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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 Aug 05. 2023

김치냉장고와 트뤼도 총리 부부

(2023. 08.03에 쓴 글을 수정해서 올리다.)


김치냉장고는 나에게 애증의 물건이다. 김칫국물로 물바다가 된 김치냉장고 안쪽 그리고 겹겹이 들어 올리는 냄새나는 비닐봉지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화가 나서 때론 부들부들 떨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하염없이 아련한 마음도 느껴진다.

미처 손도 안 닿는 장독형 김치 냉장고 바닥을 향해 걸레로 쓰는 깨끗한 마른 수건들을 던져 넣어 국물을 한바탕 흡수시킨다. 옛날 같으면 이쯤 되면 물에 젖은 것들은 내용물도 확인 안 하고 코 막고 다 갖다 버릴 텐데 이젠 열어서 취식 가능한 상태인지 확인도 하는 여유를 갖게 된 나란 사람. (그렇게 쉼 없이 반찬통으로, 냉장고로 배달하고 밥상에 올리고 리필을 하고 있는데, 그래도 마치 마르지 않는 샘 같은 이 기분.. 어떨 때는 콩쥐팥쥐의 밑 빠진 독이 생각나기도 한다.)

평생 만져보지도 않을 줄 알았던 물건인 김치냉장고는 나에게 운명의 굴레이자 숙명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내가 원해서 얻은 것들이 아닌 음식물들(김치..), 내 노력이 1도 들어가지 않은 음식물들이 내 삶의 공간에 주기적인 침입을 하는 것은 나를 꽉 붙잡는 굴레 같았다.

때론 물론 누군가는 없어서 못 먹는 음식이라서 있으니 감사하고, 제정신이 아닐 때면 눈물 나게 맛있기도 하며, 시어머니의 사랑이라는 일방적인 (맛없어도 몸에 좋으니 아무 소리 말고 먹어) 콘셉트를 받아들이는 게 아무리 봐도 마음이 내키지도 제삼자가 볼 때 합리적이지도 않은 건 물론이다. 귀한 줄 모른다고 잔소리 들을까 봐 나누어준다는 소리도 못하고, 때로 보내주시는 분 조차도 감당이 안 돼 보일 때면 이국의 물질처럼 느껴져 이것은 나를 숨 막히게 하는 건지, 아니면 숨을 하염없이 내쉬게만 만드는지 알 수 없는 그것이 바로 김치 그리고 김치냉장고.

우리 엄마는 시어머니의 신혼 초 이런 습성(?)을 깨닫자마자 찰떡같이 김치냉장고를 바로 사서 우리 집으로 보내버렸다. 어른들의 언어는 직접 주고받는 말이 아니어도 통하는 데가 있는 것일까.

중국산이 넘치고 홈쇼핑에서, 마트에서 많이들 사 먹는 김치. 엄마가 김치 담그시는 모습을 보고 자라지 않은 나로서는 왜 이 많은 홈메이드 김치가 필요한지도, 가족을 먹인다는 마음으로 깨끗하고 정성스레 만드는 김치의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많은 경우 너무 많은 양의 음식, 있어도 못 챙겨 먹고 버릴 때면 현타에 더해 자괴감이 오기 일쑤여서, 대체 이것이 아니 이런 과정이 다 뭘 의미하는지를 스스로 이해하고 해결해 가는 데 지금은 도가 튼 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마주해야 하는 현실은 여전히 내게는 쉽지 않다.

캐나다의 트뤼도 총리와 그의 부인이 십몇년만의 결혼 생활 에 별거에 들어간다는 기사를 보았다. 훈남 총리 트뤼도의 부인도 남편과 폭풍 같은 싸움과 소강을 반복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희생을 계속했으리라. 그들 부부는 자신들이 함께 이룬 것들의 의미를 소중하게 여기며 앞날을 위해서도 의미 있게 동반자로 나아갈 것(이렇게 말했는지는 확실히 모르겠다)이라고 했다지만 얼마나 힘들었으면 별거(이혼은 아닌 건가)를 발표했을까 싶다.

수건으로 김치국물을 빨아들여내며 마음속으로 나 역시 별거를 수십 회는 할 뻔한다. 트뤼도 총리의 아내가 한국의 김치에 대한 어느 정도 지식이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아마도 나와 같은 마음이 여러 번 들었던 것은 아닐까.

난 그래도 내 김치냉장고가 좋다. 때론 화가 날지언정 애증의 감정을 투사해서 보여주는 대상이라서. 지금 집으로 이사 오기 전, 거대한 부피를 감당할 공간이 없어 더더욱 주방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던 장본인인데 지금은 다용도실을 든든히 지켜주고 있어 좋다. 지난여름엔 안 그래도 뜨거운 날씨에 혹여나 과열로 이 거대한 전기제품에 위험한 상황이 오진 않을까 하는 걱정에 (다용도실엔 세탁기도  있고 건조기도 있는데 말이다.) 다용도실에 손수 커튼도 달았던 나이다. 결혼할 때 서로 간소하게 시작하자며 조그맣게 시작했던 신혼살림이지만 양보할 수 없는 물건(?)들이 몇 있었다. 김치냉장고는 결혼을 하기 전이든 후든 영원히 나의 위시리스트 밖이었지만 여전히 애증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중이다...(보이지 않는 한숨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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