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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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오늘부터 마흔이네"
2021년 새해 첫날 친구들 단톡방에 메시지가 올라왔다. 보통 새해 첫날에는 기대감에 들떠 있어야 하지만 마흔이 된 나와 친구들은 그렇지 않았다. 마흔이라니 도무지 실감이 나질 않았다. 단지 한 살을 더 먹었다는 사실을 떠나 앞자리 숫자가 바뀌었다는 게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40이라는 숫자의 압박
사실 작년부터 계속 40이라는 숫자의 압박에 시달렸다. 30대로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은 예상치도 못한 순간에 나를 괴롭혔다. 유튜브에서 슈가맨 영상을 보다가도 '만약 나와 와이프가 함께 공개방송을 가게 되면 40대인 나와 30대의 와이프는 따로 앉아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슈가맨 애청자도 아니고 공개방송에 갈 생각도 전혀 없다.) SNS를 봐도 친구들은 '나의 마지막 30대 생일. 안녕 나의 30대'라고 하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친구들의 카톡 대화를 보고 있으니 왠지 기분이 다운되는 것 같았다. 무엇을 해야 의미 있는 40대의 첫날을 보낼까 고민하다가 책을 주문하기로 했다.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 '마흔'으로 검색을 하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책은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이었다.
역시 마흔이 되었으면 논어 정도는 읽어줘야 하는 걸까? 이제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같은 에세이는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인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신나게 스타크래프트를 했지만 이제 마흔이 되었으니 나이에 맞게 바둑이라도 배워야 하는 걸까?
나와 내 친구들이 마흔이 되었다고 우울해했던 건 어쩌면 저런 사회적 관념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마흔이면 당연히 논어 정도는 읽어줘야 하고 한층 더 성숙한 인격을 갖춰야 하며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그런 관념 말이다.
자연스레 어른이 되어 있었다.
문득 10년 전 이날이 생각났다. 당시 취업 준비생이었던 나는 서른 살이 되었을 때 엄청난 압박감에 시달렸다. 내가 상상했던 30대의 모습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30대라면 당연히 직장도 차도 있는 근사한 어른이 될 줄 알았는데 나는 너무나 초라했다.
하지만 30대가 된 이후에 내가 감당해야 할 일들이 하나씩 생겼고 그것들을 하나씩 헤쳐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성숙해져 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른이 되고 싶다고 발버둥 친다고 되는 것도 아닌데 10년 전의 나는 너무나 조급해했던 것 같다.
마흔이 되었다고 바로 달라지는 건 없다. 30대에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내가 감당해야 할 일들이 하나씩 생겨날 것이고 나는 한 단계씩 성숙해 나갈 것이다. 갑자기 마흔이 되었다고 어제와 다른 삶을 살지 않을 것이고 억지로 나를 바꾸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같은 예쁜 표지의 책을 읽고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40대가 된 첫날에도 스타크래프트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