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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루주 Sep 22. 2022

두려울 때는 밥을 먹자 2(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과거에 쓴 글을 다시 읽어보는 것은 재미있다. 이제는 시간이 지나버린 과거의 내가 마치 알 것도 같은 어느 타인처럼 느껴진다. 더 먼 과거이면 그럴수록,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의 간격이 멀수록 타인의 이야기를 읽는 것처럼 거리를 두고 내 이야기를 바라본다. 그럼 나는 공감하되 아프지 않고 재미있되 조금은 씁쓸한 3인칭 관점이 주는 새로운 시각으로 나를 바라본다. 왜 그렇게 쫄았는지, 뭐가 그렇게 슬펐는지, 작은 것에도 왜 이렇게 웃음이 났는지. 몇 년의 세월을 덜 거친 어린 나를 동경하기도, 그때의 순간과 영영 작별했음에 다행인 마음과 한 편의 씁쓸함이 들기도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하루아침 직장을 잃고 프라하에서 홀로서기를 시작했을 때 나의 몸과 마음은 정말 작아져있었다. 체코어도 안 되고 영어도 일을 할 만큼의 수준은 아니라서 모든 것을 다 제치고 자신 있는 것이 한국어밖에 없었다. 체코 땅에서 한국 사람만큼 한국어 잘하는 사람이 있겠어? 그 마음으로 한국어 과외 학생 모집 홍보글을 올리고 광고를 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시간이 많이 지탱해주었다. 난생처음 하는 일이어도 결은 꽤 닮아서 학생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는데 큰 부담이 없었다. 이때의 이야기가 <두려울 때는 밥을 먹자 1>에 담겨 있다.


어느새 1년이 지나고 그 사이 많은 것이 바뀌었다. 이제 막 어학원에서 일을 시작했던 때는 소규모 수업을 하나씩 맡아나갔는데 이제는 제법 규모가 큰 그룹 수업도 진행하고 한복과 서예 수업 같은 이벤트도 한다. 아직도 잘 안 되는 체코어를 끙끙 거리며 겨우 설명하지만 좀 더 많은 학생들을 상대하는 일에 익숙해지고 있다. 두려운 날마다 밥을 먹고 잠을 잘 자고 일어나 다시 오늘들을 살았다. 그날들이 지나 며칠 전에는 한국에 다녀왔다.


한국에서 지낸 날들은 체코에서 보낸 3년을 홀라당 까먹기에 충분할 만큼 강했다.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 곳이니 만큼 곳곳에서는 자꾸만 어릴 적 추억부터 익숙한 냄새와 본 것 같은 얼굴들이 새록거렸다. 더불어 잊고 있던 한국에서의 나 역시. 체코에서 나는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고 산 듯했다. 이방인이라는 정체성, 아시아인이라는 정체성, 그중에서도 한국 사람이라는 정체성, 체코 말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는 정체성, 노동자라는 정체성...


한국에서 다문화 관련 수업을 들을 때 이주 노동자, 결혼 이주 여성과 같은 단어를 들었다. 그 단어가 내게서 입체적으로 살아나는 순간들이 체코 생활에서 많았다. '이주'는 새로운 곳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이구나. 새로운 곳에서 그 말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구나. 그 말을 못 하면 살기가 아주 힘들다는 뜻이구나. '결혼 이주'는 그 나라에서 아이를 낳을 때 엄청난 각오를 해야 한다는 뜻이구나. 결혼 외에 그 나라에 잘 정책해 살아갈 방법이 꽤 많지 않다는 뜻이구나. 배우자에게 의지하지 않으려면 많은 노력을 들여야 한다는 뜻이구나. '노동 이주'는 회사가 비자를 줬다는 뜻이구나. 회사에서 쫓겨나면 비자를 계속 이어갈 수가 없다는 뜻이구나. 회사에서 불이익을 당해도 조금은 참을 수밖에 없겠구나. 두 단어에 깊이 깔려있는 입체들을 이해하며 지냈다. 그 사이 마음이 조금 낡아 있었다.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쩔 수 없이 지친 구석이 숨겨지지 않았다.


한국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난 것은 그 때문인 것 같다. 한국에 도착한 날 공항에서부터 체코로 돌아가는 공항에서까지 하루도 눈물을 흘리지 않은 날이 없다. 기뻐서 흘린 눈물이 대부분이었지만 내가 잊고 있던 한국에서의 정체성을 서서히 되찾아 갈 때의 묘한 감정이 매번 울렸다. 나를 원래 이런 사람이었지! 그리곤 곧 슬퍼졌다. 꽤 유쾌한 성격이었고 사람들을 하루도 빠짐없이 만나러 다녔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가고 싶은 곳도 많았다. 미래에 회의적인 날보다 호의적인 날이 많았고 좀 까불거리고 덤벙거릴 때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덤벙거려도 주위에서 나를 챙겨주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호방하게 지낼 수 있었다. 


체코에서는 잔뜩 긴장을 하고 살았다. 자칫 덤벙거렸다가 비자 문제가 생기거나 자칫 까불거렸다가 구성원으로 초대받지 못할까 봐 최대한 숨을 죽이고 조용조용 살았다. 그것이 마치 되돌릴 수 없는 새로운 내 모습인 것 같아 조금 울적할 차에 한국에서의 나를 만나니 눈물이 나올 수밖에. 잃어버렸던 너무나 소중한 것을 되찾은 기분이었다. 해외에서 타지살이를 해 본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해외에 살면 한국에 너무 소중한 것을 두고 왔다는 기분이 들어. 그게 뭔가 했는데... 내 과거야." 한국에서의 시간은 이 말을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프라하로 돌아온 지금 또 새로워진 나로 글을 쓴다. 과거로부터 멀어지고 과거를 잊고 다시 과거를 발견하고 내게로 초대하고 새로워지고 그것은 다시 과거가 되고. 알 것 같은 타인이 된 나와 끊임없이 시간 여행을 하며 태어나고 태어난다. 새로운 정체성의 나를 만나 조금 어색해지고 익숙해지고 다시 오래된 나의 정체성을 발견하며 반가워하는 일은 삶이 길고 다사다난할 때 생기는 재미 같다. 이 재미를 위해서라도 우리의 삶이 조금 길고 약간은 다사다난했으면 좋겠다. 너무 길고 다사다난하면 피곤할 만큼 많아진 자아들 속에서 충돌할 수도 있겠다. 


또 1년이 지난 내년의 새로워진 내가 이 글을 낯설어하는 날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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