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원경찰의 재난현장 근무일지 - 시청은 신기루였어
2020년 12월 18일 금요일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마음먹으면 하루 16시간도 자는 내가 알람 시간보다 먼저 눈을 뜬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오늘은 나의 청원경찰 임용일이었다. 내가 3년의 칩거를 마치고 직장으로 출근하는 첫날이다. 첫 출근은 나이를 서른다섯 먹고도 역시 설레고 긴장되는 일인가 보다.
며칠 전 시청 총무과 담당자에게 전화가 왔다. 합격했다는 소식과 임용식 날짜를 전해 듣고 인터넷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청원경찰 임용식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필요한 것은 뭔지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임용식은 기관과 지역별로 모두 다르지만, 시청에 소속되는 청원경찰은 대부분 임용장을 받고 시장 또는 소속부서의 국장과 함께 간단한 티타임을 가진다는 후기가 많았다. 예의를 갖춰야 하는 자리 같아서 정장을 입기로 했다.
집 밖을 나서는데 너무 추워서 다시 들어와 코트를 걸쳤다. 시험에 합격했다는 말을 들은 아버지께서 선물로 사주신 코트였다. 청원경찰이 뭔지 모르는 부모님은 처음에 고개를 갸웃하셨으나 청원경찰의 직무와 대우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공무원에 합격했다며 기뻐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엄밀히 말해서 청원경찰은 공무원은 아니다. 다만 나처럼 공개채용시험에 합격하여 지방자치단체에 소속되는 청원경찰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공무원과 동일한 대우를 받는다. 하지만 복잡한 사정을 설명하기가 모호해 부모님께 굳이 자세히 설명은 드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이중적인 신분 때문에 나중에 얼마나 많은 일화가 생겼는지 이날 나는 알지 못했다.
9시까지 오라 하였으나 8시 30분에 도착했다. 일찍 왔다고 생각했는데 나보다 먼저 도착한 인원이 세 명이나 있었다. 9시 전에 두 명이 추가로 도착하여 오늘 임용이 예정된 인원은 나를 포함해 총 6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함께 합격했다는 기쁨과 서로에 대한 궁금함이 많았지만, 직원들이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이고 있기에 눈치를 보며 서로 침묵을 지켰다. 임용된 사람들이 내 나이대의 사람들로 보여 놀라기도 했고 안도하기도 했다. 알고보니 20대는 한 명도 없었고, 최 고령자인 K형은 40대 중반이었다. 나보다 한 살 많은 P형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여러 가지 변수에 대비해 사고를 예방하는 직렬이기에 아무래도 사회경험이 있는 사람을 면접전형에서 선호했던 게 아닐까 추측된다.
우리는 테이블에 한 시간이 넘도록 앉아있었다. 과장급 회의가 길어져서 임용식이 계속해서 미뤄지고 있다며, 인사담당자는 우리에게 계속 기다려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담당자가 몇 번을 어딘가로 오가다가 총무과장과 함께 왔다. 총무과장은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며 우리에게 그 자리에서 바로 임용장을 나눠줬다.
담당자는 우리를 곧장 자치행정국장실로 데려갔다. 무언가 일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사회경험 상 이렇게 급한 흐름이나 예외상황들은 새로 근무를 하는 사람들도 피하지 못하고 휩쓸릴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급하지 않고서야 이렇게 격을 차리지 않고 서두르는 임용식을 할 리가 없을 테고, 우리도 급한 상황에 직면한 이 조직에서 일한다는 뜻이니까.
담당자는 어찌나 서두르던지 국장실에서도 회의가 있었는데, 실례를 무릅쓰고 우리를 대면시켰다. 우리는 앉지도 못한 채 인사 후 악수하자마자 내쫓기듯 자리에서 나갔다. 담당자의 입에서 조금 당황스러운 말을 들었다.
“여섯 분 중 두 분은 시청에서 근무하실거고요, 네 분은 지금 바로 보건소로 파견을 가실 거에요.”
“지금이요?”
“네. 지금이요.”
그렇게 나와 K형, 그리고 앞으로 닥칠 수많은 파도를 함께 겪었던 동생들인 C군과 KH군(K형과 구분을 위해 두 개의 철자를 쓴다)이 보건소에 가기로 했다. 우리는 바로 보건소 직원의 차를 타고 보건소로 향했다. 시청에서 처리한 일은 공무원 복지포인트 지급 계획과 사용방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출퇴근 확인용 지문을 등록한 게 전부였다. 사실 신규 임용자들이 처리해야 할 일은 이것 말고도 많았는데 그것들을 해결하지 않고 바로 보건소로 향했고, 그것은 훗날 많은 일화를 재생산했다.
보건소에 도착한 청원경찰 넷은 다시 보건소장님, 그리고 각 과의 과장님이 모인 자리에서 간략히 인사를 했고, 곧이어 예상은 했지만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들었다.
“사람이 모자라서 오늘 바로 코로나 선별진료소로 투입하셔야 합니다.”
정장을 입었기에 점심시간을 이용해 집으로 돌아가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근무를 투입했다. 그렇게 나는 공무원과 민간인 사이의 어딘지 모를 신분으로 코로나 재난대응현장에서의 생존기를 시작했다. 임용일이자 첫 근무인 이날 나는 오후 9시까지 야간근무에 투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