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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미스 May 03. 2021

코로나와 싸운다 (2) - 저 어제도 야근 했는데요?

청원경찰의 재난현장 근무일지 - 저 어제도 야근 했는데요?

2020년 12월 21일 월요일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청천벽력같은 소리가 들렸다. 오늘의 야간근무를 내가 들어간다는 것이다.     


“저번 주 금요일에 제가 야간근무를 섰는데 또 서야 하나요?”     


나를 포함한 청원경찰 넷은 임용한 당일 바로 코로나 선별진료소 근무에 투입했다. 방역복을 입고 안내와 접수를 담당했다. 선별진료소는 직장인 등 일과시간에 검사를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야간근무를 운영하고 있다. 나는 저번 주 금요일, 그러니까 첫 출근에 야간근무를 섰다. 청원경찰 넷이 하루씩 돌아가며 야간근무를 세우기로 했는데 또 들어가야 한다니.     


야간근무는 상당히 괴로웠다. 여가를 뺏기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우선 한겨울의 밤중을 바깥에서 견뎌야 했다. 무엇보다 화장실이 문제다. 선별진료소는 화장실이 없다. 그래서 근무가 끝날 때까지 참았다가 방역복을 벗고 보건소까지 가야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 정 급하면 다른 직원에게 본인의 일을 부탁하고 방역복을 벗고 다녀와야 한다. 다녀온 뒤에는 다시 방역복을 입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니, 다녀오면 30분은 훌쩍 지나간다.     


게다가 야간근무에 투입하는 직원의 수는 주간근무자보다 적다. 그래서 화장실이 급해도 교대해줄 사람이 없다. 무조건 참고 견뎌야 한다. 설상가상으로 야간근무의 추위는 생리현상을 앞당긴다.     


괴로움에 대한 기억 때문에 다시 야간근무를 서라는 말은 나에게 더 큰 반발을 불러왔다. 넷이서 돌아가기로 한 야간근무인데 왜 내가 연속으로 두 번 근무를 서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출근 이틀 차 신입은 이곳 돌아가는 사정을 모르니 받아들이기로 했다.(사실 까라면 까야지 뭐)     


오전에 근무 투입하기 전 선별진료소 운영담당자가 다가와서 스타렉스 운전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다. 동료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나와 K형, KH군은 운전을 할 수 있다고 했다. C군은 운전면허증이 있지만 실제로 운전한 경험이 없어 할 수 없다고 했다.     


우리 시는 보건소에서 직접 운영하는 선별진료소 외에도 세 군데의 임시 선별진료소가 있다. 그래서 누군가는 스타렉스를 운전하여 임시진료소에 보급품을 전달한 뒤, 그곳에서 채취한 검체샘플을 회수하는 일을 해야 했다.     


그래서 나와 K형, KH군은 오후에 돌아가면서 임시선별진료소로 출장을 가기로 했다. 알고봤더니 이것 때문에 야간근무 순번이 꼬인 것인데, 출장을 가는 사람은 야간근무를 투입할 타이밍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야간근무와 출장이 겹치지 않도록 이것도 순번을 정해야 했다.     


사실 이런 일은 청원경찰의 역할이 아니었지만, 저번 주에 근무해본 경험상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검사 받으려고 몇 시간이나 줄을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표정은 마치 난민들 같았다. 그들의 얼굴이 눈에 선했다. 국가적 재난상황인 시국에 네 일, 내 일을 따지지 않고 봉사하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이런저런 불만들을 삼켰다.      


짜증은 엉뚱한 상황에서 터졌다.     


“출장가시려면 출장 신청을 하셔야 해요.”     

“출장신청은 어떻게 하나요?”     

“새올에 접속하셔서 출장현황관리에 들어가보세요.”     

“새올이 뭐에요?”     

“... 시청에서 교육 안받고 오셨나요?”     


선별진료소 운영담당자는 새올도 모르는 우리들을 더 황당해 했다. 새올은 지방공무원들이 업무를 위해 접속하는 인사, 교육, 근태관리 등의 전자결재망이다. 출장을 가려면 기본적으로 새올에 로그인하여 출장 결재를 받아야 했던 거다.     


이 사실을 지금이라도 알아서 참 다행이었다. 출장은 둘째 치고, 알고 봤더니 야간근무를 서는 날에도 미리 초과근무 신청을 해야 한다. 신청을 미리 하지 않으면 아무리 초과근무를 해도 수당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으로 야간근무를 셀 수 없이 할 텐데 그것들 전부 무료봉사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하소연할 데도 없이 오늘도 나는 추위에 떨며 야간근무를 서고 있다. 방역복을 입은 채 사람도 오지 않는 어둠 속에 오만 생각에 빠져들었다.     


‘나는 코로나 속에 버려졌구나.’     


만약 내가 일반적인 공무원이었더라도 이렇게 급하게 파견을 보냈을까. 만약 내가 공무원이었더라도 신규 임용된 사람에게 아무런 정보를 주지 않았을까. 그저 나만의 오해일 수도 있다. 전국적으로 전염병 때문에 난리니까 급하게 많은 자원을 투입하면서 많은 부조리와 성급함이 나왔을 수도 있겠지.     


그러나 그것마저도 누군가에게 해명과 사과를 듣지 못한 채 혼자 상상해야만 하는 처지가 싫었다. 앞으로 내가 모르는 것들은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지 고민하며 서러움만 입김으로 내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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