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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산들 Oct 21. 2020

어쩌다 발견한 친절

십 년 만에 알게 된 사실

[이미지 출처: unsplash@unitednations]


현재 회사에 십 년째 다니고 있고 십 년째 자주 가는 몇몇 단골 가게들이 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사 먹는 토스트 가게, 출근할 때마다 커피나 음료수를 사게 되는 편의점 그리고 한 달에 2~3번은 가는 중국집이 나의 단골 가게들이다. 맛도 나쁘지 않고 가성비도 뛰어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그다지 친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토스트 가게 아줌마는 다 만든 토스트를 은박지에 사서 툭 던지며 직접 비밀 봉지에 담아 가라고 하고, 편의점 사장님은 계산할 때 손으로 카드 리더기를 가리키며 직접 카드를 리더기에 꽂으라고 한다. 중국집 사장님은 항상 무표정한 얼굴로 손님을 맞이 한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집에 있기 답답해 자전거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 도로를 달리다가 갑자기 도로 끝에 장애물이 있는 걸 발견하고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끽-‘ 하지만 너무 빨리 달렸던 탓에 몸이 붕 떠서 거꾸로 넘어졌고, 일어나서 다시 자전거를 타려고 보니 오른팔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바로 응급실로 가서 엑스레이를 찍고 걱정되는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이상이 없길 바랐지만 결과는 팔꿈치 골절. 우울한 심정으로 입원하게 되었다.


입원 기간 동안 MRI, CT 등 추가 검사를 받고 깁스하게 되었고, 앞으로 깁스를 한 채로 생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 했다. ‘연휴 마지막 날 집에서 그냥 쉴걸 왜 자전거를 타러 나갔을까.’, ‘그 길이 아니고 다른 길로 갔으면 어땠을까?’ 등등 온갖 짜증이 밀려왔다.


퇴원 후 첫 출근 날. 한 손에 가방을 들고 한 손에는 깁스를 한채 토스트를 사러 갔는데, 항상 무표정하던 토스트 가게 아줌마가 “아니 어쩌다 팔을 다쳤어. 불편해서 어떻게 해.” 라며 상태를 물어봐주었다. 내가 토스트를 집어 비닐봉지에 넣으려고 하자 “그냥 내가 할게 가만히 있어. 몸도 불편한데.” 라며 주문이 밀린 바쁜 상황에서도 따뜻하게 챙겨주었다.


커피를 사러 간 편의점에서도 의외의 친절함을 만날 수 있었다. 계산할 때 무표정으로 카드 리더기만 가리키던 아저씨는 내가 지갑에서 카드 빼는 걸 어려워 하자 직접 카드를 빼서 계산을 하고, 친절하게 다시 카드를 지갑에 넣어주기까지 했다. 갈 때마다  “몇 분이세요?”만 물어봤던 중국집 종업원도 내 팔을 보고 “조심 좀 하지 어쩌다 그랬어요.”라고 따뜻하게 물어봐주었고 내가 젓가락질을 힘들어 하자 포크를 챙겨 주었다.


아직 다친 부위가 욱신거리고 왼손으로 식사를 해야 해서 불편했지만 예상치 못한 친절함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어쩌면 지금까지 내가 그분들의 친절함을 발견하지 못했던 건 내가 먼저 무뚝뚝하게 그분들에게 다가가서가 아니었을까? 특히 출근길에 일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항상 차갑고 무표정한 얼굴로 그분들을 상대했던 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잘 몰랐던 사실을 우연한 계기로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나에게는 지난 십 년간 모르고 지냈던 주변 사람들의 따뜻함이 그것이었다. 이제는 아침에 토스트 가게와 편의점에 들어갈 때마다 내가 먼저 “안녕하세요.”라고 따뜻하게 인사를 한다. 혹시 주변의 누군가와 늘 차갑고 무뚝뚝하게 지냈다면 한 번 마음을 열고 다가가 보는 건 어떨까? 그동안 숨겨진 따뜻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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