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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ki Lee Nov 23. 2022

백일홍도 지네

이제 옥상 정원도 마무리해야 할 때다


예쁜 자태를 뽐내던 백일홍이 색을 잃었다. 꿋꿋하게 여름과 가을정원을 지켜왔는데, 몇 번의 된서리를 맞은 후 조화처럼 퇴색하다가 형태만 남기고 쓸쓸하게 화분을 지키고 있다.  


작약이나 모란 같은 예쁜 꽃들이 화려하게 피었다가 금세 시드는 것을 보면 ‘아쉽다’를 넘어서 ‘안타깝다’는 마음이 든다. 여름이나 가을에도 장미꽃을 볼 수 있지만 어찌 오월 장미의 화사함에 견줄 수 있을까? 정원을 가꾸면서 가장 신경을 쓰는 것은 늘 꽃을 볼 수 있도록 정원 식물을 다양하게 구성하는 것이다.


여름 백일홍 - 막 꽃이 피기 시작했다.


4월에는 라일락, 5월에는 장미, 6월에는 수국, 한여름에는 란타나, 제라늄, 10월이 되면 국화. 더해서 야생화나 풀꽃을 심어 정원을 꾸미지만, 그래도 선산의 굽은 소나무처럼 정원의 중심을 잡아줄 꽃이 필요하다. 그래서 택한 것이 백일홍이다.


2월이 되면 비닐하우스에 꽃씨를 뿌려 모종을 만든다. 그때  백일홍이 빠지지 않는다. 정확하게 말하면 복실 강아지 같이 키가 큰 품종이 아니라,  작은 ‘왜성 백일홍’이다. 모종으로 키우다가 6월 초에 화분에 옮겨 심으면 7월부터 백일홍 꽃을 볼 수 있다. 백일홍은 여름을 지나 11월까지 꽃을 피운다. 이름을 ‘백오십일홍’으로 바꾸고 싶을 정도로 오랫동안 꽃을 보여준다.


9월의 백일홍 - 꽃이 한창이다.


크게 잔병치례도 안 하고 척박한 땅에도 잘 자란다. 꽃잎도 단아하고 색도 진하다. 핑크, 노랑, 빨강, 주황, 하양. 다양한 색으로 무리 지어 피어 있는 백일홍 화분을 보면 내 마음도 화사해진다.


올해 백일홍은 약간은 흉작이다. 발아된 백일홍 모종을 4월에 옮겨 심었는데, 다른 색깔의 꽃은 거의 없고 핑크색 일색이다. 그래도 꽃이 피었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색이 연해지면서 진한 핑크, 연핑크, 핫핑크. 다양한 색감을 보여 주었다. 내년에는 다른 색의 모종들도 사다가 함께 심어야 할까 보다.


10월의 백일홍- 가을하늘과 잘 어울린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열흘 이상 붉게 피는 꽃은 없다는 뜻이다.


주로 권력이나 부귀영화가 오래가지 못함을 꽃에 빗대어 한말이다. ‘남자는 짧더라도 굵게.’를 강조하는 마초적인 사람과는 잘 어울리지 못한다. 국수같이 가는 삶일지라도 순리대로 조용히 묻혀 사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보이는 화려함보다는 마음의 평안이 더 우선이다. 이런 나의 성정과 잘 맞는 것이 백일홍이다.


11월 말의 백일홍 - 이제 보내줄때가 되었다


12월이 되면 백일홍 씨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아쉽지만 잘라내서 자연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내년 초에는 짓고 있는 전원주택으로 이사할 예정이다. 그곳에서도 백일홍 씨를 뿌리고 모종을 키워 정원에 심을 것이다. 비좁은 옥상 테라스 보단 넓은 시골 정원에서 백일홍이 더 아름답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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