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코스, 닭머르 풍경
오늘도 여전히 올레길 위에 나를 올렸다. 그 중에 도심을 시작으로 뻗어가 자연의 경관을 즐길 수 있는 18코스다. 매일매일이 다른 풍경 오늘은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심히 기대되고 심장이 요동친다.
올레 18코스의 공식안내소 간세라운지이면서 각종 음식을 판매하는 관덕정 분식점이 18코스의 시작이다. 거기서 중앙로를 지나 귤림서원과 오현단을 지나면, 제주의 역사가 가장 오래된 동문 시장을 살짝 돌아보게 된다. 한마디로 안내소부터 동문시장까지 걷는 내내 제주의 오랜 기억의 향기를 맡게 된다. 사라진 과거와 현재의 조화로움이 과히 신비롭게 다가온다.
시작부터 혀의 향연속으로 들어선다. 관덕정 분식 떡볶이를 먹어보고 싶었지만 영업시간이 11시 30분으로 너무 늦다. 동문시장을 빠져나오기 전 호떡의 달달한 냄새에 코를 잡히고 혀는 달달할에 온몸이 녹아내린다. 배는 고프진 않지만 달콤함에 가던 길이 이래저래 고달프다. 이른 아침을 먹고 나왔지만 먹지 않을 수가 없다.
"아저씨 호떡 하나 주세요."
1분 2분이 지나 종이컵에 쏙 담겨진 호떡이 나왔다. 어찌나 뜨거웠는지 베어물려는 순간 입천장은 이미 까졌다. 입으로 후후 식혀가며 살짝 깨물어 입안으로 쏙, 달달한 호떡하나에 온몸이 사르르 하루종일 힘들지 않을 그런 기분 좋고 느낌 좋은 아침이다. 호떡 하나에 500원 가격마저 가성비가 갑이라 놀랐다. 호떡 하나에 잃어버린 혀의 미각은 제주 1호 호떡집으로 찜해놓는다. 동문시장을 빠져나와 건널목을 건너면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산지천이 나온다. 산지천을 따라 전시되어 있는 작품 사이를 누비며 즐기고 감상에 젖은 사람들. 11시가 되면 산지천에서 분수쇼가 열린다는 방송이 흘러나온다. 놓칠 수 없는 분수쇼라 뒷끝도 깨운치 못한데 보고 싶은 건 많고 시간은 없고 갈길도 머니 마음만 급하다. 뒷끝이 두려움에 두눈 질끈 감고 떠나야 할 길을 나선다. 올레 리본을 따라 길위를 걷고 걷다 어느새 김만덕 객주에 다다랐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잠잠하던 객주가 영업중에 돌입했다. 돌담과 초가지붕 열려진 대문사이로 들어오라며 외면하던 나에게 한사코 손짓을 해온다. 객주에서 피어오르는 기름내에 구수한 막걸리 한잔이 떠오른다. 예약없는 손님이 찾아와 오늘은 글렀다. 다음기약을 바라며 떠나지 못하는 몸을 이끌고, 아쉬움 마음을 달래며 건입동 벽화골목으로 향한다. 계단을 오르고 작은 놀이공원을 지나자 이미 골목길 벽화가 대화를 걸어왔다.
소녀소년이 좋아할 아기자기한 면도, 사진을 찍고 싶은 욕구를 발생시키지도 않지만 묵묵히 전해오는 그림의 무게가 중엄하다. 스스로 두손 가지런히 모아 그림 이야기를 경청하게 된다. 나도 모르게 공손해지니 이건 뭐지?
100여 미터의 벽화골목을 빠져나와 정신을 차려보면 제주항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인도위를 걷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어느새 사라봉 입구 앞에 서 있는 나, 출발의 시작부터 숨이 턱까지 꽉 차올랐다. 천석이 형과 노을을 본다며 사라봉의 수많은 계단을 올랐던 몸의 기억이 생생이 전해온다. 다행이 계단 끝엔 다다르면 보상이 기다림에 한결 힘이 났다.
헉헉되는 땀으로 이마가 젖어들때쯤 정상의 풍경이 턱까지 차버린 숨을 멎게 한다. 사계절 내내 다른 모습을 그리는 사라봉의 이번엔 마주할 계절은 가을이다. 봄이 되면 벗꽃잎이 바다 바람과 춤을 추고, 여름이 되면 시원한 바람이 가을과 겨울사이 한결같은 사랑을 주는 까슬한 노란 털머위꽃이 사람의 마음을 뒤흔든다. 사계절의 맛을 보는 사라봉호의 매력에 빠진다. 사라봉의 정자에서 거칠어진 숨을 고른뒤 사라봉을 내려가 다시 별도봉의 둘레길을 돌아 화북 포구로의 행차다. 해안도로 방파제로 부디치는 파도와 바람은 땀으로 젖은 발걸음을 가볍게 만든다.
화북포구가 가까워지자 시끌벅쩍 소란스러운 곳을 찾아 몸은 궁금함을 쫒아갔고, 주변은 할 일 없는 중년 아저씨들이 삼삼오오 모여 처음보는 듯한 게임에 열광했다. 작은 종지에 손마디정도의 나무를 넣고 휙 던진다. 경상도, 충청도, 강원도, 전라도 등 각지를 돌아다녀봐도 유일핦것이다. 밥값 쏘기, 커피 사주기 무엇이든 무슨 내기를 하는 건 분명하다. 큰소리로 언성이 높아지며 쌈박질이 곧 일어날 수도 있겠다. 옆에서 지켜보는 나로선 오매불망 당황스러웠지만 주위를 둘러싼 또래의 표정은 당연하다고 말을 걸어왔다. 걸음을 멈춘채 계속 그 상황에 발을 묶여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재미있어 보여 그들곁에 끼여 잠시 놀아 볼 기량이었지만 실패다. 다시 18코스 중간 지점인 삼양검은모래 해변으로 눈길을 돌렸다.
사탕하나도 건지지 못한 까먹은 시간에 속도를 조금 더 내어 발길을 재촉한다. 사라봉에서 연락을 주고 받았던 서울 아줌마의 그림자를 쫓았지만 보이지 않는다. 웅장한 별도환해장성이 현무암으로 까맣게 벽을 마주했다. 왜적을 막고 성난 파도마저 무용지물로 만들 위엄이 스며든다. 잔디위에 돗자리라도 깔고 눕고 싶은 마음이다. 잠시 농로길을 걷고 해안길을 지나 까만 모래로 가득찬 삼양해변에 닿았다. 삼양동도 알게 모르게 역사가 많은 곳으로 당장 한곳 한곳 둘러 보고 싶은 마음이 심장을 들끓인다.
이제 곧 닭머르 해변, 끝까지 간다. 어디까지 가면 서울 아줌마를 만난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