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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아침 Dec 06. 2024

꽃상여가 지나간다.- 4

문상객은 밤에도 몰려들었다. 두 아들만 세상에 내놓은 신 할머니는 할머니를 아는 사람, 할머니는 모르지만, 아버지와 큰아버지를 아는 사람들을 불러들였다. 상주와 맞절이 끝나고 어김없이 문상객들은 빈 상 앞에 자리를 잡았다.     


서울에서 택시 운전을 하시는 아버지의 친구 명수 아저씨가 늦은 저녁에 도착했다. 명수 아저씨는 마당을 가득 메운 차들 사이에 서울이 찍힌 번호판을 단 차를 주차하고, 대문을 들어선 순간부터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고, 영철아.”     

아버지가 서 계신 거실로 들어서자 또다시 곡소리를 내셨다.     

“아이고, 영철아. 니 어머니 불쌍해서 어쩌냐. 왜 이리 일찍 가셨어.”     


아버지는 맞절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눈을 감고, 입술을 깨물었다. 아버지는 울지 않았다.     

“영철아, 이제 니랑 나는 고아여. 세상에 부모없는 고아여.”      


여전히 울지 않는 아버지. 고아라는 말이 거실을 메우자, 근처에 있던 손님들이 훌쩍이기 시작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사람 중 고아가 아닌 사람들은 없었다. 아버지는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의 얼굴을 모르는 고아가 되었다.      


할머니는 아버지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할아버지를 갑작스레 떠나보냈다. 병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할머니와 아버지의 입에서 정확한 사정을 듣지는 못했다. 떠나보낼 준비가 되지 않은 죽음은 꺼내기도 힘든 법이다.     


어린 두 아들을 혼자 키우는 할머니를 친정에서 그냥 두지 않았다. 할머니의 친정 식구들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하루걸러 할머니를 찾아오셨다. 할머니는 낮에는 밭에서 살고, 밤에는 바느질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할머니는 동생이 찾아와도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죽음을 억지로 넘긴 날, 할머니의 어머니가 오셨다.      


“순점아, 너 아직 젊어. 애들도 어린데, 남편 없이 어찌 애를 키워. 너, 명식이 아저씨 기억하지. 그 집 아들이 이번에 처를 잃었대. 니 사정 듣더니 얘기하더라.”

“어머니, 애들은 어떻게 해서든 제가 키울거고, 저 재혼 안 할거니. 다시는 그 이야기할 거면 오지도 마세요.” 

“아니, 야가. 다 니 걱정돼서 그런거여. 순점아. 그러지 말고.”

“어머니!”     


이때를 마지막으로 할머니는 산 하나만 너머 있는 친정에 10년 넘게 발길을 끊었다. 할머니는 두 아들을 두고 도망치지 않았다. 할머니 옷장에 빛바랜 상장이 있었다.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워낸 이러고 적힌 장한 어머니상. 할머니는 여자로 태어났지만, 어머니로 사셨고, 어머니로 돌아가셨다.      

명수 아저씨의 울음소리가 잦아들자 아버지가 입을 떼셨다.      


“밥 먹어야지. 먼 길 왔잖어.”

“너는 먹었어?”

“난 생각이 없다.”

“니 안 먹으면 나도 안 먹는다.”     


아버지는 아저씨의 손에 이끌려 상 앞에 주저앉았다. 아버지는 바심이 끝난 논에 떨어진 낟알을 줍고, 밥그릇이 넘치도록 밥을 드시는 아버지는 내가 그랬듯 밥알을 세셨다. 하나, 둘, 셋.      


명수 아저씨는 아버지의 젓가락을 뺏고, 자신의 숟가락으로 밥 한술 떠서 아버지의 입으로 들이밀었다. 아버지가 웃었다.      


“됐다. 너 먹어라.”

“야, 니 어머니. 니를 어찌 생각했는데, 없는 살림에도 하루걸러 고깃국 끓여 주셨잖어. 너 잘 먹어야 한다고. 니 지금 안 먹으면 어머니 우신다.”     


할아버지의 부재가 아버지에게 영향을 준 건지, 큰아버지와 달리 아버지는 몸이 자주 아팠다. 그런 아버지가 걱정되어 할머니는 돈이 되는 일은 마다하지 않았다.      


애써 모은 돈은 가난한 집답지 않은 식탁 위로 모였다. 할머니는 늘 고깃국을 끓이셨다. 그 덕분인지 아버지는 건강해지셨지만, 몇 해 전부터는 내장지방이 많다고 해서 고깃국은 잘 드시지 않는다. 아버지 몸에 남은 지방은 할머니가 차곡차곡 쌓아온 아버지를 향한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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