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원경찰의 재난현장 근무일지 - 경력 사요 경력 사!
2020년 12월 23일 수요일
모르는 사람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P라는 사람이었는데 나의 선배이자, 대청협 지역사무국장이라고 소개하며 보건소에 방문하겠다고 했다. 대청협은 대한민국청원경찰협의회의 줄임말로 국가직 및 지방직으로 복무하는 청원경찰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모임이라고 한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P씨를 만났다. 내가 관심 있었던 것은 보건소 파견이 끝나고 정식 배치를 받는 날이 언제인지였다. 그러나 그도 알지 못했다. 그저 보건소에서 근무하면서 힘든 여건들이 무엇이 있는지 파악한 후, 보건소에 공문을 발송하여 근무 여건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하겠다고 할 뿐이었다.
대신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었는데 내가 추가로 호봉기간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부사관 4년 복무기간을 인정받아 임용과 동시에 5호봉이었는데, 병으로 복무했던 9개월을 추가로 인정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오후 근무가 끝나자마자 부랴부랴 서류를 구비하여 시청에 제출했다. 규정상 당연히 인정받았어야 할 것이지만, 힘든 여건 속에서 조금이나마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다만 이날 K형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K형은 신규 임용자치고는 조금 나이가 많은 40대 중반이었다. 본래 시설관리공단에서 근무를 하다가 너무 고된 일에 치여 청원경찰에 지원하여 합격했다고 했다. 그런데 공무원이라고 알고 온 청원경찰이 엄밀히 말하면 공무원이 아니며, 시설관리공단에서 근무한 경력도 호봉에 산입되지 않는다고 하여 호봉을 인정받지 못했다. 다행히 장교로 6년간 복무한 경력이 있어 7호봉으로 임용되긴 하였으나 그것으로 아이 둘과 형수까지 책임질 수 있을 만한 수입은 아니었다. 거기에 졸지에 코로나선별진료소 파견근무를 기약도 없이 하고 있어 말로 듣던 것처럼 편한 근무조차 못하고 있으니 마음이 괴로웠던 것 같다.
호봉 얘기가 나오니 다른 동기 C군의 얘기를 덧붙이지 않을 수 없다.
군복무 경력을 호봉으로 인정해준다는 얘기는 두 가지의 논리가 녹아있을 것이다. 첫째로 군인으로 복무한 것이 청원경찰의 업무와 연관된 경력이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둘째로 지방공무원복무규정을 적용받는 직원으로서 국가기관 또는 공공기관에서 근무한 경력을 인정해준다는 의미다.
그런데 C군은 병원 응급실에서 5년간 보안근무를 한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민간경력이라는 이유로 인정해주지않고 군 복무 경력만 인정해주어 3호봉으로 임용되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의 경력이 호봉으로 인정받으려면 유사경력으로 인정받아야 함과 동시에 그것이 공직이어야 한다는 이중제약을 받는 것이다.
호봉인정은 누구나 억울한 부분이 있을 것이므로 우리가 공무원이 아니라 차별을 받고 있다며 논리를 비약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적어도 행정직 공무원과 경찰공무원들은 경력을 인정하는 기준이 우리보다는 세밀하다. 만약 K형이 경찰공무원으로 임용됐다면 공공기관에서 근무한 경력을 인정받았을 것이고, C군이 행정직 공무원이었다면 민간유사경력을 인정받아 근무기간의 일정 비율을 호봉으로 인정받았을 것이다.
공공기관이 아닌 사기업도 호봉제가 아닐 뿐이지 관련경력이 있으면 거기에 맞는 직책과 연봉을 책정해준다. 더군다나 지방직 청원경찰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우리의 복무와 의무를 조례와 지방공무원복무규정으로 정한다. 그것 때문에 우리가 임용되자마자 코로나선별진료소로 파견을 보내도 복종해야 하며, 아무리 봉급이 적어도 부업을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봉사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라도, 생계를 위한 상식적인 경력 인정방식을 조금 더 세밀함과 배려심을 갖고 설계하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민간유사경력과 공공기관 근로경력 둘 중 하나에 대해서는 호봉을 인정해줘야 지방공무원복무규정을 적용받는 신분으로서 형평성이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