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rmir - Petit March
사람은 누구든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추억에 잠기는 순간이 있습니다. 가령, 어린 시절 닳도록 읽었던 그림책을 집안 구석에서 발견했을 때라던가요. ”이게 아직도 있었네?“ 라는 놀라움과 함께 케케묵은 먼지가 앉은 표지를 손으로 쓸어내리고, 책장을 펼치면 동화 속 세상을 담아낸 색색의 그림들이 행진곡처럼 이어집니다. 화려하고 알록달록해서 좋아했던 삽화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그 색이 바랬고, 언젠가 꼭 가고 싶었던 동화 세상은 이제서야 다시 머리속에 어렴풋하게 떠오르기 시작하며, 소중했던 책은 표지와 책등은 낡고 해져서 우둘투둘 튀어나온 종이의 흔적들이 남아있습니다.
Dormir(돌미르)는 작곡가 TOMOSUKE(토모스케)님과 보컬 Crimm(크리무)님으로 구성된 음악 유닛으로, 팝픈뮤직이나 기타도라 등 BEMANI의 여러 음악게임 기종에 악곡이 수록되어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Petit March」는 Dormir 명의로 나온 악곡들을 하나로 모아 발매한 앨범으로, 이 음반을 들을 때마다 어렸을 적 품었던 동심의 세계를 어른이 되어 다시 바라볼때 어떤 감정을 느끼고, 그 감정을 지금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경쾌한 ‘Introduction’ 으로 시작한 직후에 흘러나오는 ‘space merry-go-round’ 는 그 활기찬 시작을 더욱 끌어올리듯 유쾌한 기분으로 가득해지는 곡입니다. 광활한 우주를 회전목마를 타는 것처럼 거리낌 없이 탐험하는 자유분방함이 느껴집니다. ‘にゃんだふる55’를 들으면 마을 산책을 나갔다가 부뚜막 위에 올라가 지는 노을을 보는 나른한 고양이가 된 것 같습니다. ‘なまいきプリンセス’는 제멋대로 고집 부리는 몰라도 자기만의 꿈과 즐거움을 누구보다 오롯이 즐기는 아이가 된 것 같습니다. 재즈 장르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토모스케님의 작곡 실력과 아기자기 귀여운 크리무님의 목소리 덕분에 흔들거리는 박자에 올라타 세상을 즐겁게 누비는 감각이 더 또렷해집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추억으로서 돌이키는 과거가 어느 정도는 미화되어 있으며 반드시 아름답지만은 않았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Ferris wheel’ 을 들을 때는 관람차가 올라갈 때 점점 더 하늘과 가까워지는 광경에 신났지만 다시 내려갈 때는 아쉬움과 섭섭함을 느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みずうみの記憶‘는 친한 친구를 만들고 싶지만, 자신의 약점을 들키는 것이 두려워 사람들에게 선뜻 다가가지 못했던 주저함이 떠올랐고요. ‘星夢’ 는 소설 ‘은하철도의 밤’이 연상되었는데, 설령 만나지 못할지더라도 소중한 사람을 찾아 떠나는 애뜻함이 그려집니다. ‘おもちゃばこのロンド’는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렸지만 언제 그 사람이 다시 찾아줄 지 알 수 없었던 먹먹함이 묻어나옵니다.
어린 시절 좋아했던 그림책을 지금 다시 펼칠 때 느끼는 감정은, 당시에는 그토록 신나고 즐거웠던 이야기 속 세상이 지금은 먼지 내려앉은 낡은 책으로 보인다는 슬픔도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의 흐름은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의 상흔을 남깁니다. 같은 사람이 같은 내용의 그림책을 본다 하더라도 과거와 현재 사이에 놓인 시간의 간격은 우리를 많이 바꾸어 놓았으니까요. Dormir의 음악이 무조건적으로 밝게 다가오지 않는 것은 청자인 우리가 이미 어른이 된 상태로 동화를 듣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럼에도 이 앨범의 테마가 오로지 슬픔의 기억만으로 남지 않는 것은, ‘Resurrection’ - ‘さよならトリップ’ - ‘Ending’ 의 흐름으로 마무리되는 후반부가 희망으로 빛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앞에는 새로운 것들이 끊임없이 태어나고 있고, 그들을 만나러 가기 위해서는 과거에 매여있는 부분에게 작별을 고해야 합니다. 이는 마치 유년시절 행복했던 추억의 풍경을 돌아보고, 동시에 지금은 그때와 같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며 책을 덮고 다시 지금으로 돌아오는 과정과 같습니다.
과거의 저에게 소중한 꿈이 있었음을 잊지 않도록 상기시켜 주고, 동시에 현재의 제가 그려나갈 수 있는 가능성의 세계를 꿈꾸게 해준 이 앨범에게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담아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