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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미스 May 08. 2021

코로나와 싸운다 (5) - 크리스마스는 못 참지

청원경찰의 재난현장 근무일지 - 크리스마스는 못 참지

2020년 12월 25일 금요일


크리스마스지만 근무를 섰다. 지난주는 몰랐지만, 선별진료소는 주말을 포함한 공휴일에도 운영한다. 앞으로는 주말과 연휴를 막론하고 번갈아가며 근무를 서야 한다. 다행인 것은 휴일근무는 오전과 오후 중 한 번만 서고 퇴근을 해도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 만약 교대하지 않고 종일 근무를 한다면 그만큼 휴일 출근이 줄어들 텐데. 일이 힘드니까 사람이 멍청해지나 보다. 조삼모사를 가지고 고민하고 있다.     


그래도 평소와 달리 사람이 적어 일은 덜 힘들었다. 연인과 손잡고 어딘가에 놀러 가느라 선별진료소에는 오지 않는 걸까. 아니면 이브 저녁에 마신 술에 숙취가 가시지 않아 집에 있는 걸까. 생각해보니 이것도 올바른 생각은 아닌 것 같다. 사람이 적어서 일이 덜 힘들다니. 정상적인 일과 시간에 오기 힘든 직장인 등을 고려해 야간과 휴일 운영을 하는 건데 사람이 적다면 운영하는 의미가 없다. 안내, 접수, 검체, 입력, 행정지원, 확진자 추적, 콜센터 등 이것을 운영하기 위해 투입되는 직원만 20명 가까이다.      


선별진료소의 역할은 감염자의 2차 확산을 막기 위함이다. 확진자를 조기에 발견하여 그들을 격리시키고,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을 차단하는 역할이다. 그래서 초기에는 증상이 있거나 확진자와 접촉한 경력이 있는 사람들만 예약을 받아 운영했다.     


그러나 지금은 거리두기 단계가 상향되어 본인이 희망하면 누구나 언제든 검사를 받도록 한다. 그래서 길을 가다가 선별진료소를 보고 그냥 들어오는 어르신들도 계시고 본인이 걱정된다는 이유로 그냥 오기도하고, 직장에서 사고 방지 차원으로 아무런 증상이 없는 회사원들을 검사받으라며 보내기도 한다.   

  

이것은 내가 보기에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확진자 추적의 어려움이고, 두 번째는 진료소 운영의 어려움이다. 이 검사는 검사한 샘플이 오염되지 않도록 상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을 오랜 시간 검사하면 오염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을 하지 못한다. 오염이 되면 전염되지 않은 사람의 결과가 양성으로 나올수도 있다. 그리고 연쇄적으로 양성판정을 받은 사람과 접촉한 사람들이 또 검사하러 와야 한다.    

 

둘째로 시도때도 없이 몰려온 사람들을 진료하면서 피로가 누적된 접수요원이나 검체요원이 실수를 할 가능성이 생긴다. 내가 봐도 검체요원의 피로는 극에 달하여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이 두 가지 문제는 상호작용하며 서로의 문제를 더욱 키워줄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는 ‘진짜’ 확진자를 추적하는데 시간과 비용을 더 많이 들게 한다는 점이다.      


물론 그렇다고 효율성만 따지면서 시간과 비용을 아끼는 것은 옳지 않다. 접촉자로 판명된 사람이나 의사의 소견을 가진 사람 중에서만 감염되는 것은 아니니까. 전염병이라는 것은 만에 하나라는 것을 차단하는 것이 중요하지, 효율적으로 정말 걸렸을 것 같은 사람만 추정하다 보면 구멍이 숭숭 뚫릴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뭔가 느껴지는 점이 있어 그 생각에 의문이 생겼다. 퇴근하는 길에 지나친 시내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팬시점, 잡화점, 의류, 까페 가릴 것 없었다. 코로나로 사람들이 집 밖에 나가지 않는다는 뉴스가 무색할 정도였다. 그렇게 ‘할 건 하고야 마는’ 사람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찝찝하다며 선별진료소로 검사를 받으러 오겠지. 그렇게 하루에 받는 민원인은 500명이 넘는다. 나는 그렇게 확진자도, 접촉자도, 소견이 있는 유증상자도 아닌 사람들을 검사해주기 위해 야간도, 주말도, 크리스마스도 근무를 한다. 그리고 곧 다가오는 설날에도 근무를 할 것이다.   



사람들의 잘못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미웠다. 정부의 잘못은 아니지만 정부가 미웠다.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내가 재난현장에서 일하는 직원인 까닭이다. 오는 길에 소설의 한 구절이 생각나서 인용해본다.      


「사람들은 재앙이 비현실적인 것이고 지나가는 악몽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재앙이 항상 지나가버리는 것은 아니다...중략... 그들은 사업을 계속 했고 여행을 떠날 준비를 했고 제각기 다른 의견을 지니고 있었다. 미래라든가 장소 이동이라든가 토론 같은 것을 금지해버리는 페스트를 어떻게 그들이 상상인들 할 수 있었겠는가?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믿고 있었지만 재앙이 존재하는 한 그 누구도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이다.」

(알베르 까뮈, 페스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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