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05. 18
비가 흩뿌려지는 가운데 무지개가 저 멀리 파란 하늘과 공생하듯 짠~ , 바라보기엔 멋졌지만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다. 안개보다 좀 굵다란 비의 잔챙이가 바람에 휘날려 이리저리 춤추며 좋다고 난리버꾸통이다. 머리카락은 곱슬머리로 습한 곳을 좋아하지 않는다. 비바람에 날려 봉글봉글 곧 개그맨이자 "나는 자연인이다" 출연 중인 자연인 윤택의 머리 스타일이 되기 일보직전이다. 바람에 날려갈 것 같이 사카린을 넣은 듯 방그렇게 부푼다. 곱슬머리의 단점이다 장점이다. 맑은 날에 뿌리는 이슬비에 태어난 무지개를 바라보는 입장에 선 난 머리카락 하나로 고되고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다.
무지개는 비(수분)와 빛에 의해 생기는 일종의 현상일뿐, 이상의 세계로 건너갈수 있는 다리가 아니다. 그런 현상은 영화나 애니메니션에서 이루어질까. 현실을 받아들이면서도 골목길 한가운데 멈춰 서 무지개 너머 이상을 꿈꾼다. 등 뒤를 지나쳐가는 배달원, 학교 수업이 끝난 초등학생들, 점점 희미해지는 무지개를 따라 꿈에서 깨어나라고 말한다. 휴대폰 속 사진을 꺼내 본다. 막상 사진 한켠에 떠 있는 희미한 무지개 다리가 애설프게 보인다.
무지개 밑은 어느 동네일까? 검은 모래해변이 있는 삼양동, 닭머르 해안이 있는 조천읍 신촌리 그보다 더 먼 서우봉이 있고 에매랄드가 녹은 바다 함덕일까? 어디에 떠있을지 모를 무지개를 따라 마을을 탐방한다.
삼도일동은 내가 살고 있는 동네로 263,258.188평으로 13,209명이 살고 있는 제주 북쪽에 위치한 구제주시다. 서쪽으로 1931년 읍으로 승격되어 1955년 시로 승격되어 도청, 도교육청 등이 옮겨오면서 또 하나의 제주 통치 중심지로 발전한 신제주와 비교의 대상이자 상벽을 이룬다.
신제주가 잘 짜여진 도시화를 갖췄다면 삼도일동이 있는 구제주시는 그보다 좀 더 복잡한 미로처럼 동네와 동네가 연결되었다. 도청이 있는 신제주, 시청이 있는 구제주, 지역민이 사는 구제주, 이주민이 많은 도시 신제주 둘은 서로 같은 공간이면서 조금은 다른 면을 보여준다. 구제주라는 타이틀을 내포한 삼도일동은 이리저리 역인 그물처럼 골목길도 복잡하다. 구제주의 핫한 번화가인 중심지는 아니지만 내가 거주하는 삼도일동 집 근처에는 생활에서 필요한 모든 요소가 있다. 대기업의 마트보다 작지만 나름대로 3개의 큰 마트와 은행 그리고 편의점과 농협 오목조목 모여있다. 코로나의 입김으로 불행히도 얼마전 마트가 문을 닫는 사태는 벌어졌지만 구제주는 오랜 시간동안 살아온 . 다녀보지 않은 골목길이 없을 정도로 구석구석이 머리속 지도로 그려진다. 하늘 위에서 바라봤다면 큰틀에서 다시 좀 더 작은 사각틀 속으로 집이 하나씩 들어선 찌그러진 바둑판 모양으로 보일 것이다. 아이보다 할망과 하르방이, 20대보다 40대가 더 많을법한 동네 삼도일동도 나름의 멋이 있다.
삼도일동엔 봄이면 손님이 한명 찾아온다. 겨울을 보내고 땅을 뚫고 새싹이 올라오는 4월이 되면 노란 개나리와 분홍 치마를 입은 벚꽃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든다. 유혹의 치마에 견뎌낼 사람은 없다. 집안에 콕콕 틀어박혀 있던 사람들이 길거리로 모여들고 주변의 상점에는 오랜만의 활기가 넘친다. 벚꽃은 마지막 휘날레로 이전농로 벚꽃 축제가 3박4일 동안 펼쳐진다. 그때만큼은 집밖으로 나온 사람들로 조용한 길거리는 아이들의 웃음꽃도 핀다. 밤이 된 삼도일동 골목길은 낮보다 더욱 분주하다. 가로등 불빛 아래 클린하우스를 지키는 할망이 밤거리를 지키고, 작은 공원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웃음 소리로 오랜만에 동네가 시끌벅적하다.
삼도일동 집앞, 영화같은 일이, 소설같은 판타지가 일어나길 바라지만 클린하우스를 지키는 할망의 기세에 눌러 귀신조차 얼어버린다. 가장 커다란 사건은 맑은 날에 날벼락을 맞듯 파란 하늘을 가로지르는 무지개가 전부다. 평온한 삼도 일동에 꼭 소설같은 일한가지 만들겠다는 다짐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