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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루주 Nov 06. 2022

산낙지는 음식인가 동물인가

음식만큼 신나는 이야기는 없다. 한국어 수업을 할 때 느끼는 것이다. 보통 그날그날 배워야 하는 한국어 표현에 맞추어 수업 주제가 달라지는데 음식에 대해 배우는 날이면 분위기가 한껏 올라간다. 학생들은 앞다투어 먹어본, 먹고 싶은, 알고 있는 한국 음식에 이야기한다. 대부분 떡볶이, 김치, 불고기, 비빔밥, 잡채를 알고 있고 닭발이나 호떡 같은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음식도 척척 말한다. 어쩌면 먹는 것은 우리가 살면서 가장 많이 하는 행위 중 하나이며 가장 단순히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방법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예술이 될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이야기하기 신나는 주제가 되는 것이 아닐까. 그중 한국 음식은 (내가 한국인이라서가 아니라 정말로..!) 종류가 다채롭기 때문에 더욱 말할 거리가 많다. 소위 '산해진미'라고 하지 않던가. 산과 바다의 산물을 다 갖추어 아주 잘 차린 진귀한 음식들의 향연은 우리의 군침을 돋우고 행복한 식사를 상상케 한다.


이곳 체코에는 바다가 없어서 학생들은 해산물이 있는 음식을 궁금해한다. 그중 가장 궁금한 것은 산낙지이다. 탕탕이라고도 부르는 산낙지. 이 '음식'은 낙지를 산 채로 '탕탕' 내리쳐서 먹기 때문에 탕탕이라고도 하며 낙지가 살아있기 때문에 '산'낙지라고도 부른다. 학생들과 산낙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문득 생각에 잠겼다. 그것을 먹을 때는 모르다가 왜 이렇게 부르는지를 이야기하고 나서 문득 살아있는 동물을 먹는 사실이 선명해진다. 산낙지가 어느 순간부터 당연히 음식 이름이 되었다는 사실에 처음으로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산 돼지, 산 소, 산 닭, 산 개, 산 오리... 어느 것도 음식 이름이라기에 너무나 이질적인데 '산' 낙지는 자연스레 '산낙지'가 되었다.


살아있는 동물이 자연스럽게 음식으로 받아들여지면 죽은 동물은 그저 싱싱하지 않은 음식이 된다. 살아있는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지고 싱싱한 음식을 향한 군침이 오르는 순간이다. 살아있든 죽어있든 움직이는 것이 음식으로 보이는 것은 기이하다. 살아있는 돼지를 보고 삼겹살을 떠올리고 살아있는 소를 보고 스테이크를 떠올리고 살아있는 닭을 보고 갓 튀겨진 치킨을 떠올리고 살아있는 개를 보고 뜨끈한 보신탕을 떠올리고 살아있는 오리를 보고 정갈하게 정돈된 훈제 요리를 떠올리고... 그리고... 그리고... 모든 것이 음식이 되고... 세상은 인간과 그외 음식이 되고. 


선생님, fish는 어떻게 말해요?


한참 생각에 잠겨있을 때 학생 한 명이 질문을 던진다.


fish는 생선이에요. 먹으면 생선, 안 먹으면 물고기라고 해요. 


학생들은 웃는다. 불고기를 배우고 난 뒤 fish가 물고기라는 사실이 신기해서다. 물고기가 water(물에 있는) meat(고기)으로 불린다. 생각해보니 돌아보게 되는 말들이 있다. 그렇네? 하고 돌아보게 되는 말. 물고기가 그런 말이다. 언제부터 물에 사는 동물들은 물에 있는 고기라고 불렸을까. 생선()의 한자 뜻 역시 싱싱한 물고기이다. 그러니까 먹으면 싱싱한 물고기(생선) 안 먹으면 물에 있는 고기(물고기). 물고기는 살아있든 죽어있든 그 자체로 음식이 된다. 


이에 대한 문제는 종차별 철폐와 동물 해방을 목표로 하는 단체인 '동물해방 물결'에 의해서도 제기되었다. 동물해방 물결은 물고기라는 단어가 인간에게 먹히기 위해 존재하는 살덩이처럼 여겨진다며 물고기 대신 '물살이'를 사용하자고 말한다. 물에 사는 동물이라는 뜻으로 고기를 살이로 바꾼 단어이다.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에게 물살이를 가르쳐주면 이들이 한국에 가서 물고기 대신 물살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때 우리는 물살이를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을까. 언어는 모두의 약속이라서 한 명의 결심으로는 바꿀 수 없다. 모두가 그 단어를 쓰기로 받아들여야 한다. 물고기보다 물살이가 더 많이 쓰일 수 있도록 그래서 우리가 물에 사는 동물을 고기로 말하지 않는 날이 와야 할 것이다.


그날 우리는 산과 바다에서 나고 자라는 것들로 차려진 진귀한 음식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산과 바다에서 나고 자라 우리의 식탁으로 오는 모든 것들. 그리고 식탁에서 벗어나 다시 산과 바다로 시선을 천천히 돌려보았다. 그러자 음식을 신나게 이야기할 수 없었다. 그것은 처음부터 음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처음에 움직이는 동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을 단어가 은폐한다. 싱싱한 산낙지와 맛있는 소고기와 두툼한 돼지고기 맛있는 오리 훈제가.


단어가 은폐한 사실을 아는 것은 식탁을 거스르는 일이다. 식탁을 거슬러 음식의 최초로 돌아가는 일을 할 때 우리는 인간과 음식의 세상에서 벗어나 인간과 돼지와 소와 양과 개와 늑대와 여우와 토끼와 고릴라와 기린과 오리와 닭과 그리고... 물살이를 비롯한 셀 수 없이 많은 이름들의 세상 속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산낙지는 음식인가 동물인가.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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