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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 Aug 05. 2023

조바심 많은 전업맘의 어느 하루의 단상

방학은 나를 미치게 한다.

전업맘에게 방학이란 24시간 나 홀로 풀타임 근무를 하는 환경이다. (주말 제외) 방학을 맞은 초등학생과 미취학 아이 둘은, 마치 비행기 충돌을 막으려고 집중하는 관제사의 두 눈처럼 24시간 나의 레이더망의 어딘가에 위치한다.

첫째에게는 방학 전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코스 요리 같은 완벽한 방학 스케줄을 일찌감치 던져 주었다. (완벽할 것이라는 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터울 많은 형제 육아 중인 내게는 둘째라는 복병이 있다. 엄마가 오로지 베스트 프렌드인 둘째 아들은 엄마 외 모든 종류의 다른 사람을 거부하는 중이라 아웃소싱 따위는 애당초 포기한 지 오래였다. 그냥 되는대로 해보자. 그래서 그렇게 "아무 계획이 없는" 둘째를 기본값(default)으로 놓고 아이 둘의 여름 방학이 시작되었다.

잘 짜인 프로그램 속, 워낙 착하고 무던한 성격의 첫째는 역시나 계획한 대로 그럭저럭 잘 움직여 준다. 통제자인 "엄마"와 의견을 조율해 가며 본인이 원하는 것도 하면서 엄마와의 합을 제법 잘 수행해 내고 있었다. 하지만 통제자라고 생각했던 엄마인 내가 "악성 매니저"로 변하는 데는 2주가 채 걸리지 않았다. 어느 날은 스케줄이 많다는 아이의 볼멘소리가 시작되었다. 또 어떤 날은 급기야는 나의 뚜껑을 열어젖히기 시작했고,  둘째는 어쩜 매번 기똥찬 타이밍에 졸리거나, 배고프거나, 짜증 나거나 하는 걸까. 둘째는 디폴트 값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역동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행동과 타이밍으로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다른 엄마 데려오자, 돌봄 선생님 구해오자, 엄마 아파서 일찍 죽으면 그때 가서 동화 속 개구리들처럼 울지 마... 온갖 블러핑(bluffing)도 불사한 엄마...(라고 쓰고 깡패라고 읽어야 한다.)

(Parenting에 대한 어느 아이디어. 나에게 말하는 건가? 사실 아이들을 바쁘게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마음이 바쁜 거라고 생각한다.)

아이들과 있는 하루는 늘 정신없다.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서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에너지와 돌발행동.. 나라는 사람 역시도 믿을 만한 독립변수가 되지 않는 것 같다. 하루하루 커가는 아이들로부터 나의 시각도 영향을 받는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노력들이 다 아무 소용없을까? 그렇진 않을 거라고 믿는다. 무엇보다도 현재를 충실히 살면 된다는 것을 오늘 다시금 상기하며, 다음 문구를 만난다.

Always remember that your present situation is not your final destination. The best is yet to come.

당장에 답은 없지만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언제나 스펙터클 하다.
인생 수업료도 참 많이도 지불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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