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5.25
비나 내리지 않늘까 하며 문앞을 서성인다. 만약 비라도 내리면 바람에 춤추는 비를 어찌할 도히가 없다. 홀딱 젖은 모습을 상상하니 벼랑끝에 선 것처럼 아찔하다. 초등학교를 다니며 맞았던 수많은 나날들의 트라우마일까. 비는 어떨땐 지긋지긋한 귀찮은 존재다. 머뭇거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가슴만 까맣게 타들어갔다. 만약을 생각해 나갈 준비를 끝내 놓기로 했다.
베란다 문을 열고 기약없이 낀 구름이 걷히기만 바라며, 동쪽을 바라봤다. 약간의 희망의 징조가 보일락 말락. 옅은 파란 하늘이 얼굴을 내밀었다. 두뇌는 이미 집밖으로 나가라며 속삭였다. 벌써 준비는 마친 상태로 아무도 막을 수 없다.
배 시간을 아슬하게 남겨 놓고 성산항 정류장에 도착했다. 아슬아슬한 시간이 몸을 쪼여왔다. 발걸음은 빨라지고 결국에 뛰기 시작했다.
“뛰지마세요.” 주차장을 통제하던 아저씨가 말을 건냈다. “네에?” 짧은 답변과 다시 총총 뛰었다.
“뛰지 않아도 탈 수 있습니다. 자리 많습니다.”
신속히 매표소로 들어가 승선신고서를 작성하고 배 표를 구입했다. 급하게 서두른 효과가 빛을 발했다. 조금도 남고 모자람 없는 시간은 배 시간과 딱 들어 맞았다. 그제서야 표를 손에 들고 가쁜 숨을 고르며 배로 올랐다.
15분 지나 하우목동항에 도착하기 전 사람들이 웅성되며 나갈 준비를 서둘렸다. 탈때와 다르게 여유를 가지고 내리기로 맘먹었다. 그렇게 꾹참고 앉아 있으니 금새 객실은 텅비고 혼자가 되버렸다. 자꾸 “빨리빨리”가 튀어나오려고 할때마다 조급함을 버리자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문밖으로 줄지어 선 모습이 우습기까지 하다. 이제 마지막 차례가 되고 나서 문밖으로 나섰다. 배를 벗어나는 게 이렇게 긴 시간이었던가. 본성이 다시 꿈틀된다. “좀 빨리 좀 나가자고..”
이럴수가 10분도 안 된 여유는 폭삭 무너지고 말았다. 한국인의 본성에 여유라는 글자는 없는걸까? 의문마저 든다.
점점 빛깔이 좋아지는 날씨에 덩달아 그전날의 선잠도 깨운해지는 마법을 부렸다. 바다 건너 지미봉이, 그 뒤로 한라산의 백록담이 뚜렷하게 눈을 적셨다. 화려한 시간이 사라지기전 맘껏 담아두려고 셔터를 누르고 눌렀다. 몇번을 눌렀는지 모를 때 우도 삼춘들이 우뭇가사리를 늘며 떨던 수다가 귀를 따갑게 만든다.
"가이가 $%#@#$%#'
"경해서 가이가 그러마심"
구수한 말 재간에 귀를 열어보지만 당채 이어질 수 없는 대화는 맥이 끊긴다. 어렴풋이 나를 유혹하는 한라산만 멀둥멀둥 바라볼 뿐이다.
다시 발걸음을 옮겨 리본을 추격한다. 분명 올레꾼이 지나간 것 같은데…
걸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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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올레꾼이란 올레 길을 (제주 올레길) 걷는 사람을 말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