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다르지만 비슷한 도시
하노이는 종종 '아시아의 파리' 라고 불려. 이 별명만 들으면 하노이는 굉장히 로맨틱한 도시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이면에는 베트남의 아픈 역사가 숨어있어.
베트남은 과거 프랑스에게 60년간 식민 지배를 당한 역사를 가지고 있어. 그래서 대부분의 동남아 국가들이 중국의 영향으로 한자문화권에 속해 있던 것과 달리, 베트남은 프랑스의 영향을 받아 서구화가 진행되었지.
그 결과 하노이를 비롯한 베트남 전반에서 프랑스 풍으로 지어진 건물들을 쉽게 볼 수 있어.
하노이의 대표적인 프랑스 풍 건물로는 하노이 오페라 하우스, 성요셉성당,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 힐튼 하노이 오페라, 주석궁 등이 있어.
이 장소들은 하노이의 관광지로도 굉장히 유명한 건축물이야. 이런 건축물뿐만 아니라 거리, 생활 곳곳에도 프랑스의 흔적이 하노이에는 짙게 묻어 있어.
그 중에서도 하노이에서 프랑스 식민지배의 흔적을 가장 강하게 느낄 수 있는 장소는 호아로 수용소야.
이곳은 베트남 지식인들의 독립 열기가 거세지자, 프랑스 정부가 이들의 저항을 제지하기 위해 세운 수용소인데, 건립 당시 호아로 수용소는 인도차이나 반도 전체를 통틀어 가장 큰 규모의 수용소였어. 현재는 수용소의 일부만 보존되어, 그때의 아픔을 담은 박물관의 역할을 하고 있어.
노란색 벽 사이에 위압적으로 위치한 검색은 출입구는 주민들에게 ‘괴물의 입’이라고 불려졌대. 그만큼 호아로 수용소는 베트남 시민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거지.
사진에 보면 MAISON CENTRALE(메종 센트랄레) 라고 써있는 걸 볼 수 있는데, 프랑스 사람들은 이곳을 메종 센트랄레로 불렀대.
하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프랑스인이 작명한 이름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뜨거운 독립 의지를 호아로 (화로)에 비유하여 이곳을 호아로 수용소라 부르게 된 거야.
수용소 내부의 공기는 왠지 더 싸늘하고 무거운 느낌이 드는데, 마치 한국의 서대문형무소를 떠올리게 해.
그 당시의 베트남인들이 수용소 안에서 어떻게 생활했고, 어떤 고문을 받았는지를 생생하게 관찰할 수 있어. 유리 벽 안에 보관되어 있는 의복, 식기, 고문도구 등을 보면, 그들의 생활이 어땠을지 고스란히 느낌이 와.
가장 충격을 받았던 순간은 기요틴이라고 불리는 단두대를 봤을 때였어.
이 단두대는 과거 실제 독립운동을 하던 베트남 국민들의 목을 자르는데 사용했다고 해. 전시되어 있는 이 낡은 물건이 과거 실제 사람을 죽이는데 사용되었다고 하니, 왠지 모를 괴리감이 들었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 칼날에 목이 잘려 나갔을까.
그 사람들은 저렇게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을까.
그걸 알면서도 독립운동을 그만두지 않은 것일까.
이곳에 갇혀 미래에 다가올 죽음을 천천히 맞이하는 일에 비하면, 죽음 그 현상 자체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실제로 날 죽이지는 못하지만, 살아서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 만드는 것,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 없을 거야. 그럴 바엔 차리지 죽는 게 100배는 낫겠어.
죽는 것보다 못한 상황에서도 꿋꿋이 살아낸 그들을 보면, 얼마나 갈망하는 목표를 가졌길래 이곳에서 살아냈을까 하는 경외감이 들어.
죽음보다 못한 상황에서 조차, 그 목표를 이뤄내기 위해 죽을 수 없는 그들의 삶이라니.
그들의 삶을 보며, 회사를 다니면서 느끼는 나의 투덜거림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어.
자유에 족쇄가 채워진 그들과 비교할 수 없는 자유를 누리고 있으니까. 담배를 피러 옥상에 올라갈 수 있는 자유, 점심메뉴를 고를 수 있는 자유, 아주 가끔이지만 휴가를 쓸 수 있는 자유 등등.
생각보다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물론 나도 알아. 이런 감사함은 아주 일시적일 것이며,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 툴툴거리며 회사를 다닐 거라는 거. 하지만 이런 각박한 실상은 잠시나마, 현재의 삶에 감사할 수 있는 여지를 줬어.
갑자기 떠오른 기억인데 사람들이 봉사활동을 하는 이유는 단지 남을 도와주기 위해서가 아니래. 그 글에서 말했던 봉사활동을 하진 숨겨진 이유는 아래와 같아.
1.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
2. 그래도 그들보다는 나은 삶을 살아 간다는 행복감.
3. 내가 그들이 아니라는 안도감.
이곳에서 내가 느낀 감정이 2번과 비슷하지 않을까. 교도소에 삶이 아닌, 지금의 삶을 살고 있어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수용소를 보면서, 만약 내가 과거 일제식민지 시절에 태어났다면 독립 운동에 참여했을까 하는 물음이 들었어. 깊게 고민하지 않아도, 아마 안 했겠지.
그때도 지금처럼 먹고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나와 달리, 넌 독립운동에 참여했을 거 같아. 가끔 시위에 참여하며 불합리한걸 불합리하다고 말하는 넌, 과거에도 분명 독립 운동을 앞장서서 주도했을 거야.
그리고 만약 과거에도 우리가 만났다면, 난 위험하다며 널 말리는 동시에 너에게 줄 도시락을 싸줬을 거 같아. 다소 엉뚱한 상상이지만, 이건 꽤 정확할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