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수 아주머니는 허공에 한숨 한 번 날리고, 커다란 솥에 끓이고 있는 국수용 육수를 국자로 두어 번 휘저었다.
“정희할매는 참말로 좋은 날에 가셨어.”
그렇게 좋은 날. 할머니는 주어진 대로가 아닌 암 덩이가 앞당겨 버린 명을 사시다 가셨다.
할머니는 갑자기 건강이 악화되었다. 워낙 건강하셔서 병원에 잘 다니지 않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시는 분이었다.
“내가 다른 할매처럼 살집은 푸짐하지 않아도 뼈가 통뼈라서 건강혀.”
할머니는 어느 날부터인가 아랫배가 아프시다고 하셨다. 처음에는 단순 소화불량이라고 생각해서 집에 있는 활명수로 버티셨다. 나아질 기미가 없어 어머니는 할머니에게 병원을 가자고 재촉했다.
“그냥 뭘, 잘못 먹어서 그런 거여. 뭐 병원까지 가. 시간이 약인디.”
“어머님, 계속 힘드시잖아요. 그러지 말고 병원에 가셔요.”
어머니가 말해도 할머니는 도통 엉덩이를 바닥에서 떼지 않았다. 오히려 바닥에 눌어붙은 껌처럼 할머니는 병원 가기를 한사코 거부했다. 할머니와 며느리의 실랑이를 보다 못한 아버지는 소리를 질렀다.
“병원에 가자구요.”
“안 가도 된다니까.”
“아니, 활명수만 며칠째 드셔도 아프시잖아요. 아니 그러다가 덜컥 큰 병이라도 걸리신 거면 어떡해요.”
아버지도 이처럼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리고 이루어지지 말아야 할 아버지의 말은 이루어지고 말았다. 얼굴이 발개진 아들이 자신 때문에 혈압이라도 오를까 봐 할머니는 그제야 병원으로 향했다.
할머니는 그런 어머니였다.
부엌이 되어버린 창고에서는 쉼 없이 만들어진 음식이 밖으로 나갔다. 우리는 할머니를 위해 울 시간도 허락되지 않았다. 밀려드는 문상객을 위해서 음식을 나르고, 설거지는 우리 몫이었다.
내가 슬프게 울 수 있는 시간은 기숙사에서 집에 오기까지였다. 현실에 박힌 몸이 바삐 움직이면, 슬픔을 위한 마음의 공간에 발을 디딜 수 없다. 상실이 커 슬픔에 잠식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화장실 갈 틈이 없이 땀이 나올 정도로 움직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