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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Nov 05. 2021

생리는 괜찮은데 생리대는 부끄러워?

익명의 페미니스트로부터

나는 초등학교 4학년   생리를 시작했다.

 또래는 대부분 5학년~6학년쯤 시작하는데 나는 빠른 편이었다.

지금으로 쳐도 빠를 나이인데, 당시에는 생리에 대해서 '그날'이라고도 이야기하기 어려운 문화였으니 초등학교 교사로서 11살의  제자가 생리를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도  했을 것이다.

나는  생리부터 생리통이 심했다. 찝찝하고, 불편하고, 아프기까지 했다.  탓에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에 가서 생리대를 갈아 붙였고 수업 중에도 선생님께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손을 들었다.


선생님은 내가 화장실간다는 핑계로 어딜 가나, 나쁜 짓이라도 하고 오는  인가 (밖에 나가거나 담배를 피운다거나... 담배보단 생리가 11살에  가까운 단어 아닌가...? 아무튼) 싶은 마음에, 쉬는 시간 없이 2교시를 연달아 수업했다. 화장실에 가고 싶은 느낌과 알싸한 생리통, 축축하고 찝찝한 아래의 느낌 때문에 하루가 너무 힘들었다. 내가 원해서 지금 시작한 것도 아니고, 엄마와 아빠는 내가 이제 진정한 여자가 되었다며 축하도 해주었는데, 생리는 그다지 반가운 게 못되었다.


그날 집에 돌아가서 엄마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엄마는 알림장에, "우리 00 이가 첫 생리를 시작했어요. 처음이라 화장실도 자주 가고 싶어 했나 봐요. 잘 부탁드려요, 선생님."이라고 편지를 적어주었다. 다음날 내 알림장 편지를 확인한 선생님은 놀란 표정과 함께 미안한 얼굴로 나를 마주했고 내가 화장실에 가겠다고 하면 얼마든지 보내주겠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왠지 전 날의 기억에 부끄럽기도 하고, 화장실 가겠다고 말하는 것이 어려워져서 그냥 참게 되었다. 이때부터 생리가 부끄럽고 창피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요즘엔 광고에서도 생리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여성들은 환호를 터뜨렸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생리'라는 단어는 서슴지 않고 뱉으면서도 생리대는 여전히 까만 봉투에 담겨 나온다. 편의점에서도 생리대를 가지고 오면 자연스럽게 까만 봉투를 꺼내 주고, 받는 사람은 까만 봉투 안에 담겨있음에도 '그것'을 왠지 민망해한다.


카페에서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가 생리대를 꺼내서 화장실로 가려고 하니까 친구가 화들짝 놀라며 그것 좀 가리라고 손으로 덮어주었다. 내 나름의 용기를 내어 생리대를 아무것도 아닌 척 들고 나온 것이었는데 말이다. 회사에서는, "생리! 생리라고 해요! 왜 그날이라고 해요?!"라며 강하게 생리의 권리를 주장하던 여직원이 생리대를 꺼내기 위해서 옆자리 남자 과장님의 시선을 좀 돌려달라며 은밀한(?)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아마도 우리는 아직 완벽하게 자연스럽기는 어렵지만 노력하는 중인가 보다. 여성의 권리를, 생리의 권리를 주장은 하고 있지만 오랜 세월 생리를 '그날', '마법', '매직' 등의 암호로 부르고 생리대는 늘 안주머니에 재빠르게 숨겨 티 나지 않게 화장실로 향해야 했던 시간들이 어색하게 남아있나 보다.


 생리를 시작했을 , 엄마는 내게 작은 파우치를 선물로 줬다. 가장 귀엽고 예쁜 걸로 골라주면서, "여기에 생리대 넣어가지고 다니고, 화장실    숨겨서 들고 ."라고 했다.  후에 학교에서 파우치를 들고 화장실로 가는 친구들을 보면 '생리대 주머니를 들고 가는구나'라고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후에는 오히려 파우치도 숨기거나 가방을 통째로 들고 다니기도 했다. 대체 생리를 숨기기 시작했던 건 누구부터였을까?  숨기려고 했을까?


생리를 감춰야겠단 생각이 드는 것이 아마 생리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 때문일까 생각해봤다. 남성들 말이다. 직접 겪을 일이 없으니 누군가 가르쳐주지 않으면 전혀 모를 수밖에 없는데, 내가 겪는 일을 모르는 사람에게 이야기한다는 것이 어색하거나 부끄러울 수 있지 않을까. 매 월 생리통 때문에 휴가를 써야 할 때면 머릿속으로 몇 번의 실뮬레이션을 해본다.


나: (팀장님에게 메신저로) 팀장님, 저 오늘 생리통이 심해서 휴가 쓰고 쉬려고 합니다.

예상 1.

팀장님(남자임): (당황하며)아! 아아 오오오오 아 네네네! 네! 얼른 쉬세요!! 걱정 마세요!!


예상 2.

팀장님(남자임): (태연한 척하면서)네 알겠어요~


예상 3.

팀장님(남자임): (쿨한 척하면서) 아이고~ 알겠어요~ 걱정 말고 쉬고 내일 봐요~)

(다음날)

팀장님: (쿨한 척과 자상함을 더해) 좀 괜찮아요?


모든 시나리오를 예상해보지만, 역시 팀장님의 반응에 내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당황하는 사람도, 태연한 척하는 사람도, 쿨하게 받아주는 사람도 모두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단 생각에 '몸이 좋지 않아서...'라는 말로 돌려서 전달했다.


생리에 관심을 가져줘.

생리통이 심할 때는 응급실에 가서 진통제와 근육이완제를 주사로 맞아야 겨우 통증이 진정됐다. 구토를 하거나 현기증과 심한 통증에 기절한 적도 있다. (나만 이런 것이 아니라 많은 여성들이 생리 기간 중에 겪는 증상이라는 것이 마음 아픈 부분...) 이렇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생리통에 대해서 알아야 했다. 내가 생리통으로 고통스러워 일정을 취소해야만 한다면, 상대방이 나를 '맨날 아프기만  사람'이라고 인식하기보단 '생리통이 심해서 힘들겠구나'라고 생각하는 편이 낫다.


특히 연애를 할 때는 더 그랬다. 내가 한 달에 한번 이렇게 힘들고 괴로워하는데, 맨날 전날 만나서 놀기나 하자고 했던 전 남자 친구들 말이다. 생리가 뭔지에 대해 아예 모르던 그들 중 한 명은, 아침부터 생리통이 심해서 약을 계속 먹고 있는데도 도저히 통증이 가라앉지 않아 조금 쉬겠다고 하니, '빨리' 그만 아프고 나가자고 조르더라. 생리통이, 생리가 무슨 업무냐 빨리 끝내버리게? 나는 지금 당장 아픈데, 아픈걸 빨리 멈추라고 떼를 쓰던 그는, 미국에서 자라 그 유명한 '서양의 교육'을 받은 사람인데 생리에 대해 무지 할리 없다고 생각하다가 혹시 싶은 마음에 그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생리가 왜 하는 건 줄 알아?"

"...."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미국에서는 성교육 시간에 '콘돔을 사용하세요.'라고 할 뿐이고, 우리나라처럼 가정이나 생물시간에 생리에 대해 배우는 것도 없었다고 한다. 아마 학교마다의 차이가 있겠지만, 그가 받은 교육은 그렇다고...


남성은 절대로 생리에 대해 공감할 수 없다. 그러나 '알 수'는 있지 않은가. 생리를 왜 하는지, 어떻게 하는지, 어떤 상태인지 등등, 여성들은 글이며 동영상이며 여러 매체를 통해서 '알려주고'있는데. 학습으로라도 그 경험을 대신하여 이해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예의이기 때문에 남성들과 그 외에 생리에 대해 알지 못하는 모든 인류는 생리에 대해 공부하는 정성을 들여야 한다.


+ 생리통을 겪을 때마다 남일이란 듯 행동했던 그는 내게, "한 달에 한번 네가 아닌 다른 사람과 사귀는 것 같아."라는 망언을 뱉고 지금은 '전'남자 친구가 되었다. 바이 바이...★


'여성휴가(생리하는 기간 동안 쓸 수 있는 휴가)'는 회사의 재량.

첫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에도 어김없이 생리통으로 고생을 했다. 진통제를 아무리 먹어도 쉽게 통증이 잦아들 리 없기 때문에 '여성휴가'라는 제도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서 인사팀에 문의를 했다. 그런데 생리통이 심한 여성을 위해 '여성휴가(혹은 보건 휴가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는 무급 휴가로, 회사의 재량으로 유급과 무급이 선택된다고 했다. 당연히 내가 다녔던 회사에 그런 게 있을 리 없었고, 나는 생리하는 날마다 회사에 출근했다가 2~3시간 뒤에 통증 때문에 급히 퇴근해야 하는 것을 매 월 반복해야만 했다.


그러다 2020년부터 현재 내가 일하고 있는 회사에서도 '여성휴가'라는 제도를 도입하여 한 달에 한 번 생리통이 심하거나 생리하는 날 힘든 여성들에게 유급 휴가를 제공하게 되었다. 물론, 반차(오전이나 오후 중 택해서 쉴 수 있음)이지만...


생리휴가가 생겼으니까 한 달에 한번 내 소중한 연차를 생리에 헌납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과장님, 차장님, 부장님까지 높은 직급의 관리자들은 죄다 남자였고, 나는 그들에게 "생리통이 심해서 여성 휴가를 사용하겠습니다."라는 말을 전해야만 했다. 쉬워진 듯하면서도 여전히 어려웠다. 나는 줄곧 여초 회사만 다니고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임원이나 중간관리자들은 남자가 많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생리통 때문에 도저히 출근할 수 없는 날에 "몸이 좀 안 좋아서 쉬겠습니다."라고 이야기했지만 이제는 "여성휴가 사용하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어 마음이 편하다. 이전 회사에서 우리 팀 팀장이었던 최대리가, "아픈 거 맞아?"라고 빈정댔을 때 "생리통 때문에 약을 다섯 알 먹었는데도 계속 아파서요."라고 말했고 그는 당황하며, "아;; 그럼 얼른 가서 쉬어야지. 빨리 정리하고 가."라고 말했다.

지금이야, 그게 당황할 일인가?라고 생각도 들지만 그때는 '그러게 최대리 이 자식아, 적당히 아프다고 했을 때 보냈으면 서로 편하잖아?'라고 생각했다. 생리를 무기 삼을 생각은 없지만, 우습게도 무기가 되어버린다. 그것은 여성이든 남성이든, 연령대가 어떻든 관계없이 '생리'가 서로에게 불편하고 부끄러운 존재로 인식되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생리를 좀 이해해줄 수 없을까?  


+ 이 글을 쓰는 도중에 인사팀장이 바뀌면서, 벼르고 벼뤘다며 여성휴가를 곧 없애겠다는 소문에 나는 예정일을 대충 계산하여 빨리 여성휴가를 한 번이라도 더 쓸 수밖에 없었다. 난 또다시 연차를 생리휴가 대신 써야겠구나...


이렇게 힘든 생리인데, 함부로 포기할 수도 없다.

위에서 말한 증상들은 나만 겪는 것이 아니라 적지 않은 여성들이 생리 기간 중에, 혹은 생리 전 증후군(PMS)으로 겪는 증상이다. 하지만 생리를 잘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나는 항상 "유별나게 몸이 약한 사람" 취급을 받아와야만 했고 이는 또한 나뿐만 아니라 이런 증상들을 겪는 모든 여성들의 고민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신의 섭리를 거스르지 말라, 자연을 거스르지 말랐지만 여성이 생리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 정도는 인정해줘야 하지 않을까? 한때 너무 힘든 나머지 피임기구 삽입을 통해 생리를 멈출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시술을 결심한 적도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많은 미혼 여성들의 공통된 고민이라고 한다. 생리를 포기하게 되면 임신과 출산을 포기해야 하고, 중요하게는 여성의 건강도 많은 타격을 받게 되기 때문에 그들의 고민이 '고민'에서 끝나기도 한다. 나 또한 그랬다. 생리를 하는 것보다 고통스러운 것은 그에 따르는 통증과 감정의 변화들인데, 나와 내 동생은 생리할 때가 가까워졌다는 것을 몸 상태로 바로 알 수 있을 정도다. 소화가 잘 안돼서 심하게 체하거나 이유 없이 다툼이 잦아지면 일주일 내로 생리가 시작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생리를 하고 통증을 느끼는 것 외에도 생리를 시작하기 전에 몸의 변화들도 꽤나 불편하기 때문에 생리를 그만하고 싶다거나, '선택적으로 할 수는 없을까'를 고민해본다. 많은 여성들이 생리를 그만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방법도 여러 가지로 고려해보지만 결국 포기하게 되는데, 그 이유 중 큰 부분이 출산의 의무와 책임감이 오롯이 여성에게만 지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동안 생리통으로 고생이 심해, 산부인과 진료를 보러 가서 피임 시술 등을 통해서 생리를 조절한다고 했더니 얼굴도 한번 본 적 없던 내 친구의 엄마가 그녀를 통해서, "미혼인 여자가 산부인과 가서 진료 자주 보는 것도 몸에 안 좋고, 피임시술도 함부로 하는 거 아니다. 나중에 불임될 수도 있고..."라는 말을 전했다. 아직도 불쾌하기 그지없는 말이지만 그녀는 실제로 그렇게 배우고 자랐을 것이고, 많은 여성들이 이런 말들을 들어왔고 듣고 있고 들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으면 좋겠다, 제발)


여성은 인생에 단 몇 번 있을까 말까 하는 출산을 위해 수년간 생리로 고생을 해야 한다. 생각해보니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생리를 한 나는 올해로 20년째 생리를 하고 있다. 이번 생리통은 아주 고약해서, 위경련에 구토까지 동반했다. 처음 10년은 생리통을 온몸으로 느낄 수밖에 없었다. 진통제를 많이 먹거나 시술을 하면 불임이 될지도 모른다는 엄마의 우려로 인해 나 또한 그런 줄만 알았다. "아프면 약을 드세요."라는 산부인과 원장님의 처방(?) 이후에는 무조건 약을 먹었는데 그 때문에 작년쯤부터는 매 달 진통제 부작용으로 생리통이 끝나도 위경련과 위염으로 고생을 하게 됐다. (매 달...) 이렇게 보면 출산의 고통이 한 번이라고 여겨지지만 사실은 수십 년간 겪는 고통이고, 출산을 겪는다고 해도 끝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생리를 선택적으로 하고 싶다는 게 나쁜 걸까?


생리가 끝난 폐경의 여성들은 생리를 여성의 상징으로 여겨, '여자로서의 인생은 끝났다'라며 우울감을 느끼기도 한다(대부분이). 생리는 그저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 중 한 가지 일뿐이며 생리로 인해 불편한 것들이 많아 사회적 활동에 제약까지 겪어야 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도 "그래도 그때가 좋았지"라는 말을 한다. 정말 그리울까? 생리하던 때가...? 이건 단순히 공부하는 게 괴로웠던 학창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생리를 해서 여성이 더욱 건강해지는 것도 아니고, 몸에서 영양분을 다 쏟아 내버리는 것이고 아무런 이득조차 없다. 오히려 생리를 하면서 여성의 몸이 더욱 무리를 입기도 하는데, 생리를 그저 '성스러운 것', '진정한 여성의 상징'으로 여기는 것은, 아마 그 첫 시작은 생리를 해 본 적 없는 사람이거나 생리통이나 PMS(생리 전 증후군) 이란 걸 모르고 산 사람일 것이다.



생리를 어떻게 하면 좋겠어?

미디어가 '생리'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 주고 생리대 광고에서 파란색 액체를 쓰지 않고 빨간색 생리혈을 그대로 재현해 주고 있지 않은가. 우리도 그 걸음에 자연스럽게 발맞추면 좋겠다. '생리'라는 단어가 어딘가 조심스러운 것처럼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어 말하거나, 다른 대체 단어 (그날, 마법, 그 외 모든 대체어)를 쓰지 않는 것부터 노력해보면 좋겠다. 미디어가 포문을 열어주었으니 그것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기가 어디든 생리대를 들고 화장실로 걸어가 보자. 소매 끝에 숨기고 검은 봉지에 가리지 말고 꼭 필요한 생필품이니 유난스럽게 당당할 필요도 없다. 그냥 필요한 것을 들고 화장실에 가는 것이니 너무 조마조마하지 말자는 것이다.



글을 마치며

가장 나와 가까운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무려 1년이 걸려 글을 마칠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생리에 대한 이야기를 두 번 정도 더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아쉬움이 많은 이 글을 마치려고 한다.

우리가 꼭 알고 배워야 할 우리의 일상인 '생리'에 대한 이야기를 불편하지 않고 그냥 재미있게 읽고 진한 여운을 느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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