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은 뭐든지 말릴 수 있어 좋다
“토마토 지옥이야!”
인근에 스무 평 남짓한 텃밭을 얻어 농사를 짓고 있다. 감자를 수확한 곳은 김장용 배추와 무를 심기 위해 비워두었는데, 아직 텃밭은 고추, 토마토, 가지, 고구마 등으로 넘친다. 토마토 요리를 좋아해서 올해는 방울토마토를 열 포기나 심었었다.
문제는 열 포기에서 동시에 빨갛게 익은 토마토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일주일에 두 번 텃밭에 가는데 익은 토마토를 안 딸 수도 없고 따다 보면 비닐봉지에 가득 채워 돌아오게 된다.
샐러드에 넣어 먹고, 간식으로 한 주먹씩 먹고 이웃에도 나눠주지만, 아내와 나 둘이 소화할 수 있는 양이 아니다. 결국 말려서 썬 드라이 토마토로 만드는 방법밖에는 없다.
토마토 말릴 때는 날씨가 중요하다. 사흘은 말려야 하기에 비 예보가 없는 날을 잡아야 한다. 토마토를 잘 씻어 물기를 제거한 다음, 반으로 잘라서 채반에 널어놓았다. 이제는 내가 할 일은 없다. 뜨거운 햇살과 바람이 썬 드라이 토마토로 만들어 줄 것이다.
하루 종일 드는 햇살은 옥상 정원의 특권이다. 아파트에서 경험하기 힘든 전원생활을 도시에서도 누리게 해 준다. 각종 식물을 키우는 것은 기본이고, 장 담근 항아리를 보관할 수 있는 장독대도 설치할 수 있다. 더해서 무엇이든 말릴 수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점이다.
유성 오일장에 자주 들르는데, 싼 표고버섯이 나올 때 사다가 말리면 1년 먹을 천연 조미료를 얻는다. 가지도 살짝 말려서 가지 밥이나 나물을 해 먹으면 생가지로 만들 때 보다 꼬들꼬들하고 풍미가 좋다. 가끔은 싱싱한 생선도 말려서 반 건조 생선으로 만들기도 한다.
얼마 전 장마철에 쓰려고 식품 건조기를 하나 샀다. 바질이나 민트 같은 잎사귀 종류는 식품 건조기로 말려도 괜찮은데, 토마토, 가지, 고추 등 물기가 많은 야채는 역시 뜨거운 햇살에 말리는 게 좋다.
옥상 햇살 이용의 백미는 빨래 말리기다. 건조기가 많이 보급되었다고 하지만, 우리는 그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햇살에 잘 말려 뽀송뽀송해진 수건을 갤 때는 마음도 개운해진다. 단지 내 다른 동보다 고층이고, 울타리로 잘 둘러져 있어 외부에서 잘 보이지 않으니 무얼 널어도 마음이 편하다.
단점도 있다. 종일 내리쬐는 햇볕에 달궈진 콘크리트 덩어리는 밤에도 열기가 식지 않는다. 요즘 아파트의 단열이 잘 되어 있다고 해도 다른 층보다 더운 것은 사실이다. 더 큰 문제는 그을려 검게 탄 피부다. 썬 크림을 바르고 모자를 쓰고, 어닝 아래에 있더라도 햇살에 노출되는 시간이 많다 보니 만나는 사람마다 왜 이리 탔냐고 입을 뗀다. 피부가 흰 편이라 예전엔 도시 남자 분위기가 조금은 있었는데, 지금은 영락없는 초로의 시골 아저씨 모습이다.
잘 말린 토마토는 지퍼 백에 담아 대부분 냉동실에 보관한다. 며칠 내 먹을 것은 올리브 오일에 재워 유리병에 보관한 후. 샐러드에 넣어 먹기도 하고, 피자나 파스타 요리에 쓰기도 한다. 단 맛을 한껏 끌어올린 썬 드라이 토마토는 생 토마토와는 다른 맛이다.
여름 옥상에서 햇볕에 무언가를 말리는 행위는 천천히 말려지는 시간만큼 마음을 여유롭게 해 준다.
내년에 시골로 이사한 다음에는 텃밭 크기를 줄일 생각이다. 시골의 모든 집에는 꽤 넓은 텃밭이 있어 이웃에게 나누어 줄 수도 없다. 열 평 정도면 둘이 먹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남은 공간에 어떤 꽃나무를 심을까 미리 정원을 설계해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