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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아침 Mar 07. 2024

빨간 열매 1 - 엄마표 이야기

01 저는 친칠라입니다. 

빨간 열매 표지 by 아홉 살 쫑

내 이름은 친칠라. 내가 살고 있는 곳은 302동 1004호다. 이곳에 온 지 두 달이 되어간다. 나는 진짜 동물이 아니라 인형이다. 모습은 친칠라여도 다른 이름을 기대했지만, 나의 주인인 종현이는 나를 그냥 친칠라라고 부른다. 뭐, 종현이가 나를 예뻐해 주니, 나의 이름에 큰 불만은 없다. 

   

나는 '아이들의 꿈과 희망이 가득한' 놀이공원 기념품 가게에서 왔다. 가게에 기린, 사슴, 고래 등등 셀 수 없는 종류의 인형들이 있었지만, 그 모든 친구들을 제치고 종현이가 나를 골랐다. 이 인형 살까? 저 인형 살까? 고민하는 종현이는 제일 귀엽다며 나를 골랐다. 나도 내가 제일 귀엽다는 사실을 안다. 기린은 목이 너무 길고, 판다는 꼭 눈이 멍들어 있는 것 같고, 사자는 갈기가 지저분하다.  

    

친구들에 대해서 나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사실 친구들 외모에 비하면 난 적당한 크기의 귀, 적당한 눈, 적당한 입, 적당한 꼬리를 갖고 있으니 단점이 하나도 없다. 너무 내 자랑 같나? 뭐, 나의 주인 종현이도 그렇게 생각하니 나도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지난번 나를 처음 사 오고 세탁기에 넣어서 빨았는데, 나의 몸을 푹 적시는 물 때문에 답답해서 힘들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구경한 세탁기는 정말 끔찍했다. 폭포처럼 떨어지는 물을 머리로 맞으려니 나원 참, 폭포에서 끝나면 다행이었지만 계속해서 빙글빙글 돌아가서 너무 어지러웠다. 그래도 물이 많을 때는 괜찮았는데, 내 몸을 적시는 물을 빼낼 때는 엄청난 속도로 세탁기가 돌아가서 토할 것만 같았다.

     

인형이어서 다행이지, 진짜 친칠라였다면 죽었을지도 모른다. 아, 그런데 세탁기에서 끝난 게 아니었다. 내 몸이 통통해서 잘 마르지 않을까 봐 종현이 엄마가 날 건조기에 넣었다. 건조기는 세탁기 친구인가 보다. 또 빙글빙글 돌았다. 이번에는 물이 아니라 뜨거운 바람이 마구마구 나와서 숨이 탁 막혔다. 진짜 친칠라였다면 버텨내지 못했을 거다.     


난 건조기에만 들어갔다 나오면 종현이랑 놀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내 몸이 더 말라야 한다면서 은색 막대기가 끼어져 있는 빨랫대 위에 하루 종일 앉아 있어야만 했다. 사실, 내가 높은 곳을 무서워해서, 정말 땀이 날 정도로 무서웠다. 진짜 친칠라였다면 깨끗해진 몸이 다시 더러워질 정도로 땀을 흘렸을 거다.

    

세탁기, 건조기, 빨래대를 거치고 이틀이 지나서야 종현이가 나를 안아주었다. 나를 꽉 누르지도 안고 정말 내가 진짜 친칠라인 것처럼 살며시 들어 내가 구겨질까 봐 가볍게 안아주었다. 나의 부드러운 등에 종현이의 부드러운 뺨이 닿았을 때는 기분이 좋았다. 가끔 종현이 아빠가 내 등에 얼굴을 가져다 대는데, 으으 아무리 수염을 깎아도 거칠거칠한 턱이 따갑다.           

       

종현이는 자기 전에 나를 안거나, 베개 옆에 둔다. 종현이는 알까? 밤마다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말이다. 나는 사람이 깨어있으면 딱딱한 돌처럼 가만히 있지만, 모두가 빠짐없이 잠들거나 집에 아무도 없으면 움직인다. 


'모두들 다 잠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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