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억은 있으시죠?
"20억은 있으시죠?"
나는 누구에게 한 말인 줄 몰라 뒤를 돌아보았다. 내 뒤에는 부동산에서 붙여놓은 개발구역만 펄럭거렸다.
"저요?"
내가 주민센터에 있는 공익근무요원처럼 되묻자 부동산 중개업자가 안경을 내렸다.
"집 보신다면서." 그가 친절한 듯 무례한 듯 건들건들한 말투로 말했다.
"20억짜리 집을 여쭤본 건 아니었는데..."
"이 동네는 이제 그 아래로는 없어. 급매로 엊그제 나온 17억짜리 주택이 있긴 한데 좀 낡았고."
"... 사람들은 다 20억이 있단 말이에요?"
"에이, 여기 서울이잖아."
"서울이고 개울이고 어떻게 수중에 20억이 있어요? 두 번 다시 태어나면 몰라..."
"끔찍한 소리 하지 마쇼. 두 번 다시 태어나면 이제 20억으로 집 못 사요. 그때 되면 60억은 있어야 저기 강북에 40년 된 구축 간신히 들어가지. 총각, 집은 지금이 제일 싸. 결혼은 하셨수?"
"못해요."
"왜?"
"20억 없어서요."
부루퉁하게 부동산을 나오자 여기저기 집회를 알리는 전단과 현수막이 널려있다. 읽어보면 이게 진짜인가 싶은 집회들이다. 전광판에 걸린 뉴스에는 어이가 없는 사람들의 처참한 발언들이 [속보]를 달고 나온다. 이쯤 되면 민주주의가 동음이의어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민주주의와 개소리는 이음동의어다.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근처 식당 앞에서 메뉴를 훑었다. 언제부터 밥이 이 가격이었던가. 제일 싼 메뉴로 자꾸만 눈이 간다. 먹고 싶어서 고르는 것이 아니라 가장 저렴해서 고른다고 생각하니 식당이 영 내키지 않는다. 이 돈 주고 먹을 바에야 차라리, 싶은 생각에 결국 오늘도 편의점으로 향한다.
이 집값과, 이 화폐가치와, 이 가치관과, 이 발언과, 이 정국이 진짜인가?
온 세상이 트루먼쇼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