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인 Jan 18. 2020

직장인 여행자-(5)여유로운 평일의 점심_하노이

평일 낮에 즐길 수 있는 여유로운 점심

점심을 먹으러 호안끼엠 호수 근처에 있는 피자 가게에 왔어. 이 가게는 하노이에서 유명한 피자 가게인데, 네이버에서 하노이 맛집을 검색하면 최상 단에 노출될 만큼 한국인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아.



일본인 오너가 운영하는 가게라서 그런지, 일반 로컬 식당보다 가격대가 조금 있어. 그래도 여전히 한국의 물가에 비하면 저렴해. 



이곳에서 유명하다는 부라타 치즈를 올린 피자와 코코넛 주스를 주문했어. 이곳의 피자는 직접 화덕에 구워져서 만들어져. 실제 식당 안에 설치된 커다란 화덕에서 직접 피자를 굽는 모습을 볼 수 있어. 



피자 위에 올려있는 저 치즈가 부라타 치즈인데, 달랏 지방에서 직접 공수한 치즈로 피자를 만든대. 달랏이란 지역은 우리나라로 치면 임실 같은 곳이야. 베트남 내에서 치즈로 유명한 지역이지.

부라타 피자를 주문하면 종업원이 직접 친절하게 치즈를 잘라서 피자 위에 펴 발라줘. 처음 먹어본 부라타 치즈는 시원한 우유 맛이 났는데 부드럽고 촉촉했어. 그런 치즈를 짭짤한 피자와 함께 먹으니, 정말 완벽한 조합이었어. 장담하는데 이 피자 가게가 한국에 분점을 차린다면, 순식간에 맛집으로 등극할 거야.


피자를 먹다 보니까 너무 맛있어서, 다 못 먹을 줄 알면서도 파스타를 주문했어. 김가루가 올려진 파스타라니, 어떤 맛이 날지 너무나 궁금했거든.



기대감을 품고 파스타를 먹었는데, 사실 파스타는 기대에 좀 못 미쳤어. 파스타와 김가루가 조화가 되지 못하고 김가루 맛이 너무 강하게 느껴졌거든. 파스타의 간도 내 입에는 너무 강했어. 

다음에 같이 오면 그땐, 파스타 대신 피자를 2종류 시켜먹기로 하자.



이렇게 여유롭게 평일 점심을 먹을게 얼마나 오래전 일이었는지 기억이 안 나. 항상 12시 30분이 되면, 배가 고픈지 아닌지에 상관없이 그냥 점심을 먹었으니까. 딱히 배고 고파서 먹는 게 아니라 그냥 시간이 되었으니까 먹는 거였어. 그렇게 먹는 점심은 맛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할 겨들도 없었어. 배를 채우기 위해 먹는다, 이게 전부였지.


그랬던 내가 오후 2시가 넘은 지금 식당에 앉아 점심을 먹고 있어. 

겨우 평일에 먹는 점심 따위에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 


밥을 먹으며 시계를 볼 필요도 없으니, 주변으로 시선이 가게 돼. 이 음식이 어떤 맛인지를 느끼게 되고, 주변에 밥을 먹는 사람들의 모습에도 눈길이 가. 옆 테이블에서 밥을 먹고 있는 젊은 남자에게 “진짜 맛있는 집이에요” 라고 말을 걸고 싶어 진다니까. 



그런데 저 남자는 도대체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 길래 이 시간에 점심을 먹을 수 있는 걸까?, 나처럼 휴가를 써서 쉬고 있는 걸까? 궁금해졌어. 한국에서 밥을 먹고 커피를 테이크아웃 하기 위해 카페를 가면, 많은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어. 그 사람들을 볼 때마다 참 궁금하고 부러웠는데 지금은 나도 그 사람들처럼 여유를 즐기고 있다니.



점심을 먹으면서 시계가 아닌 주변을 둘러보게 되는 경험도 낯설고 신선해. 

그래 원래 점심은 이렇게 먹는 거였어. 오후의 해가 만들어내는 따뜻함을 느끼며, 여유롭게 음식을 음미하는 것. 

몇 시간 동안 점심을 먹는다는 프랑스 인이 된 것 같아. 



회사에서도 먹고 싶을 때 점심을 먹을 수 있는 복지혜택을 제공했으면 좋겠어. 예를 들어, 11시에서 3시 사이에 아무 때나 1시간 점심 먹기 같은 혜택 말이야. 그렇게 되면 똑같은 1시간이라도 체감하는 시간은 정말 다를 텐데.


그리고 먹기 싫은 메뉴를 불편한 사람과 함께 먹을 필요도 없잖아. 팀원들과 함께 점심을 먹길 좋아하는 팀장은 항상 자기가 먹고 싶은 메뉴를 정해. “오늘 김치찌개 어때?” 라고 물어보는 척하지만, 이건 질문이 아닌걸 나도 알아. 그럼 난 별로 먹고 싶지도 않은 김치찌개를 먹으러 그를 따라가야 해. 

그 김치찌개 집은 좁은 데다 환풍도 잘 되지 않아, 밥을 먹고 나오면 온 몸에서 김치찌개 냄새가 진동했어. 향수를 뿌려도 그 냄새는 쉽게 사라지지 않아. 그럼 그 찝찝함을 안고 안고 퇴근까지 몇 시간을 더 앉아 있어야 하는 게 너무 싫었어. 



회사 업무 시간 중, 유일하게 쉬는 시간을 항상 불편한 사람들이랑 보내는 것도 숨이 막혀. 냅킨을 뽑아, 그 위에 숟가락과 젓가락을 놓고 물을 따르는 일까진 괜찮아. 하지만 의미 없는 대화로 채워지는 그 시간들은 너무 불편해. 이런저런 말들이 오가지만, 그 자리는 어떤 자리보다 말을 아껴야 하는 자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해서는 안되며, 의미 없는 말을 듣고만 있어야 해. 팀장이 갤럭시 S10을 샀다는 사실과 그 핸드폰이 어떤 성능을 가지고 있는지에 조금의 관심도 없지만 듣고 반응해야 해.



언제나 그렇게 이어지던 평일 점심 굴레에서 벗어난 지금 이 순간이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 기분이 정말 좋아. 세상 사람들 모두가 행복해 보여. 먹어야 되니까 먹는 점심이 아니라 맛있기 위해 먹는 점심이라니. 


  겨우 평일에 먹는 점심 하나에 이렇게 행복해져. 이렇게 행복한 기분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없다는 사실이 조금 안타까울 뿐이야. 네가 옆에 있었다면,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와 이건 진짜 인생 샷이다라는 호들갑을 떨었을 텐데.



  오늘 제대로 된 점심을 먹을 시간도 없었던 너에게 미안하지만, 오늘 내 점심은 정말 완벽했어. 굳이 베트남까지 와서 왜 피자를 먹어야 했는지에 대한 의심을 지울 수 있는 식사였어. 


  이곳에서 좀만 더 여유를 즐기다 나가야지.

작가의 이전글 직장인 여행자-(4)아시아의 파리_하노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