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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kypen Oct 17. 2023

the automatic life

kidlit - the automatic life


삶에 있어 소중했던 순간에 대해 생각해 보면, 무언가 거창한 성과를 냈을 때 보다는 평범한 일상 속 장면이 더 많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중요한 시험에 합격하거나 업무에서 큰 성과를 냈을 때의 짜릿함도 좋지만, 별다른 굴곡 없는 하루 속의 잔잔함에 그저 시간을 둥실 흘려보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득 차기도 합니다. 생각해 보면 그런 일상이 풍요로울 수 있었던 것은 '나' 의 곁에서 함께 시간을 나누는 소중한 '너'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추억을 기록한다는 것은, 이처럼 '나' 와 '너' 가 '우리' 로서 함께하는 순간을 포착한다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애프터 썬' 에서 아버지가 사랑하는 딸의 모습을 캠코더로 촬영하는데, 이 모습이 유독 '순간을 간직한다' 는 메타포로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이런 경험이 있다보니 kidlit님의 「the automatic life」는 기획할 때 영화 컨셉로 만들었다는 설명이 바로 와닿는 앨범이었고, 뿐만 아니라 분위기에서도 다정한 순간을 꼭 쥐어내는 따뜻함과 애뜻함이 가득 느껴졌습니다.


「the automatic life」는 사용한 악기의 종류가 다양하지는 않지만, 느슨한 분위기의 멜로디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아기자기한 전자음, 부드러운 어쿠스틱 악기 소리, 나직한 허밍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사운드를 듣다 보면 포근함이 느껴집니다. kidlit님의 사근사근한 목소리가 일상 속에서 상냥한 울림을 줍니다. 이 앨범을 들으면 들을수록 행복이라는 마음을 음악이라는 형태로 빚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나란히 바닷가를 걷다가, 부서지는 파도에서 윤슬이 반짝일 때, 그 모습을 바라봅니다. 그 시간을 잰다면 아주 짧겠지만 아름답다고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트랙 'happiness is' 에서 '영원과 닮은 시간의 틈새를 보았어, 틈새에 있었어' 라는 가사가 흘러나옵니다. 영원에 가까운 시간만큼 오래 존재해온 바다에서, 짧지만 눈부시게 터지는 틈새같은 빛을 발견할 때, 그 순간 너와 나는 그 반짝이는 순간을 그 누구보다 오랫동안 바라보며 경험하고 있습니다.


'the 'ordinary' today', 'seaside town' 같은 곡에서도, 평범하지만 무엇보다 확실한 지금, 화려하지는 않아도 소박하게 스미는 기쁨, 바닷가를 산책하는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his love song ' 'op.null' 같이 살다보면 침묵 속에 가라앉는 시간도 있습니다. 하늘이 언제나 맑을 수는 없듯이, 비구름이 낀 나날 속에서도 묵묵히 삶은 이어집니다. 그리고 'by the shore' 에서 바닷가를 바라보며, 너와 나의 마음을 서로 마주하는 순간을 다시금 만듭니다. 이런 순간 하나하나가 점이라면, 그 점들을 계속 이어나가는 삶이기에 아름다움이 끝없이 이어지는 것이겠죠.


'sandcastle' 의 '시간이 멀어지고' '호흡을 잊어버린 것 같다' 는 가사는 애처로우면서도 온기가 배어 있습니다. 시간의 흐름보다도, 심지어 삶을 산다는 자각보다도, 오로지 곁에 있는 '너'의 따뜻함을 느끼는 지금만이 중요합니다. 분명 우리들이 만든 모래성은 이윽고 파도와 바람에 휩쓸려 흩어질 것입니다. 곧 그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려워지겠죠. 그러나 함께 모래성을 만들었던 추억의 소중함은 바래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모래성 뿐만 아니라 바닷물도 모두 마르고, 모래더미도 바람에 닳아 전부 사라질 것입니다. 그럼에도 소중한 순간은 우리에게 있어 영원과 다르지 않습니다. 눈부시게 빛나던 우리들의 아름다운 순간순간은 「the automatic life」의 선율처럼 끝없이 굽이치며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드럽게, 찬란하게.


Website: https://www.kidlit.today/kl003

SoundCloud (Crossfade): https://soundcloud.com/kidlit_today/the-automatic-life-crossf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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