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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미스 May 05. 2021

코로나와 싸운다 (3) - 제가 한번 앉아보겠습니다

청원경찰의 재난현장 근무일지 - 제가 한번 앉아보겠습니다

2020년 12월 22일 화요일 


금요일과 월요일 두 번을 내리 야간근무를 하여 피로도가 쌓였다. 기존에 하던 방식대로 근무를 설 자신이 없어, 근무 도중에 의자를 찾아내 앉아 버렸다.     


나는 접수와 안내를 번갈아 가며 하는데, 문제는 안내에서 발생했다. 업무의 난이도 자체가 어렵진 않다. 안내의 역할은 검사받는 민원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동선을 알려줌으로써 질서를 잡는 것이다. 혹시 전염병에 걸렸을지 모를 사람들끼리 간격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나는 다양한 사회경험을 했고, 보안과 청원경찰 직무에 대해 공부했던 터라 대처는 쉬웠다. 어떤 상황이 위험한지, 어떤 지시를 해야 효율적으로 동선을 통제할 수 있는지는 약간의 고민과 경험만으로도 빨리 학습할 수 있었다.     


지난 번에 추위와 생리현상에 대한 힘듦을 언급한 바 있지만 그것 말고도 힘든 점은 많다. 전염병에 대응하기 위해 방역복을 입어야 했는데 온몸이 죄어들어 답답한 상황에서 방독면 수준의 마스크 때문에 숨쉬기가 힘들었다. 거기에 페이스쉴드에 습기가 차서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군대에서 방독면을 쓰고 전술훈련을 하는 정도의 답답함이다. 이런 상태로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하루종일 근무를 서야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애로사항이다.      


거기에 더해 안내를 할 때는 마땅히 의자가 없어서 서 있어야 했다. 근무 내내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은 고문이다. 아마 사무나 행정업무만을 했던 사람들이라면 그냥 서 있는 게 왜 힘든지 이해 못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직접 서보면 이것이 걷거나 뛰는 것과 달리 힘든 것임을 안다. 1시간만 서도 다리와 발이 저리기 시작하고, 아무리 체력이 좋은 사람도 2시간을 넘게 서 있으면 무릎과 발목에 통증이 느껴진다. 휴식시간 없이 이 일을 업으로 삼는 분은 허리, 골반에 디스크가 오거나 무릎, 발이 파괴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경호나 경비 등의 보안업종에 전문으로 종사하는 사람들도 기본적으로 1시간을 서면 1시간 이상 휴식을 보장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공채로 합격하여 국가에 소속된 보안요원이 그들보다 더 안 좋은 근무여건에 노출되어있다니 모순된 일이다.     


이런 불만과 피로가 누적되어 진료소에 있던 의자 하나를 꺼내어 민원인이 없을 때마다 앉기 시작한 것이다. 앞서 언급한 많은 문제 중 하나를 해결했다고 몸이 여간 편안한 게 아니었다.


혹여 허락도 받지 않았는데 왜 앉아서 근무하냐고 누군가 따지진 않을까 우려했지만, 그런 것을 따질만한 몸 상태도 근무환경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목구멍까지 차오른 불만이 걱정을 꾹꾹 눌러놓았다. 만약 정말로 그런 일이 있다면 되려 얼마나 비정상적이고 가혹한 일을 시키는 건지 아느냐고 단단히 따질 생각이었다. 혼자 씩씩대며 보란 듯이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일어나지 않았는데,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근무가 끝났다.    

그 후로 다른 동기들도 나를 따라하며 의자를 가져다 앉기 시작했다. 선별진료소에 있는 접수요원도, 검체요원도 그것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그렇게 의자는 우리의 근무환경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현장에 있던 직원들은 사실 우리에게 별 관심이 없었던 것 같았다. 나중에 검체요원과 접수요원도 외부에서 온 인원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보건소에 소속된 직원들은 이 전염병에 대응하는 거대한 일에 휩쓸려 선별진료소라는 작은 부분에만 집중할 수가 없던 것이다.   

 

진료소 안에서 혼잡과 사고를 방지해주기만 하면 우리가 안내를 어떻게 하든, 근무형태를 어떻게 정하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이 바쁜 와중에 접수는 접수, 검체자는 검체업무를 보는 것 외에 다른 것을 관리할 생각도 감독할 생각도 없을 테니까.     

아무도 우리에게 서서 근무를 하라고 강요한 적도 없고 사서 고생하라고 몰아세운 적도 없었는데 괜히 눈치 본 건 아닐까 싶었다. 환경에 대한 불만이 불신이 되고 불신은 오해가 되어 내 눈을 가린 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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