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밀가루와 평범한 옷의 만남
<이미지 출처: 빅터뉴스>
여기 평범해 보이는 2개의 회사가 있다. 대한제분은 제분업계에서는 CJ제일제당에 이어 점유율 2위이기는 하지만 밀가루 외에 특출 난 아이템이 없었고, 4XR은 매출 규모도 크지 않고 잘 알려지지 않은 의류회사였다. 하지만 평범한 두 회사의 만남은 콜라보의 전설이 된다.
콜라보 전설의 시작
사실 처음 이 제품을 봤을 때만 해도 이 정도로 화제가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촌스러운 디자인, 밀가루를 사면 공짜로 주는 옷인지 아니면 판매를 위한 옷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부담스럽게 찍혀 있는 곰표 캐릭터와 로고. 하지만 점점 곰표 콜라보는 SNS에서 화제가 되기 시작했고, 고객들에게 곰표라는 캐릭터를 완전히 새롭게 각인시키게 된다.
큰 인기에 힘입어 곰표는 계속해서 콜라보 제품을 출시한다. 2018년 11월 곰표 핸드크림 (스와니코코), 2019년 6월 곰표 팝콘(CU), 2019년 9월 곰표 문구세트 (세븐일레븐), 2019년 11월 곰표 패딩 (4XR 2차 콜라보 제품), 2020년 5월 곰표 밀맥주 (CU)까지 의류, 식품, 문구, 코스메틱까지 다양한 산업을 넘나들며 성공한 콜라보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곰표 콜라보의 성공에 자극을 받은 회사들은 저마다 콜라보 제품을 출시한다. 폴햄 X 맛동산, 스파오 X 빙그레, TNGT X 삼양라면, 게스 X 가스활명수 등등. 하지만 지금까지 곰표를 능가하는 콜라보는 나오지 않았고, 대부분의 콜라보는 별다른 마케팅 수확 없이 고객들에게 잊혀 갔다.
재미만 있으면 성공한다?
콜라보 열풍이 막 불 때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회사들이 생각하는 곰표 콜라보의 성공 요인은 '친숙함'과 '재미'였다. 친숙한 곰표 캐릭터를 재미있게 풀어낸 게 성공 요인이라고 생각했고, 본인들의 브랜드도 고객들에게 잘 알려져 있으니 그저 재미있게만 풀어내면 성공할 것이라고 쉽게 생각했었다.
그럼 곰표 콜라보의 성공 요인은 무엇일까? 나는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제품에 잘 표현한 것이 성공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화이트 컬러의 옷과 밀가루의 이미지가 잘 맞아떨어졌고, 이 옷은 곰표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잘 나타낼 수 있는 최고의 광고가 된 셈이다.
예전에 한 식품업체에서 콜라보 제의가 들어온 적이 있다. 활발히 마케팅을 하고 있는 회사이기도 하고,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유명한 브랜드였다. 경영자분들은 이 기회를 놓치고 싶어 하지 않았고, 빨리 콜라보를 추진하라고 우리 팀을 압박했다.
2~3차례 실무자 간에 미팅을 진행했지만 도무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고객들에게 재미를 줄 수 있는 요소는 많았지만 그 식품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구현해 낼 수 있는 아이디어가 떠오르지를 않았다. 결국 무거운 마음으로 식품업체에게 콜라보 진행이 어렵다는 얘기를 전했다. 우리 회사의 경영자분들은 우리 팀의 아이디어와 끈기가 부족하다며 왜 콜라보를 성사시키지 못했냐고 질책했다.
6개월 정도 시간이 지난 후, 그 식품업체는 결국 다른 의류회사와 콜라보 제품을 출시했다. 나름 재미도 있었고 노력한 흔적이 여기저기서 보였지만 아쉽게도 제품에서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결국 발매 당일 SNS에서 몇 개의 피드를 끝으로 더 이상 그 콜라보 제품 피드나 기사를 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