리하는 것도 (멘탈관리 차원에서)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심심한 사람
가장 위험한 유형의 사람은 심심한 사람이다.
오래 다닐수록 업무를 처리하는 숙련도 높은 노동자가 될 확률이 높은데 (물론 아닌 경우도 있다) 이들 중 업무 자체의 속도가 빠르지 않고 성향상 특별히 일을 벌이거나 야망이 크지 않은 동료들은 일상이 참 심심하다. 많이많이 무료하다. 대놓고 자기를 즐겁게 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특히 활동반경의 제약이 있는 곳일수록 심심한 일상을 채울 때에는 엔터테인먼트가 필수적이다. 일상을 소화해내는 유일한 낙이 될 때도 있다.
언론매체로 타블로이드니 찌라시가 있듯이 역사적으로 꿀잼을 선사하는 행위는 뒷담화다. 뒷담화의 매력은 재미라는 요소도 있지만 뒷담화를 나누는 상대들의 관계가 돈독해지는 사회적인 효과가 있다. 뒷담화의 대상은 연예인 보다 너와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 선호된다. 재미가 배가된다!
주로 공공의 적인 리더가 될 때도 있지만 새로 조직에 합류한 사람은 금방 타깃이 된다. 신상은 그 존재로 늘 흥미로운 법이니까. 씹히는 대상이 되지 않을 수는 없고 (새로운 사람이 물 밀듯이 흘러 들어오지 않는 이상) 최소화하는 방법은 low profile, 즉, 조용히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며 눈에 띄는 언행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심심한 사람의 눈과 관심은 이직한 그대를 향해 있을 것이다.
확성기와 부채질
심심한 사람 중 가장 위험한 사람은 확성기이다!
확성기란 작은 소문도 재빨리 퍼뜨리는 사람을 지칭하는데 (내가 붙인 용어이다) 사내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원활하게 형성된 곳일수록 실시간으로 퍼진다. 그리고 소문의 대상자에 대한 대미지를 크게 확대시키면서 평판으로 자리잡힐 수 있도록 확성기들은 부단히 노력한다. 미워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 미운털이 박하는 건 어렵지 않다. 그리고 그 미운털이 박힌 바로 그 순간 그 대미지를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다.
본인의 의견을 전파하는 과정에서 확성기들은 반대 견해를 지니고 있는 그룹의 사람들에게 본인이 지닌 영향력을 활용하여 부정적인 관점을 심어준다. 그래서 작은 불씨가 큰 불씨로 번질 수 있도록 부단히 부채질을 한다. 이러한 행위는 실제 효과가 있다. 시쳇말로 이간질이라 칭한다.
그리고 합리화
나의 현재에 불만이 생길수록 방어 기제로 합리화하게 된다.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 역시 그래왔고 앞으로 안그러리라고 다짐하지 못하겠다.
가장 쉬운 자기 합리화 방법은 자기와 다른 그룹으로 분류한 대상을 공격하는 것이다. 그리고 헛점과 약점을 빠르게 파악해서 주변과 공유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나를 부각시킬 수 있다. 내가 짚고 넘어가는 타인의 단점은 나의 장점인 경우가 많으니까. 나의 존재 혹은 정체성은 이러한 일련의 행위로 확고해진다. 그리고 유의미해진다.
합리화는 꼭 직장내에서 뿐만 아니라 인생의 단계에서 깊은 굴곡이나 불만과 불안이 결합했을 때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 같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The show must go on!
얼마전 투자전문가가 올린 사적인 글 중에 “조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오랫동안 거주하는 것은 본인에게 상당히 긍정적이다”라는 말에 크게 공감한 적이 있다. 나처럼 잦은 이직은 지양하는 것이 맞지만 5~10년에 1번씩 이직하는 것은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자기(특히 주제) 파악, 즉 메타 인지 능력이 향상될 수 있을 가능성이 높고 동일 업종인 경우에는 다른 문제해결방식, 관점 등의 시스템을 체험하는 것은 영역의 확장 그리고 비판적인 사고를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업종인 경우 마찬가지로 영역의 확장으로 이어지고 본인의 skill set을 versatile하게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실제 많은 스타트업들은 versatility를 자격요건사항으로 기재하기도 한다. 빠른 변화에 더 빨리 변할 수 있는 것이 능력으로 간주되는 분야들이 점차적으로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신생 산업일 경우에는 특히.
오랫동안 한 직장에 있으면 내공이 쌓인다. 여기에서 내공이란 depth와 width를 둘 다 갖춘 것을 말한다. 내공을 가진 자는 내부의 모든 것을 자유자재로 네비게이션하며 시의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함양된다.
내공을 충분히 쌓은 후 이직하기를 권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