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원경찰의 재난현장 근무일지 - 프롤로그
몇 년도 어느 날 어느 요일.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알람이 울린다. 나는 청원경찰 제복대신 트레이닝복을 입는다. 시청으로 출근하는 대신 보건소로 향한다. 출근하고 30분간은 멍하니 앉아있다. 그 시간 동안은 누구도 나에게 업무지시를 하지 않는다. 동기들과 함께 앉아있지만 별다른 말이 없다. 출근 후 30분, 퇴근 전 30분이 유일하게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마음껏 쉴 수 있는 시간이라 최대한 즐기지 않으면 본인만 손해다.
9시 30분에 약속했다는 듯이 동기들과 함께 밖으로로 나간다.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서있는 곳을 비집고 들어가 야외에 우두커니 솟은 컨테이너에 들어간다. 다양한 물자가 든 상자 사이에서 이미 도착한 사람들이 옷을 갈아입고 있다. 혼잡 속에서 익숙하게 옷을 입기 시작한다.
신발 덮개, 온몸을 두르는 방호가운, 입을 통째로 틀어막아 벗은 뒤에도 자국이 남는 방역마스크, 머리를 덮는 헤어캡, 얼굴 전체를 보호하는 페이스실드, 마지막으로 라텍스 장갑까지. 숨을 내쉴 때마다 열기가 그대로 얼굴을 덮친다. 페이스실드에 김이 서려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나가야 한다.
코로나 선별진료소 개장 10분 전. 비닐장갑, 산화소독제, 손소독제, 쓰레기통, 접수지, 검체도구를 세팅한다.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알아볼 겸 바깥에 나가 미리 비닐장갑을 나눠준다.
“언제 시작해요?”
“도대체 얼마나 서 있어야 돼?”
“이제 시작 좀 합시다.”
“시간 좀 제대로 알려주지.”
“고생하시네요. 감사합니다.”
9할의 질타와 비난을 무시하고 1할의 격려에 감사인사로 답변을 하며 다시 진료소 안으로 돌아간다.
시계를 보고 마음의 대비를 한다. 5분전. 3분전. 1분전. 30초전. 10초전. 5초, 4초, 3초, 2초, 1초. 나는 직원들을 둘러본다. 모두가 준비됐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고 고개를 끄덕인다. 시민들에게 봉사할 시간 아니, 전쟁의 시간이다.
“들어오세요.”
질서를 무질서로 바꾸는 방법은 간단하다. 진료소 입구를 막던 바리케이트를 치우면 된다. 밖에 줄 서던 사람들은 난민으로 돌변한다. 지금 이 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죽는 전쟁 난민처럼 목숨 걸고 이리로 들어오려 한다. 그들은 이미 나의 안내를 귀에 담지 않기로 작정하고 왔다.
새치기 하려는 사람. 막무가내로 입구로 들어오려는 사람. 확인서를 출력해달라는 사람. 화장실 좀 들여보내 달라는 사람. 쓰레기를 뭉치로 들고 와 무단투기하려는 사람. 무더기로 오는 학생들. 말이 안 통하는 외국인들. 비닐장갑을 훔쳐가려는 사람. 검사받지 않으려고 우는 어린아이. 어린아이를 억지로 검사받게 하려는 부모. 베드에서 꼼짝도 할 수 없어 구급차에 실려오는 사람. 마스크 안 쓴 사람. 마스크를 공짜로 받아가려는 사람. 욕하며 밀치는 사람. 검사 결과를 빨리 보내달라는 사람. 동네를 지나가다가 그냥 코로나 검사를 받아보려는 사람. 인도와 도로를 차로 막아서고 검사받으려는 사람. 주정차한 차 때문에 화가 나서 클락션을 울리는 운전자. 먹을 것 좀 달라는 노숙자, 코로나 검사 외 다른 진료를 받으려는 환자.
“들어오세요. 비닐장갑 착용하세요. 저쪽으로 가세요. 오지 마세요. 멈추세요. 줄 서세요. 안돼요. 하지 마세요. 여긴 그런 거 없어요.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나는 이 혼돈에 대해 있는 힘껏 목청을 높이고, 몸으로 막아서고, 누가 봐도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수신호로 대응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이 전투 속에서 내게 승리할 길은 보이지 않았다. 승리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진료소 운영이 종료될 때까지 버티는 것만이 내 목표다. 어떤 상황에서도 시간을 멈춰주지 않는 신의 무자비가 나에겐 유일한 구원이다.
“수고하셨습니다.”
하루의 일과가 끝나고 방호복을 폐기물박스에 던져버린다. 옷을 벗는 모두가 땀과 피로로 범벅이다. 그래도 당신들이 있어서 버틴다는 심정으로 서로를 존경하고, 시덥잖은 농담에도 크게 웃고, 그들의 장점만 보려고 노력한다. 나를 살게 하는 것은 시민들도, 상급기관도, 봉급도 아니다. 나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며 함께 하는 동료들뿐이다.
퇴근 30분 전. 출근 때와 마찬가지로 적막과 침묵만이 감돈다. 문득 거울을 보니 헤어캡에 머리가 눌리고 땀에 얼굴이며 옷이 얼룩져 있었다. 부랑자같은 내 모습에 웃음을 짓다가 문득 채용 면접을 볼 때가 떠올랐다. 그때는 지금과 달리 머리를 깔끔하게 뒤로 넘기고 넥타이를 맸다. 당시 면접관이 내게 마지막으로 던졌던 질문이 떠올랐다.
“만약 임용된다면 어떤 청원경찰이 되고 싶습니까?”
“저는...”
면접을 본 날로부터 시간이 오래 지난 것도 아닌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단순히 하루 이틀로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결정되지는 않겠지. 그저 오늘도 어제처럼, 그리고 내일도 오늘처럼 나는 근무를, 봉사를, 전투를 해나갈 뿐이다. 그렇게 난리가 끝나고 내가 일기를 그만 쓰는 날에는 면접관에게 했던 대답을 기억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