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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kypen Aug 15. 2023

선물

백예린 - 선물

소중한 작품은 그 작품의 내용 뿐만 아니라, 작품의 물성까지 특별합니다. 소설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에서 어떤 책은 적힌 내용 뿐만 아니라 책 자체에 특별한 인연이 깃든다고 말한 것처럼, 저는 음반에도 그러한 마법이 있다고 믿습니다. 원래부터 실물 음반을 선호하지만 특히 백예린님의 「선물」 앨범은 물성에 대한 애정을 더욱 강렬하게 느끼는데, 그 이유는 이 「선물」 이 제가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 받은 음반이기 때문입니다.


「선물」 은 가수 백예린님이 한국 대중가요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불러 수록한 커버 앨범입니다. 개인적으로 백예린님의 정규 앨범도 좋아해 소장해서 듣고 있지만, 유독 이 「선물」 은 더욱 자주 꺼내고 거듭 마음에 새기고 싶어집니다. 담백하면서도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다시 새롭게 불린 6곡들은, 원곡 자체도 매력있는 명곡들이지만 유독 이 음반에 수록된 커버곡 쪽이 마음을 더 크게 울렸습니다.


아마 제 생각에, 이 앨범이 그저 여러 유명곡을 두서없이 커버만 했더라면 이렇게 많은 감동을 주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앨범의 진짜 가치는, 모든 수록곡들이 소중한 누군가를 향해 마음을 담아 '선물' 한다는 정서를 한가득 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럴때마다', 'Antifreeze', '돌아가자', '왜? 날', '한계', '산책' 은 대부분 서로 다른 아티스트가 제각각 부른 곡들이지만, 백예린님은 이 모든 노래를 '소중한 사람에게 소중함을 주고싶다' 는 마음 하나로 그러모았고, 하나의 작품으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그럴때마다' 를 들으면 휴일에 시간이 남을 때 그대와 함께 소소한 시간을 보내고 싶고, 그대가 인생의 고단함을 느낄때 작은 위로라도 되어주고 싶은 다정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일상 속에서 겪는 다양한 순간을 소중한 사람과 공유하고 싶고, 내가 상대방에게 편안함을 줄 수 있다면 더없이 행복할 것이라는 상냥함이 가득합니다. 몽글몽글한 마음이 피어올라, 듣는 저도 이런 마음을 소중한 이에게 듬뿍 주고 싶다는 마음이 부드럽게 스미는 좋은 곡입니다. 토이의 원곡에서는 '남자' 라고 특정화 되어있는 가사를 누구든 이입할 수 있도록 '사람'으로 개사한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Antifreeze' 는 이 앨범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곡인 것 같습니다. 음악이 격정적인 것은 아니나 '너와 나' 의 세계관이 우주 차원으로 확장되어 배경이 탁 트이는 기분이 듭니다. 너와 내가 만나고, 그 만남이 마치 우주 속 현상처럼 운명과도 같다는 메시지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너는 내가 처음 봤던 눈동자라는 가사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온 인생이지만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만남은 그대가 처음이었다는 뜻일 것입니다. 빙하기와 같이 인간이 대응할 수 없는 거대한 고난이 닥쳐오더라도, 우리가 서로를 소중하게 대할 수 있다면 결코 우리를 해할 수 없고, 우리의 인생을 누리면서 희망을 추구하자는 반짝이는 메세지가 담겨 있습니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결코 변하지 않는 관계를 유지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함께 같은 마음으로 미래를 바라볼 수 있다면 우리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마지막 후렴구가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돌아가자' 는 누군가를 사랑하다보면 피할 수 없이 겪는 방황에 대해 그린 곡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너무 소중하기 때문에 하루종일 그를 생각하고, 마음이 어지럽고 내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도 모호해지는 순간이 올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헤메이던 꿈의 끝에서 다시 반대편으로, 내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나에게 소중한 이는 바로 그 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날' 은 사랑을 하는 과정에서 겪는 격정적인 감정의 기복에 대해 그린 곡이라고 생각합니다. 원제목인 '왜 날?' 에서 제목을 '왜? 날' 로 바꾼 이유는, 사랑을 하는 나라는 자아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왜 이런 감정이 드는거지?' 라는 의문과 고민에 방점을 두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설레는 것이 당연히 즐겁기 보다는, 이렇게까지 설레는 마음에 기쁘면서도 약간은 두려움이 드는 쪽에 가까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에게 받는 마음의 형태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쉽사리 받아들이기가 오히려 더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에게 감정을 느끼게 하는 그 이가 그만큼 소중하다는 증거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한계' 는 들으면서 가장 마음이 아팠던 곡이었습니다. 누군가를 너무나 소중하게 생각하고, 또 그만큼 잘 해주고 싶어도 결국 인간에게는 한계가 있습니다. 소중해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있고, 나에게도 현실적인 장벽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고 또 다하지만, 결국 내가 해주지 못하는 부분이 생길 수 박에 없습니다. 그런 것에 마음 괴로워한 나머지 '줄 수 없는 것에 미안해 하는 일은 이제 그만두겠다' 라고 단언하듯 말하지만, 결국 그 안에 담긴 진짜 의미는 '더 주고 싶지만 더 줄 수 없기에 괴롭다' 는 마음에 더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산책' 은 마무리 트랙으로서 더없이 적합한 곡이라고 생각합니다. 산책을 하면 아름다운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선선한 산들바람도 느끼고, 따뜻한 햇살도 내립니다. 그런 산책을 하면서 언제나 그대를 마음속으로 그린다는 것은, 이런 소소하지만 마음 충만한 행복을 당신에게도 기꺼이 주고싶다는 마음이겠지요. 산책이 거창한 행위는 아니지만 그 과정에는 언제나 새롭게 채워지는 따뜻함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대에게 아무런 대가없이 이런 기쁨을 선물하고 싶다는 마음을 담은 이 노래는, 언제 들어도 화창한 길을 산책하는 것 같은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백예린님은 선물 앨범 서두에 이 앨범에 담긴 노래가 불러일으키는 감정이 많은 이들에게 선물이 되기를 바란다고 적었습니다. 진심어린 사랑을 가득 담은 선물을 말입니다. 그렇기에 앨범의 영어 제목이 'Love, Yerin (=사랑을 담아, 예린)' 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 없이는 진심어린 마음을 선물을 할 수 없으니까요.


요즘은 기프티콘 등의 디지털 코드로 선물을 주고받는 일도 흔하지만, 진정한 정성을 담은 선물을 할 때는 손에 쥘 수 있는 물건을 고르는 일이 대부분입니다. 백예린님이 선물을 포장지로 두르는 것처럼 자신의 노래를 음반이라는 형태로 잘 싸서 우리에게 전해주었습니다. 또 저의 소중한 사람이 그 음반을 마음 깊이 감동받으며 들었고, 저라는 사람에게 앨범을 건네주며 또 그 마음을 선물했습니다. 그렇게 받은 「선물」 을 들으며 저 역시 정말 많은 선물을 받았습니다. 수록된 노래 하나하나가 저에게 주는 다채로운 감정 뿐만 아니라, 소중한 사람이 저에게 전해 주고자 하는 지극한 정성이 합하여, 부드럽게 요동치는 감동을 마음속에 한가득 채울 수 있었습니다.


저 역시 누군가에게 이 마음을 글의 형태로 담아 선물로 줄 수 있다면 더없이 기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이 글이 저의 소중한 그이에게 사랑을 담은 따뜻한 선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YouTube: https://youtu.be/G-i3vUtasBw

Spotify: https://open.spotify.com/album/2K41KAlW6n9bVlRCQPVcSZ?si=sy-b1JHbRS-i2f9RGEQax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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