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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Aug 31. 2023

퍼포먼스 마케터와 데이터의 관계

마케터 이야기

팀에 아르바이트 직원이 새로 왔다.

붙임성도 좋고 적극적이라 점심 식사 후에 산책 가자고 하면 잘 따라오고, 이야기 하는 자리마다 참석도 잘 하지만 내 쪽에 붙은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다른 파트에 붙었기 때문에 단 둘이 이야기 할 기회는 사실 없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잠깐 대화할 기회가 생기면서 그녀가 취준생이라는 것과 퍼포먼스마케터가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녀는 사이버 대학에서 통계학을 전공하고 있는데, 퍼포먼스 마케터가 되고 싶어서 통계학 공부를 한다고 했다. 이미 국비지원으로 마케팅 교육도 받았지만 함께 교육 받은 사람들과 비교하면 본인의 스팩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대학 수업도 듣고 국비지원 교육을 추가로 수강할 계획이라고 했다. 통계학은 왜 듣냐고 물으니까 퍼포먼스 마케팅에서 데이터를 많이 다루는데 자기가 문과생이고 수포자라서 통계 이론을 배울 필요가 있겠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퍼포먼스 마케터=데이터 직업군?

데이터를 다루는 직업이 인기를 얻으면서 취준생들 사이에서 ‘퍼포먼스 마케터’라는 직업의 인기도 함께 올라간 듯 하다. 작년에 ‘데이터 분야의 직업’이라는 주제로 강연에 초대받은 적이 있는데 퍼포먼스 마케터, CRM 마케터,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3명이 함께 강의를 진행했고 나는 그 중에 퍼포먼스 마케터 현직자로 참여했었다. 당시에 퍼포먼스 마케터가 다루는 데이터는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고,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어떤 마케팅을 하는지 설명했는데, 다들 SQL은 기본으로 할 줄 알면서 마케팅에서 어떻게 데이터를 접목하는지, 업무 중에 데이터를 분석하는 업무가 얼마의 비중을 차지하는지는 잘 몰랐다. 퍼포먼스 마케터는 얼마나 데이터 업무를 얼마나 할까?


나는 퍼포먼스 마케팅이라는 개념이 생길 무렵에 일을 시작했는데, 수학을 전공한 것이 마케터가 되는 진로에 전공이 오히려 걸림돌이 되었다. 문과의 고유 영역인 마케팅에 이과생이 들어오려고 하니까 당연히 쉽지 않았고, 나는 말 그대로 ‘밑바닥’부터 시작해야 했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수학이나 통계학을 전공하면 퍼포먼스 마케터가 되는 것이 수월하다는 분위기다. 어제도, 내가 수학을 전공한 퍼포먼스 마케터라고 하니까 "역시 수학을 전공하셔서 퍼포먼스 마케팅을 하고 계시는군요?"라는 말을 들었다. 내가 이과라고 해서 데이터를 특출나게 잘 읽어내는 것은 절대 아니고, 그 때문에 취업에 이득을 본 적도 없다. (물론 학점도 매우 좋지 못해서;;)


게다가 아직까지도 마케터들은 경영이나 광고, 마케팅 전공자인 ‘문과인’이 월등히 많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함께 일 해온 사람들 중에 이과생은 아직 만난 적이 없고, 내가 수학을 전공했다고 하면 오히려 신기하게 생각했다. 마케팅에 도움이 된다기 보다는 케이크를 정확히 n등분 하거나 점심 식사 비용을 n등분 할 때 역시 수학과 아니냐는 말을 들었다. (정확한 n등분은 그냥 성격입니다 ^^;) 하지만 마케팅을 하면서 ‘수학을 전공 했으니까 퍼포먼스 마케팅을 해라.’는 권유는 참 많이 들었다.


나는 CRM, 언론 홍보, ATL, BTL, 오프라인, 온라인 할 것 없이 모든 분야를 경험하면서 커리어를 퍼포먼스 마케터로 굳혀왔는데, 사실은 컨텐츠 마케터나 브랜드 마케터처럼 마케팅 기획을 하고 싶었다. 퍼포먼스 마케터로 이름표가 붙힌 첫 회사에도 사실 콘텐츠 마케터로 지원을 했었는데, 나를 뽑은 과장님이 '퍼포먼스 마케팅을 더 잘 할 것 같았다.'는 이유로 다른 파트에 나를 배정했던 것이다. 그 후에 결정적으로는 새로 오신 팀장님이 "데이터 기반의 의사 결정, 그로스 해킹이 중한데 수학적 지식이 있는 사람이 이 분야를 맡아줬으면 해요."라고 이야기 해 주시면서 나는 아예 퍼포먼스 마케터 외에는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잘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보다 하고싶은 일(=콘텐츠 마케팅)에 무작정 달려들려고 했는데 결국 수학적 사고가 가능할 것이라는 나의 이공계 이력이 퍼포먼스 마케팅에 잘 접목될 것이란 것을 스스로도 이해하기 시작 한 것이다. 



퍼포먼스 마케터는 진짜로 데이터를 많이 볼까?

퍼포먼스 마케팅이 내 자리라고 인정한 후에는 그 전보다 더 많은 데이터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사내의 모든 데이터를 다 끌어 모아서 한 판에 옮기는 ‘대시보드화 작업’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 매출이 잘 나오면 상품(MD) 덕분에, 매출이 잘 안나오면 마케팅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대 환장의 해석법을 바로 잡고 상품과 마케팅, 기획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게 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내가 만든 대시보드를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아무도 보지 않았다. 함께 일하는 컨텐츠 마케터나 홍보 마케터, CRM 담당자들 조차도 “숫자를 보고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해요?”라는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데이터를 보고 간략한 인사이트를 정리해서 공유 해 주기도 했었다. 그래서 퍼포먼스 마케팅에는 데이터 업무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그렇기 때문에 학문적 지식을 더 넓혀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후에 이직한 곳에서는 데이터 팀이 따로 운영되면서 데이터 업무의 대부분을 내가 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광고를 통해서 얻어지는 결과(=데이터)를 분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다음에 뭘 해야하는지 계획을 세워서 실행하는 업무를 반복했는데, 이 외에 발생하는 데이터는 데이터 분석가(DA)가 공유해 주는 인사이트를 참고하거나 데이터 엔지니어(DE)에게 데이터 대시보드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었다. 이 때 깨닳은 것이 퍼포먼스 마케터는 마케터다였다. 데이터 분석 업무는 내 업무의 일부이고, 마케팅을 위해 수반되는 업무일 뿐이지 결국 나는 광고를 기획하고 집행하는 업무를 더 많이 해야했다. 마케터가 데이터에 매이다 보면 결국 마케팅 실행에 소홀해 지고, 그러면 그것은 마케터가 아니라 데이터 분석가(DA)와 다를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퍼포먼스 마케터가 되는데 필요한 것?

하지만 많은 취준생이나 퍼포먼스 마케터를 꿈꾸는 사람들은 ‘데이터를 주로 다루는 일’을 기대하고, 우리 팀 아르바이트 직원처럼 데이터 분석에 대한 이론이나 데이터를 추출할 수 있는 SQL, 파이썬, 대시보드를 만드는 태블로 등의 BI 툴을 공부하는데 시간을 쏟는다. 이 기술들은 데이터를 추출하고 보여주는 도구인데, 마케팅 즉 광고를 집행 해야 추출할 수 있는 데이터가 생기고, 대시보드에 담을 수 있는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 광고를 기획하고 운영할 줄도 모르는데 어떤 데이터를 다룰 수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광고를 직접 셋팅하고 운영하는 경험을 더 해봐야 한다. 공부는 짧게하고 실무는 빨리 시작해야 한다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광고 업무는 학원에서 배우기가 어렵다. 개인이 광고 계정을 생성하고 셋팅하는게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광고를 하려는 '소재'가 필요하고, 광고를 보여주고자 하는 '타겟'이 있어야 하며 광고를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도 필요하다. 여기에 이 모든 시나리오를 이루어 줄 자본(=돈�)이 필요한 것. 아직 광고를 가르치는 학교나 학원이 없는 만큼 취준생들은 가능한 빨리 실무에 뛰어들어서 광고 환경을 접해봐야 한다. 공부가 길어질 수록 경험할 수 있는 시간도 흘러간다는 것이다.

 

페이스북에 광고를 노출시키려면 어떻게 ‘셋팅’하는지, 카카오톡의 어떤 영역에 어떻게 광고를 노출시킬 수 있는지, 네이버에 검색해서 나오는 결과에 광고를 붙이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우리가 접하는 광고들이 어떤 원리(알고리즘)로 노출되는지 등, 직접 광고를 운영하고 결과를 마주해야 더 실감나게 익힐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팀 아르바이트 직원의 이야기로 돌아가 마무리 지어보자면 나는 그녀에게 계속 "빨리 당장 지원해라."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최근에 퍼포먼스 마케팅이 데이터 직군에 포함되고, 틀린 분류는 아니지만 '데이터'에 치중된 교육들이 늘어나면서 이런 글을 쓰게 되었다. 퍼포먼스 마케터로 일하면서 데이터 분석 업무의 비중이 늘어났고, 데이터에 기반한 업무가 적성에도 맞고 흥미도 있어서 이 일을 지속하고 있는 사람으로써 퍼포먼스 마케터와 데이터간의 오해를 푸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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