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뻗어 통화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전화는 맥없이 끊어졌다. 아버지에게서 온 전화였다. 이미 한 시간 전에도 아버지가 전화를 건 흔적이 있었다. 다시 전화를 걸려고, 버튼을 누르려는데 문자가 왔다.
‘하ㄹ머니 도ㄹ아가셔다.’
문자쓰기가 불편하다며 한사코 거부하셨던 아버지의 첫 문자였다.
아버지에게 답장을 보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뭐라고 보내야 할까? ‘네, 알겠습니다. 알았어요.’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결국, 답장을 보내지 않은 채, 집으로 내려갈 준비를 했다. 옷장을 연 순간 눈가에서 뭔가가 떨어졌다. 입술을 깨물고, 얼굴에 온 힘을 주었지만, 또 떨어졌다.
옷을 꺼내기를 포기하고 방바닥에 주저앉았다. 두 다리를 가슴 가까이 끌어당겨 두 팔로 머리를 감쌌다. 쏟아지는 눈물을 서서 받아 내기에는 무거웠다. 참으려 했지만, 참고 싶었지만, 눈물은 참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나를 감싼 옷들은 나의 땀과 눈물로 색이 한층 더 짙어졌다. 동물들은 땀을 배출해서 체온을 조절한다. 나의 몸에서 나를 익사시킬 만한 물이 빠져나갔는데도, 내 몸은 뜨거워져만 갔다.
눈물을 닦아내기를 포기하고 다시 짐을 쌌다. 며칠은 집에 있어야 하니, 손에 잡히는 대로 가방에 집어넣었다. 나중에야 양말을 열 켤레나 챙겼다는 사실을 알았다. 기숙사 앞에 대기 중이던 택시에 올라탔다.
“기사님, 터미널로 가주세요.”
룸미러로 울고 있는 나를 확인한 기사님은 아무 말도 묻지 않은 채 유리창 문을 내려 주셨다. 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가을걷이가 끝난 후 불어오는 바람이었다. 한숨을 돌릴 수 있는 그런 바람이었다.
막을 수 없는 눈물을 달고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눈물은 내가 다시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을 잃을까 지나온 길 위로 흔적을 남겼다. 누군가가 나에게 그만이라고 다그쳤으면 했다. 눈이 없다면 눈물은 더는 흐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대신 다른 곳에서 눈물을 대신하는 물이 나올 것이다. 뭔가를 흘리지 않으면 우리 내부에 슬픔이 농축된 물이 차곡차곡 쌓여서 터져 버릴 거다.
나는 울었다. 장소만 바뀌었을 뿐 그냥 울었다. 나에게 슬픔의 원인이 된 할머니의 얼굴은 떠오르지 않았다. 눈물을 흘리는 내내 할머니와의 추억도 되짚지 않았다. 대상이 있어서 시작된 눈물은 그 대상을 떠올리지 않아도 멈추지 않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