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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모레비 Nov 03. 2022

이슈트리가 진짜 무기가 될 때

논리만으로 설득할 수 있다는 착각 벗어나기




잘하면 이슈트리를 보여드리는 것 자체가
하나의 솔루션이 될 수도 있겠는데요?



 150명 규모 조직의 컨설팅을 담당하게 된 3명의 크루들이 약 2주간의 초기 조직분석을 마치고 내민 이슈트리의 구조와 설명을 듣고, 팀장님은 긍정적인 반응으로 힘을 실어주셨다.



크루 분들이 공들여 그린 이슈트리. 난 숟가락 받침 정도만 세팅했다.





 조직 전체 인원의 약 15% 정도인 리더, 구성원 20여 명과 조직문화, 리더십, 성장을 주제로 각 한 시간씩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와 병행해 작년 조직문화 설문 결과, 5년간 전출입 현황, 협업 Tool 활용 수준 등 정량적 데이터도 함께 살폈다.



 특히나 수십 번의 인터뷰 속에서 오고 간 질문과 대답 속에서 그야말로 조직을 설명하는 방대한 데이터들이 쌓였다. 긍정적인 것, 부정적인 것, 문제의 원인 같아 보이는 것, 결과처럼 보이는 것, 애매모호한 것 등 100여 개가 넘는 다양한 이슈들 앞에서 어떻게 정리할지 막막감을 느끼고 있던 차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아닐까요?



베테랑 PM님은 곧바로 ‘이슈트리’를 그려볼 때가 되었다는 말을 던졌다.




논리적으로 분석해봤어?

이슈트리를 활용해봐!


논리적인, 현상을 정리한 한판, MECE한, 로직트리, 바바라민토의 피라미드법칙


 보통의 직장인이라면 이슈트리라는 단어는 ‘기획력’을 타이틀로 한 교육에서 들어봤거나, 공들여 보고한 기획안이 논리가 빈약하다며 날카롭게 피드백을 하는 선배님들의 입을 통해 한번쯤은 접해봤을 것이다.



 수많은 현상을 ‘논리적’으로 정리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슈트리는 알려져 있고, 실제로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기획서에서 ‘논리‘라는 광을 내고 닦기 위해 활용된다. 로직트리라고도 불리는 이슈트리는 현상 간의 관계를 찾고, 중복을 제거하면서 복잡한 이슈들 간의 순서와 방향을 정리해준다.


 PM님이 이슈트리를 그려보자고 말했을 때, 나는 당연히 우리 앞에 놓인 수많은 현상들을 논리적으로 잘 정리해보자라는 뜻으로 이해했었다.



컨설턴트에게도

이슈트리가 맛집인 이유



 컨설팅이라는 업무는 현상을 파악하고, 현상을 통해 정의된 문제와 이상적인 Goal 사이의 GAP을 찾는다. 그 후 두 지점 사이의 간극을 좁힐 수 있도록 명확한 처방전을 내리고, 복약 방법까지 안내한다.



 컨설턴트가 넘쳐흐르는 현상들 속에서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프로젝트의 방향은 달라진다. 이 과정에서 ‘이슈트리’라는 친구는 수많은 현상들을 중복되지 않게 깔끔하게 정리해주면서도 이슈들간의 전후/상하 관계를 보여주기에 자주 찾게되는 것이다.


 아울러 우리가 이슈트리를 만들어 제시한다는 것은 나 혹은 우리가 충분히 논리적으로 현상을 분석했으며, 물샐틈없이 깔끔하게 정리했다는 메시지를 함께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있다.


 그러나 이슈트리의 최고의 강점인 ‘논리’에만 집중하다 보면 오히려 일을 그르칠 때도 있다. 바로 ‘논리’가 무기가 아니라 스스로 파는 ‘무덤’이 될 때다.



세상에 완벽한 논리와

완벽한 이슈트리가 없는 이유



 신입사원시절 준비한 기획서를 조목조목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선배의 말에 승부욕이 돋아, 이번엔 절대 빈약한 논리로 무릎 꿇지 않겠다며 이슈트리를 치밀하게 준비했던 적이 있었다. 이에 더해 권위 있는 기관과 전문가들이 남긴 자료를 잔뜩 참조해뒀으니 절대 반박하지 못 할 것이라는 당찬 확신까지 가졌었다.


 안타깝게도 설득은 또다시 보기 좋게 실패했고, 실패 앞에서 당시 내가 내린 결론은 “세상엔 무수히 많은 논리가 존재한다”라는 생각이었다. 즉 어떤 렌즈로 문제를 바라보느냐에 따라 문제에 대한 정의는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바라보니 이게 문제 같기도 하고, 저렇게 바라보니 저게 문제 같기도 했다. 논리를 담는 그릇, 이슈트리도 마찬가지다. 이슈트리를 그리는 사람에 따라 이슈트리는 수십 개의 버전으로 다르게 탄생하게 된다.




같은 현상, 다른 논리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과 이동하는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진다라는 User Voice 즉 현상들이 있다. 이 현상을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A컨설턴트는 본인이 논리적이라고 자부하고, 팩트에 집중해 문제를 바라본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 이동하는 시간이 타 아파트 대비 정말로 느린 것인지 정량적으로 측정해 문제의 원인은 “노후화되고 느려 터진 엘리베이터”로 정의한다. 그가 제안할 수 있는 솔루션은 엘리베이터를 교체한다거나, 속도를 높이기 위한 방법들로 한정될 것이다.

 B컨설턴트는 조금 다르다. 그에게는 논리도 있지만 노련함과 기교가 있다. 그는 현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원을 함께 고려한다. 주어진 예산과 인력, 프로젝트 수행 기간 내에서 해결 “될”만 한 문제를 찾고, 공감대를 형성해간다. 그가 정의한 문제의 핵심은 “느리게 느껴진다”라는 팩트가 아닌 심리적인 부분이었다.



 제 아무리 비싼 비용을 투자해 새 엘리베이터로 교체한들 순간이동 수준이 아니라면 빨리 이동하고 싶은 사람들의 희망이 드라마틱하게 개선되기는 어렵다. 그는 이 상황에서 오히려 기다리는 시간을 채워줄 무언가를 솔루션으로 제안한다.

 예를 들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거나 이동할 때 볼 수 있는 거울이나 디지털 TV를 설치하는 것이다. 이 솔루션은 프로젝트의 기본 중 기본인 적은 비용을 투자하고도 실질적인 효과를 볼 수 있는 Quick win 과제의 정석이다.




논리말고 명쾌함을 가져와


 논리적으로 설득되지 않는 상대방과 나 사이에 부족한 것은 논리가 아니라 공감과 신뢰일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일본의 전략 전문가 엔도 이사오라는 전략 전문가의 책 ‘성과의 가시화’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누군가를 움직이는 것은
논리나 가설이 아니라 명쾌함인 것이다.


“그래서 핵심이 뭔데?”
“어디가 제일 문제인건데?”
“So What?”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정리한 이슈트리를 공유했음에도 상대방의 머릿속에 물음표를 떠올리게 한다면 실패한 이슈트리라는 말이다. 논리적으로 이슈트리를 만들었지만 공감되는 지점도 없고, 서로 간에 신뢰도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상대방의 심기만 불편하게 만들었을수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설득을 위해 3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바로 로고스(논리), 파토스(심리 또는 감정상태), 에토스(설득하는 사람의 고유한 성품, 매력, 진정성 등 신뢰감)다. 또한 3요소 중에서도 순서가 있다고 했는데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 순서로 접근하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즉 논리보다 앞서야 하는 것이 바로 상호 신뢰와 존중이라는 것.


’당신들은 이런 문제가 있소‘만 보여주는 것은 하수다. 


물론 그 문제들에 공감하고, 설득당하는 고객도 있겠지만 사람은 누구나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머릿속에 떠오르기 마련이다. 조직을 바라본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컨설턴트 집단이 우리의 문제점만 지적했을 때 감정적인 부분에서 상처가 없을수가 없다.


당신들에게 이런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이유에 공감해주고, 집중해야 할 문제 영역을 좁혀주는 것이 진정한 고수다. 


이슈트리를 구조화하여 공유한다는 것은 무조건 설득하겠다고 배수의 진을 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 공감하고, 리더/구성원으로 부터 나온 의견들을 경청했다는 메시지의 시작이다. 컨설팅을 받는 대상 조직과 리더들의 의구심과 물음표를 신뢰와 느낌표로 바꾸기 위한 결정적 순간이 그리 먼 곳에 있지 않다고 느꼈던 순간이 바로 이슈트리를 공유했던 순간이었다.



돌이켜보니 우리가 택한 방법 역시

공감과 위로였다.




우리 조직의 민낯을
이렇게나 잘 보여준 그림은 처음이네요.



 조직의 리더분들께 처음 이슈트리를 공유한 순간, 이렇게까지 우리 조직의 민낯을 잘 보여줄지 몰랐다며 컨설팅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그들은 이슈트리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마치 손이 안 닿는 가려운 부분을 긁어줬을 때처럼 ’요놈들 봐라?‘와 같은 미소를 보였다. 이례적으로 미팅이 끝난 후 컨설팅의 성과가 눈에 보이기도 전에 조직장님으로부터 저녁식사 자리를 제안 받기도 했다.



 리더도 사람인지라 본인이 속한 조직이 컨설팅을 받는다는 사실에 상당한 부담감을 느낀다. 어쨌든 컨설팅은 문제를 해결할 목적으로 시작하는 것이기에 조직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자연스레 리더 입장에서는 컨설턴트들을 경계하고 조직의 민낯을 드러내기 조심스러운 방어적인 성향을 가질 수밖에 없다.


 과연 초기 조직분석 후 첫 미팅에서 이슈트리를 통해 그들이 가진 문제만 조목조목 지적했다면 이런 긍정적 반응을 마주할 수 있었을까? 비록 현장에서는 애써 고개를 끄덕일 수 있어도, 끊임없이 떠오르는 ‘그럴만한 이유들’만 머릿속에 가득한채로 부정적 감정과 함께 미팅이 마무리 되었을 것이다.


 이슈트리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해결할 문제에 힘을 모아보자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핵심 이유는 그들의 특수성 즉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상황과 맥락을 기반으로 다양한 현상을 펼쳐 보였기 때문이었다. 조직과 직무 특수성은 아래와 같았다.


경영층 의사결정 회의를 주관하는 서비스 PM역할

유관부문이  다양하고, 이들의 의견을 중간에서 조율

업무 특성으로 인한 잦은 회의와 보고

서비스 수준 만큼이나 수익성을 수호해야하는 역할

개발 사이클이 길어 타업무 대비 단위 업무 담당 기간이 장기간 소요 (최소 3~4년)


 조직과 직무 특수성이 이슈트리의 시작점이 됐기에 조직 내의 특정 직급이나, 연령, 직책 여부 등으로 조직 구성원들을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누지 않을 수 있었다. 또한, 그들이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부분에 대한 위로와 공감을 건네기에도 더할나위없이 좋은 접근 방식이었다.



마치며.

당신에게 찐친은 어떤 사람인가요?



 내 주변의 가장 가까운 존재들을 떠올려보자. 그들은 따뜻함과 냉철함을 동시에 지녔다. 우리는 상대방의 따듯함으로 한없이 위로받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들이 매섭게 뼈를 때리는 바람에 정신이 번쩍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의 냉철함은 한겨울에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라기 보다는 쌓여있는 눈송이가 주는 포근한 온기로 다가온다. 차가운 것이 역설적으로 따스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온전히 나의 입장에서 공감해주고, 나의 행복을 위해 고민해주는 진정성 때문이 아닐까? 그들은 아무 말 같지만 아무 말 같지 않은 농담을 건네고, 그래도 잘될 거라고 우리를 진심으로 위로해준다.


 매번 사탕발린 칭찬으로 보듬어주는 따뜻함은 한계가 있다. 반대로 냉철함만 가지고 둘의 사이가 충분히 가까워 지기도 어렵다. 세상에 수없이 많은 연인들이 가장 많이 부딪히는 문제는 "공감"하지 않고, "문제해결"을 하려하는 상대방에 대한 아쉬움으로부터 시작하더라.


 고객이기 전에 그들은 사람이고, 컨설턴트 이기전에 우리도 사람이었다. 이슈트리를 통해 공감과 위로를 건네며 대화를 시작했고, 치밀한 논리와 명쾌함으로 그들을 설득했다. 우리는 그렇게 진짜 파트너가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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