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30
길은 걷다 우연히 바람결이 스친다. 무미건조한 향기가 공간을 가득채웠다. 알 수 없을 듯한 묘한 기운이 다가왔다. 모자를 꾹 눌러 쓰고 청바지가 스치듯 펄럭이고 체크 잠바는 패션의 끝이다. 뚜벅뚜벅 당당한 걸음은 멋진 뿔을 가진 황소가 걸어오는 모습이다. 패션쇼에 볼법한 걸음에 선듯 뒷걸음을 쳤다. 나보다 한수위의 패션에 당황했고 당당함에 위축되고 그저 멍하니 바라보게 만드는 매력에 빠졌다. 날고 기는 설 할배들 긴장의 끈을 꾁 집고 계셔요.
“제주 신사하르방이 나가십니다.”
신발 보소
바지 보소
잠바 보소
모자 보소
합이 딱딱
길거리에서 우왕좌왕 고민의 늪에 빠진 순간이다. 할아버지의 fashion은 그런 나에게 영감을 던져준다. 오늘 하루는 여기서 딱이라듯 하얀 연기를 내뿜는다. 긴 노락 넥타이를 멘 도로위엔 수많은 자동차들의 출근길이 바쁘다. 이미 집 밖을 나섰지만, 갈길이 먼 날 막아서는 건 멍해진 익숙함이다. 모든 기억을 송두리째 도둑맞은 나는 어디로 가야할까. 무미건조함 속에 발걸음은 홀린듯 버스정류장을 향해 걷는다.
서쪽일까! 아니 동쪽이 더 났지. 고민에 걱정에 갈등에 머리속은 이미 과부하가 걸린 상태로 더이상 돌아가지 않는다. 매표소 벽면을 채운 버스 번호들의 숫자가 마구잡이로 덮쳐온다. 버스를 타고 하나, 둘 떠나는 사람들을 바라보다 우연히 깔깔깔 웃어되는 대학생 여행자를 마주한다. 아무런 말도 건내지 못하지만 그들이 향하는 방향을 따르면 재밌을 거라는 예감이 든다.
“그래 오늘은 201번 버스를 타고 동ㅁ적으로 가는거다.”
201번 버스에 올라 한참을 달린다. 목적지는 없었기에 무작정 맘에 드는 곳이 목적지다.
“다음 정류장은 함덕 해수욕장 앞입니다” 벨을 누르고 정류장 앞에 선다. 제주시보다 어떻게 사람이 더 많을 수 있지? 나의 제주 일상으론 집 앞 바다, 그러나 아름답고 예쁘기로 소문난 곳은 틀림없다.
함덕 해변 앞은 여행자가 대부분이다. 트래킹화에 배낭, 바지는 당연히 땀을 잘 배출하는 기능성 바지. 상점 유리창 너머로 비췬 내 모습을 바라본다. 지나가는 행객의 젊은 Fashion에 비해 점점 아저씨가 되어가는 모습이다. 100만평 안 함덕 해변에는 갖가지 패션이 흘러나오는 Fashion Show 현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