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들산들 Nov 18. 2021

그 시절 김밥은 어떤 의미였을까?

모든 음식에는 추억이 담겨 있다. 어렸을 때 부모님께서 처음 사주셨던 경양식 돈가스, 성인이 된 후 처음으로 아버지와 소주를 마시면서 먹었던 가을 전어, 중국 유학 때 룸메이트형과 처음 먹었던 마라탕까지. 시간이 흘러 맛에 대한 기억은 많이 사라졌지만 그 음식들을 먹으면서 행복했던 기억은 아직 또렷하게 남아 있다.


그 음식에 어떤 추억이 남아 있는지에 따라 음식 취향 역시 바뀌곤 한다. 그 음식을 먹었을 때 좋은 추억이 남아 있는 음식은 자연스럽게 한 번 더 찾게 되고, 반대로 안 좋은 기억이 있는 음식은 꺼리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음식에 대한 호불호도 많이 바뀌었다. 그중 가장 극적으로 변한 음식은 바로 김밥이다.


어렸을 때 김밥 하면 떠올랐던 추억은 소풍 가는 날 아침에 어머니가 싸주시던 일이었다. 아침에 집 안을 가득 채우는 참기름 냄새에 눈을 떠 나가 보면 어머니는 거실 한 가득 재료들을 가득 펼쳐두고 열심히 김밥을 만들고 계셨다. 정사각형의 커다란 김 위에 밥을 정성스럽게 펼치고 그 위에 계란, 소시지, 당근, 우엉, 단무지 등을 올리고, 행여 옆구리가 터질세라 조심조심 말아 올리면 먹음직스러운 김밥이 완성되었다. 1년 중 소풍날에만 먹을 수 있는 특별한 음식인 김밥을 먹는 건 나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추억 중 하나였다.   


하지만 입사하고 김밥 사랑은 완전히 사라졌다.  사수는 본인이 조금이라도 바쁠 때면 "우리 오늘 점심은 김밥으로 하죠. OO  김밥 하나 사다 줘요. OO씨도 김밥 먹으면서 일해요."라면서 나의 점심 메뉴까지 본인이 정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무실 책상에 앉아 쿠킹포일에 꾸깃꾸깃  김밥을 하나씩 집어 먹으며 이메일을 확인하거나 회의 자료를 만드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결국 김밥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음식이 되었다. 소풍날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싸주신 김밥을 먹던 소중한 기억은 희미해지고 책상에 앉아 슬프게 김밥을 먹는 모습만이 남아 있다. 어렸을  먹었던 김밥은 어떤 맛이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거창한 음식이 아니었다. 안에 들어 있던 재료도 단출하고, 소풍 가서도 항상  먹지 못하고 남겼던 기억이 있다.


이제 김밥도 제법 비싸졌고 사무실에서 김밥을 먹을 때면 돈가스 김밥, 샐러드 김밥, 새우튀김 김밥 등등 나름 프리미엄 김밥을 먹는다. 안에 있는 재료는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아졌지만 여전히 나는 김밥이 싫고 김밥을 먹어야만 하는 현실이 슬프다. 내가 그 시절 김밥을 좋아했던 건, 새벽부터 일어나서 정성스럽게 김밥을 싸주시던 어머니의 뒷모습 그리고 친구들과 소풍을 간다는 설렘 때문이 아니었을까?


마지막으로 어머니가 싸주신 김밥을 먹은 게 언제인지 잘 기억도 나질 않는다. 어머니에게 직접 싸주신 김밥이 먹고 싶다고 하면 어떤 표정을 지으실까? 내가 김밥을 먹으면서 잠시나마 어렸을 때 걱정 없이 친구들과 놀던 그때를 추억하고 싶다는 걸 어머니는 눈치채실까? 그 시절 철없던 나, 젊고 건강하셨던 어머니, 단촐한 김밥까지 모든 것이 그리운 밤이다.


작가의 이전글 [나비효과] 후회가 우리를 괴롭힐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