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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 Aug 05. 2023

IT와 덕업일치

"덕질" 좀 해본 경험이 있는 번역가의 시각에서

(2023. 07.14에 쓴 글을 다시 써서 올리다.)


Chat GPT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는 요즘, 과학 기술 및 인터넷 환경의 무한한 발전은 언제나 놀랍다. 초반엔 유튜브 플랫폼이 신기했고 쌍방향 기술이 신기했었는데, 인공지능(AI)에 대해 얘기하는 것도 이제 식상한 수준인 것 같다.

IT도 다양한 영역이 있을진대, 남편의 경우 업무상 사이버 보안에 관심이 있으며, 어떤 사람들은 게임 개발에, 또 어떤 사람들은 클라우드를 위시한 방대한 인터넷 환경을 구축하는 일에 관심이 있을 거다.

십이삼여 년 전, 석박유학이냐 취업이냐를 결심해야 했던 갈림길에서 사회과학 분야 연구원을 1년 하고 그만두고,  그동안 해온 공부와 1도 관련이 없는 IT 로컬라이제이션 분야에 사원으로 입사했다. 그리고는 모바일 PC 환경의 UX/UI 같은 용어도 처음 알게 되었었던 기억이 난다.(이걸 IT라고 해도 되나 모르겠네. 누가 보면 웃을 듯..) 인문과 사회과학을 주, 복전으로 택한 내게 굉장히 새로운 세계였던 기억이 난다.

짧은 경력이지만 로컬라이제이션 PM도 해 보고 SW 언어를 많이 다루는 일을 하다가 집에서 십여 년간 프리랜서 링귀스트(번역가) 생활을 했다. IT 외에도 기업 법, 마케팅, HR, 등등 정말 많은 분야들을 하면서 그 안에서 넓은 세상을 경험했다.

최근에 우연찮게 항공업계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다. 이제는 유치원에 제법 잘 가는 둘째를  등원시키고 집에서 오전에 시간이 좀 생겨 유튜브를 보다가 알고리즘에 의해 항공기 관련한 채널들을 보게 된 것이 화근이었다. (사실 얼마 전 코로나 이후 처음 해외로 다녀온 사이판 여행의 후유증인듯.) 처음엔 비행기 이착륙하는 영상들을 보면서 육아지옥, 살림지옥으로부터 마음의 평온이 오는 듯하다가(중요한 시험이라든가 공부할 때 비행기 이착륙 영상을 보며 마음을 평온하게 다스리곤 했다는 어떤 수험생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항공관제교신을 뜻하는 ATC를 대하면서 묘한 영감이 떠오르고, 비행기의 양력이라든가 공기 밀도와의 관계, 항공기 정비에 대한 여러 주제들을 접하면서 중고등학교 때 어려워했던 물리나 화학, 지구과학 과목이 갑자기 떠오르면서 갑자기 공부모드에 며칠 돌입했다. (번역가의 직업병 같기도 하다.)

이렇게 항공 관련 동영상들을 깊숙이 시청하고 궁금한 부분들을 위키백과나 기사들을 통해 하나하나 해결해 가던 이 시간만큼은 묘하게 머리가 릴랙스 되는 느낌이 들어 요 근래 나의 마음을 완전히 뺏겨버렸고, 평소 일하던 PM들에게는 항공기 관련 작업이 있음 좀 달라고 선요청(?) 하기에 이르렀다.

요 근래 시청했던 채널 몇 개를 소개하겠다.

1) 변비행: 현 동아일보 산업부 소속 변종국 기자의 항공업계 관련 유튜브 채널인데, 업계 전반에 대한 가벼운 소재부터 취재 뒷이야기썰, 깊이 있는 내용까지 흥미로운 내용으로 가득하다. 독특하게 Flight Simulator 게임 리뷰도 많음,
2) 다큐 9분: 오늘날의 안전한 비행기 여행은 역대 최악의 항공 사고들을 통해 인류가 이룩한 안전사고 및 과학기술 매뉴얼들의 총아임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내용들을 담은 동영상들이 있다. 브금(bgm, 배경음악)과 관련 내용이 꿈에 나올 정도로 오싹하고 무서울 수 있다. 그만큼 중독성이 있으며 전문적인 내용과 편집 기술이 돋보인다. 교신 내용을 복기한 부분들도 흥미롭다.
3) 쁠리 TV: 지금은 아줌마인 전직 K항공 승무원 출신이 소개하는 스튜어디스/승무원들의 세계 및 에피소드가 가득한데 사실 개인적으로 살림 관련 동영상이 더 취저였음은 안 비밀..

언제 만들어진 동영상들인가 보니 아이러니한 것인지, 우연인 것인지, 코로나로 인해 항공 여행 업계가 타격을 많이 입었을 때 시작해서 운영했던 유튜브 채널들이었는데 이것들을 나는 몇 년 후에 보게 된 것이었고. 아무튼 참 세상은 돌고 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공기에 대해 빠져 있던 중 "항덕(항공기 덕후)"의 세계가 있음 역시 알게 된다. 항덕들이 즐겨하는 게임, 대화 주제, 그리고 나아가 비행기 조종 게임인 Flight Simulator를 좋아해서 기장의 세계에 입문하게 된 현직 기장의 이야기는 무슨 분야든 빠지면 한 덕질하는 내게 흥미로운 먹잇감이었다.

언어에 관심이 많은 내게 ATC: Airport Tower Control 관제 언어는 무척 흥미로웠다. 전 세계 조종사/관제사/항공 업계 종사자들에게 Global Standard 이자 통일된 표현과 용어를 사용하는 ATC는 뜯어보면 유창한 영어가 필요 없고 복잡하지 않다. 오히려 비행 상황이라는 여러 기술적, 물리적 환경과 상황에서의 정확한 소통이 시시각각 안전에 직결된다는 점이 큰 차별점이었다. 영어를 생각할 때 목적에 따라서 유창성이나 풍부성에 집착하기 쉽지만, technical 한 언어를 정확하게 구사해야 하는 측면에서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또 하나 재미있었던 것은 게임이 좋아 기장이 된 전 대한항공 현 에어부산 기장님의 인터뷰와 게임 리뷰였다. 지금 생각해도 웃겨.. 덕업일치라는 말이 절로 머릿속에 떠올랐다.

요즘 비시즌인 건지, 내가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라도 한 탓인지 확 줄어든 일감에 영 재미가 없어 프리랜서 링귀스트도 이제 끝인가 생각하고 있던 차에, 항덕의 세계는 내 마음에 꺼져가던 불씨를 다시 살린 셈이 되어주었다.

아 로컬라이제이션에서 왜 게임 분야가 커지고 있다는 건지 알겠구나.. 항공 산업 전반에서 신생 항공사들도 많이 등장한 지금 한 개에 몇억씩 한다는 시뮬레이션 장비의 로컬라이제이션 수요가 그래서 있는 거구나.. 하며.

뭐든 현재의 내 상황과 연결 지을 수밖에 없는 지금의 나로서는, 우리 아이들도 자기가 좋아하는 걸 충분히 탐닉하고 추구할 수 있는 여유를 가끔 줘야 되겠다는 생각을... 내가 아이들의 앞날을 설계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불안감을 덜어 주었다고나 할까.

첫째가 마인크래프트와 야구에 빠지고 곤충에 심취할 때 그걸 어느 정도 이해해 주어야겠구나 하는 마음이 든 것과도 비슷하다.

개인적으로 우리 아이들도 덕업일치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커감에 따라 자기가 좋아하는 게 명확해서 몰입하고 발전 요소를 찾아낼 수 있고 그것으로 자신을 identify 하고 나아가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그런 아이들로 성장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긴다. 아들들아, 대신 번역으로 먹고 살 생각은 저얼대 하면 안 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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