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6. 02
갯강구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사람은 몇 명일까? 5천만 인구 중 1천만 인구는 알고 있을 것이다.
왜 뜬금없이 갯갱구를 들먹이고 있냐구요? 그건 말이죠.
그날은 올레 콜라보를 시도했다. 1코스와 21코스를 썩어 걷는 하루였다. 먼저 1코스 말미오름부터 시작해 종달학교를 앞에두고 제주시 방향으로 튼다. 100m쯤 될때 삼거리가 지나면 우측 방향으로 꺽는다. 그 길을 다시 쭉 따라 오른다. 앞은 지미오름이 넓은 어깨를 쫙 펴고 아래를 지긋이 내려본다. 아쉽지만 수국 길이 나오는 지점, 이스트 포레스트에서 왼쪽 골목길로 방향을 돌린다. 조용한 들판길 뭔가 튀어나올까 모든 신경을 곤두세운다. 지미오름은 오르지 않고 지미오름을 끼고 잘 닦여진 포장길을 걷는다. 헉헉대는 숨소리가 들리지 않음에 심장이 한결 수월해진다. 초조한 마음속에 얼마쯤 걷다 밭담사이에 들어선다.
벌거벗은 밭, 푸른 옷을 두른 밭, 노란 옷을 두른 밭 찬란한 밭의 노예가 되버린다. 눈을 아무리 돌리고 돌려도 그곳을 벗어날 수 없는 늪에 빠지고 만다. 뜨거운 태양은 열기를 내뿜고 말라가는 입안을 적셨다. 30분쯤 동안 밭에 갇혔을까 서서히 소금향기가 코끝을 쑤셔된다. 빠른 더위에 지친 몇몇의 성급한 사람들이 해수욕을 즐기는 데 여념이 없는 하도 해수욕장 모래사장 위다. 수영은 잼뱅이지만 바다는 언제나 봐도 속시원한 만남이다. 그렇게 바닷길에 올라선다. 1시간 아니 그 이상을 걸었다. 바닷바람을 하염없이 맞다가 오랜만에 듣는 아이들의 말소리에 멈춰선다. 딱히 선착장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토끼섬이 바라보이는 작은 항구다.
천천히 아이들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낚시줄에 낚시바늘은 꿰고 있다.
대뜸 질문을.
“낚시하려고”
“네”
“그럼 미끼는 어떻게 하려고”
기다렸다는 듯 술술술 대답이 이어졌다.
“갯강구로 하면 되요. 갯강구 아세요.“
이녀석들이 나를 뭘로 보고 묻는 것인지 기가 찰 노릇이다.
“엄청 빨라서 못 잡을텐데.”
왜 그려셔요. 이래뵈도 이곳의 주인이라고요. 목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 당당함이다.
“발로 짓눌러 밟거나 손바닥으로 살아 있는 놈을 살콤시 잡아 바늘에 끼우면 돼요.”
이녀석들은 재주도 좋다. “무중생유”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설문대 할망의 자손이 틀림없다. 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주워 떨어진 낚시줄을 잇고 바늘은 단다. 조각난 퍼즐을 끼우듯 조각난 퍼즐을 맞추며 낚싯대를 만들고 미끼까지 달아 뚝딱 완성하기까지 이른다.제주 초등학교 4학년의 위력을 실감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생각이 멈칫 멈췄다. 갯강구 그 모습만 생각하더라도 전율속애 닭살이 돋고 징그럽다는 하나의 이유만 떠오른다. 그걸 미끼로 쓴다는 것도 놀라운데, 손으로 잡아 그걸 비늘에 끼운다니 놀라운 일이다.
“몇학년이야. 학교는 어디야?”
4학년이란 대답과 동시에
계속 이어지는 질문과 대답사이 한 녀석이 손에 들고 있던 카메라에 관심을 보인다.
“삼춘은 사진작가에요.”
‘왜 그런 걸 묻는 거지?’
“음~ 사진도 찍고 이것 저것 하지. 왜?”
“우리 아빠도 사진 작가에요. 삼춘 혹시 우리 아빠 아세요.”
내가 어떻게 알겠냐.
“그렇구나 그럼 아빠 sns 하시니.”
“스타그램은 하시는 거 봤어요.”
“그럼 이름이 뭐야?”
“고광*” “응!” “고광0”
어디선가 스쳐간 흔한 이름은 아니다. 그자리에서 이름을 찾았지만 비슷한 이름이 여럿, 쉽게 찾을 수는 없고 시간만 홀연히 흘러간다. 이름과 거주지역을 알고 있으니 찾는 건 시간 문지다 집으로 돌아가 찾아보기로 한다. 뭔가 한 녀석의 맘을 사로 잡은건지 내 주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다시 이어진 대화는 10분이 지나 끝나고 재밌게 낚시하라는 말과 함께 올레길로 복귀한다. 계속 이어진 바다가 조금 지루해지려는 찰나 밭담이 이어진 왼쪽 들길로 들어선다. 파란 물감을 부은 듯한 오전의 하늘은 온데간데 없고 우중충 먹구름이 하늘을 지배한다. 일기예보가 예고한 비 소식이 적중하려는 순간이다.
익숙한 풍경이 반갑기도 했지만 급한 마음에 걸음에 조금 더 속도를 붙여 오버랩 시동을 걸었다. 힘에 겨운 몸은 곧 쓰러지기 일보직전이며 주저앉고 싶은 심정만 가득하다. 땀으로 범벅된 몸은 지질대로 지쳐갔고 콜라보의 결말은 별방진에 닿았고 막을 내렸다. 어수선한 날씨를 받아들이며 마지막 몇분을 불태운다. 힘겨운 상태에서 생각나는 건 오직 하나다. 갯강구에 대한 충격과 공포 그리고 반전을 안겨준 반가운 제주 아이들의 소소한 놀이 낚시다. 제주 아이들의 낚시법을 하나 배웠다. 과연 그런 낚시를 할 용기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 친구들을 다시 한 번 더 만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