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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ti Feb 16. 2024

강을 건너온 자와 건너려던 이들

  대학원 학술대회 자리에 탈북화가 선무가 강연을 왔다. 그는 독일과 미국 등지에서 더 잘 알려진 화가였다. 선무의 삶을 다룬 영화 <나는 선무다>는 DMZ 국제 다큐영화제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 시기에 남한으로 온 선무는 그의 가족이 아직 북에 남아 있는 데다가, 그의 작품은 정치색이 강한 탓에 얼굴을 공개하지 않았다. 영화 속에서도 그는 마스크나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등장했다.



  학술대회 자리에서 선무 작가는 자기 작품에 관해 설명했다. <국경선>은 커다랗게 충혈된 눈동자가 전면에 그려진 인상적인 작품이다. 두만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갈대밭을 질러가야 했다고 한다. 한밤중에 갈대밭 사이를 지나는데, 갈대의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마치 천둥소리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그 벌레들이 마치 자신의 귀에서 우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또 다른 작품인 <두만강>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풍경화 같기만 하다. 새벽안개가 피어오르는 남한강의 풍경 같아 보인다. 그러다 작품의 하단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물살을 가로지르며 강을 건너는 한 사람이 보인다. 선무는 20여 년 전, 한밤중에 두만강을 건너던 자기 자신을 강물의 작은 파동처럼 보일 듯 말듯 그려 놓았다. 그는 국경을 넘는 순간을 이렇게 묘사했다.


"두만강을 건널 때, 중간지점부터는 발이 닿지 않으면서 몸이 쑥 빠졌다고. 사방이 어두워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는데, 그때 하늘을 올려다보니 북극성이 보였고, 그 별을 따라서 북쪽으로 헤엄쳐갔지."


선무는 초승달과 북극성 아래로 물길을 가로지르는 자신의 모습을 간단한 선 몇 가닥으로 표현하여 <별빛>이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국경의 강, 누군가에게는 운명을 가르는 강이었다.


그로부터 몇 달 후, 선무 작가를 경기창작센터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곳은 예술가들의 창작과 연구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경기도에서 운영하는 공간이었다. 선무는 그곳에서 유화를 그리고 있었다. 그를 만나러 가기 전, 경기창작센터를 검색해 보다가 이곳이 일제강점기 선감학원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1942년 일본이 부랑아를 '교화'한다는 목적으로 선감도라는 섬에 설치한 아동 관리 시설이었다.

선무와 함께 상주하는 동료 작가 중에 아이 형상의 귀신을 본 이들이 있다고 했다. 경기창작센터가 선감학원이었던 시절은 일제시대뿐이 아니었다. 해방 이후에도 여전히 고아와 실종 아동을 분리 수용하는 시설로 사용되고 있었다. 이 섬으로 끌려온 아이들은 탈출을 시도했다. 섬에서 육지까지는 300여 미터밖에 되지 않으니 썰물 때가 되면 아이들은 목숨을 걸고 썰물 때의 바다를 건넜다. 그러나 이내 물길이 달라져 밀물로 바뀌면서 아이들은 건너편의 육지로 미처 도착하지 못하고 물살에 휩쓸리곤 했다. 익사한 아이들의 시신이 다시 이곳으로 떠내려오면, 선감학원의 나머지 아이들은 그 시신을 직접 묻기도 했다.




<아무도 내게 꿈을 묻지 않았다> 책에는 선감학원 피해 생존자들의 구술 인터뷰가 실려 있다.


"집에 가고 싶은 게 최고의 꿈이었어요. 그 꿈도 결국에는 내가 능력이 됐을 때 꿀 수 있는 게 여기의 꿈이야, 선감학원의 꿈. 내가 능력이 안 되는데 꿈을 꾸면 불행해져요. 수영도 못하는데 도망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더 불행해지지. 먼저 도망 나갔다가 도로 돌아온 애들 얘기하는 걸 들었어요. 같이 도망갈 때 옆에서 같이 수영치면 안 된다. 누구 하나 힘 떨어지고 하면 서로 붙잡고 그러다가 다 죽는다."


섬에 갇힌 아이들에게 '썰물'은 기회이기도 했고, 함정이 되기도 했다. 책을 읽고 나면, 푸른 물속에 잠겨 있는 아이들을 그린 표지가 서늘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선감학원은 꿈을 꾸면 불행해지는 곳이었고, 아무도 꿈을 묻지 않는 곳이었다. 나는 선무에게 이 책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선무는 이 아이들이 선감도에서 탈출하기 위해 썰물 때 물을 건너 도망갔다는 이야기를 듣자, 아이들이 물을 건너다가 죽었다는 이야기가 남 일 같지 않다고 대답했다.

탈북화가 선무는 김일성과 김정일을 풍자하는 그림을 그린다. 그것은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과 풍자만은 아니다. 수령의 사진이 걸린 액자를 열심히 닦았던 자신의 유년기를 떠올리며, 그것만이 절대적 종교라고 알고 자란 자신의 성장기에 대한 치유 과정에 가깝다. 태어난 장소가 '대한민국'인 우리들은 분단 상황을 특별히 인식하고 살 기회는 거의 없다. 그러나 선무처럼 자신의 출생지를 거스르고 그쪽에서 '적국'으로 지칭하는 곳으로 넘어온 이에게 분단 문제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에게 분단은 '역사적 사건'이나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삶과 관련된 문제이다. 선무가 궁극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경계'이다. 남과 북의 장벽과 경계가 무너지는 것, 그에게 통일은 추상의 개념이 아니라 북에 남아 있는 자신의 부모와 남에서 낳은 두 딸이 만날 수 있는 상황의 실현이다. 선무는 철책 앞에서 한복을 입고 할머니에게 인사를 건네는 자신의 아이들을 그림으로 그렸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손녀들이에요. 우리는 왜 헤어져 살아야 하나요. 모두 건강하세요."라는 글씨가 철조망에 묶인 채,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선무 작가를 소개하는 말 앞에 항상 붙는 '탈북화가'라는 단어는 어떻게 규정해야 할까. '분단의 사회심리학'이라는 부제를 단 책, <갈라진 마음들>에서 김성경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자신들의 장소를 박탈당한 이들은 단순히 고향 혹은 '집'을 잃어버리는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만의 개인적인 삶, 사회적 관계, 의미체계, 역사, 그리고 미래의 가능성까지 송두리째 잃어버리게 된다. 장소를 박탈당한 난민은 자아의 근간을 잃어버린 자다."


자아의 근원을 잃어버린 자, 선무는 그 이유를 작품으로 계속 우리에게 묻는다. "누구를 위한 이념인가?",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여전히 경계에 서 있는 이 작가는 우리 사회에 계속 작품을 통해 질문을 던진다. 이 불편한 질문은 '분단'은 완료의 개념도, 추상의 개념도 아님을 생각하게 한다. 누군가에게 분단은 여전히 삶이고 진행형의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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