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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로 Jan 04. 2024

이 중에 네 취향인 게임이 하나쯤은 있겠지

<인디게임 명작선>

화려한 그래픽과 호화로운 성우진을 자랑하는, 이른바 ‘대작’이라 불리는 게임보다 다소 조악하더라도 개성 넘치는 인디게임에 끌립니다. 학창 시절에는 RPG 제작 툴인 ‘쯔꾸르’를 이용해 간단하게나마 게임 개발에 도전한 적 있을 정도입니다(물론 많은 인디게임이 그렇듯 완성이라는 결과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B급 문화, 키치, 마이너, 서브컬처와 같은 키워드를 사랑하는 제가 인디게임에 마음이 가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번역을 마치고 책까지 나온 시점에서 샘플 번역을 돌이켜 보니 가슴 한구석이 간질거린다. 들어가고 싶은 회사가 생겨 잔뜩 흥분한 상태로 작성한 자기 소개서를 오래간만에 마주했을 때 같달까. 샘플 번역을 할 때까지만 해도 내 안에서 인디게임의 이미지는 ‘아오오니’ ‘유메닛키’ ‘동방 시리즈’ ‘두근두근 문예부’를 적당히 뭉친 다음 블러 처리한 것이 연기처럼 풀풀 떠다니는 상태였다.


하지만 번역을 맡고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보니 인디게임의 세계는 생각보다 훨씬 넓었다. ‘마인크래프트’도 ‘어몽어스’도 시작은 인디게임이었다. 비디오 아트에 가까워 보이는 ‘September 1999’도 인디게임이다. <월리를 찾아라>에 움직임과 소리를 곁들인 ‘Hidden Folks’, 여행지에서 만난 풍경을 사진 대신 게임으로 남긴 ‘Explore Fushimi Inari’, 암으로 어린 아들을 떠나보낸 개발자 부부가 아들을 추억하며 만든 ‘That Dragon, Cancer’도.


<인디게임 명작선>은 이처럼 ‘인디다움’이라는 다소 모호하지만 매력적인 단어로 묶이는 263가지 타이틀을 액션, 슈팅, 어드벤처, 퍼즐, 롤플레잉, 전략 등의 장르로 분류하고 500자 내외로 소개한다. 인게임 스크린샷이 곁들여져 있어 한 권의 카탈로그를 보는 듯하다. 중간중간 배치된 인디게임의 역사나 과제 등에 관한 칼럼이 책의 무게감을 잡아준다.


처음 번역할 때만 해도 재미있어 보이는 게임은 틈틈이 플레이할 생각이었지만, 누구나 계획만큼은 거창한 법. 현생에 쫓기고 일정에 허둥대다 보니 하나도 플레이하지 못한 채 마감일을 맞이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마감일이 되어서야 번역가 소개를 작성한다. 번역서 목록에 한 권이라도 더 적으려는 햇병아리 번역가의 발버둥이랄까(…) 번역가 소개를 적다가 문득 저자 소개와 톤을 맞추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쯤 흥분 상태에 젖은 마감일이 아니었다면 한참 더 고민하다가 그만두었을 텐데. ‘멜티블러드’를 접한 것은 중학생 때였는데, 원작이 있는 줄도 모르고 ‘예쁜 캐릭터+재미있는 게임’ 조합에 그저 좋다며 플레이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마감도 끝나고 결혼식이라는 큰 산도 넘었으니 궁금했던 게임을 하면서 여유를 즐겨 보려고 한다. 우선은 ‘VA-11 HALL-A’와 ‘바바 이즈 유’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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