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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kypen Oct 05. 2021

逃避の国 / Escapeland

effe - 逃避の国 / Escapeland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들어진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서 등장인물의 상황에 깊게 공감하거나 유사한 정서를 느끼는 사례는 아주 흔합니다.


그런데 가끔은 ‘단지 만들어진 허구의 세상일 뿐인데, 우리는 뭔가 착각하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픽션을 자주, 많이 즐겼던 사람일수록 픽션 세계가 가진 한계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 때가 언젠가는 생깁니다. 그럴 때 우리는 때로는 회의감을 느끼며, 단순히 ‘허구적’ 이라는 이유로 의미를 찾기 어렵다고 느끼거나 심한 경우에는 무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간이 만든 픽션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렇게나 아름다운 세상도 있구나!” 하고 느끼는 지점도 분명히 있습니다. 이는 통념적으로 생각하는 책이나 영화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저는 음악도 충분히 이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굳게 믿으며, 그런 놀라운 역할을 매우 빼어나게 수행하는 음반이 바로 이 <逃避の国 / Escapeland> (편의상 이하 음반 제목과 트랙명은 영어표기로만 기재) 라고 생각합니다. 만들어진 세계, 픽션의 세계가 진정으로 아름답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음반이라고 저는 강하게 주장합니다.


이 음반은 청취시 어떤 ‘Escapeland’ 라는 가상의 환상세계를 여행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도록 의도하고 있습니다. ‘Thw other side of the river’, ‘living in a hut’, ‘fortress of ice’, ‘tower of helix’ 등의 트랙 명은 어떤 가상의 판타지적 세계를 상정하고 그 세상 속을 천천히 여행하는 것 같은 묘사로 되어 있습니다. 사실 이 점만 보면 ‘뭐 그렇게 특별한지는 잘 모르겠는데? 작품에 있어서 판타지 세계를 의도하는 건 아주 흔하잖아.’ 정도로 생각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음반의 정말 놀랍고 대단한 점은 아티스트가 음의 사용을 절대로 과장해서 오남용하지 않고, 굉장히 절제된 사용량 내에서 매우 효과적으로 이러한 세상을 그려내 청자의 고양감을 극대화했다는 점입니다.


아주 간단한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보통 ‘맹수’ 를 음악으로 표현한다고 할 경우, 대부분은 맹수의 강함과 마주친 사람들의 두려움을 묘사하기 위해 많은 타악기 사용과 현란한 현악기의 사용으로 그것을 표현하고는 합니다. 하지만 이 음반은 그렇지 않습니다. 4번 트랙 ‘beast of the forest’ 의 경우, 최소한의 전자음 사운드만으로도 맹수에 대한 두려움과 긴장감을 무척이나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트랙을 들을 때마다 저도 모르게 긴장하는데, 이 느낌이 기분나쁘지 않고 심상에 대한 적확한 묘사가 이루어지는 점에 있어 매번 감탄하고는 합니다.


다른 트랙들도 마찬가지로 주제를 담아내는 데 있어 결코 과다한 음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제목이 되는 트랙과 아주 꼭 맞는 음악적 묘사를 준수하게 해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음반을 들을 떄 간결하면서도 핵심만 꼭 잘 짚어내는 글을 읽는 것과 같은 쾌감을 느낍니다. 최근의 동인음악 트렌드는 주제의식을 위해 너무 많은 음을 쌓아올린다는 생각이 있는데, <Esacapeland> 는 그렇지 않기에 편안한 감상이 가능합니다.


더불어 이 음반의 대단한 점은 전체 음반 자체가 마치 하나의 곡처럼 느껴지는 효과가 있다는 점입니다. 저는 <Escapeland> 를 들을 때 거의 대부분  처음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중간 트랙 하나 빼놓지 않고 순서대로 전부 감상하는 편입니다. 왜냐하면 이 음반에 실린 모든 트랙이 차곡차곡 쌓아올려져 마치 원래부터 하나였던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작은 사원, 얼음 요새, 나선 탑… 모든 요소들이 하나로 짜 맞춰져 <Escapeland> 라는 하나의 세상를 구축합니다.


특히 이 음반의 첫번째 트랙인 ‘the other side of the river’ 와 마지막 트랙 ‘garden of the end’ 는 정말이지, 마치 이야기책에 있어서 완벽에 가까운 도입부와 결말부를 읽는 것 같은 벅찬 기분이 들었습니다. 같은 고양감이라 할지라고 시작할 때와 끝맺음을 할 때에는 그 감정의 결이 서로 다른 법인데, 그것을 적재적소에 정확히 들어맞는 방식으로 이루어 내어 굉장한 마음의 울림을 일구어냅니다.


만들어진 세계를 아무리 좋아하더라도, 너무 많이 접하다 보면 때로는 혼란이 오고, 반대 급부의 논픽션의 세계에 대한 앎의 갈증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들어진 픽션의 세계는 아름답습니다. 이 음반을 들으면 그러한 세계에 대한 깊은 심미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차오르는 희열을 느끼게 됩니다. 벅찬 감동을 느끼게 됩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됩니다.


도피의 나라(Escapeland) 에서 날개를 펼치고 날아온 요정이 마치 제 귓가에 나지막히 속삭이는 것 같습니다. ‘가끔은 현실에서 벗어나 이런 세상으로 오는 것도 괜찮아’ 라고 말입니다. 저는 그 부름에 언제나 기꺼이 응하는 것입니다.



Official Site: https://effeinfo.tumblr.com/post/173826986319/new-albumescapeland


Bandcamp: https://effexxx.bandcamp.com/album/escapeland

Spotify: https://open.spotify.com/album/0Ct56vE9DmysFkKW6xTrFB?si=x1EsyoHbSk2_179jJgLy2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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