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해진 말들>은 프라하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며 겪은 일들을 글로 담은 시리즈입니다. 이 글은 우리에게 익숙해진 말들을 생소한 눈으로 보는 학생들을 통해서, 한국어가 가진 특별한 점, 신기한 단어와 재미있는 표현들을 함께 공부한 자료이며, 말과 언어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이 붙은 에세이입니다.
한국어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한자어의 사용, 띄어쓰기, 수많은 동사의 변형들, 헷갈리는 조사. 모두 한국어 공부를 아주 재미있게 (?) 만드는 우리말의 특징이지만 그중 유난히 특별한 것이 있다면 소리, 형태, 색깔 등 묘사하는 단어가 많다는 것이다. 그들이 서로 닮았다는 것도 큰 특징이다.
하루는 수업 시간에 학생들과 사람을 묘사하는 방법에 대해서 배웠다. 이 사람은 똑똑해요. 이 사람은 통통해요. 이 사람은 뚱뚱해요. 그러자 한 학생이 한숨을 쉬며 작게 읊조렸다. 하... 똑똑, 통통, 뚱뚱. 비슷하게 생긴 단어들이 다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으니 한숨이 절로 나올 만도 하다. 한국어가 모국어인 우리에게는 똑똑과 통통은 엄연히 다르고 통통과 뚱뚱의 차이 역시 한 번에 와닿지만 이 단어를 처음 배우는 학생들에게는 그저 비슷한 철자를 가진 단어들 뭉치이다. 나는 아직도 experience와 experiment를 종종 헷갈리곤 하는데 이 학생들이 느낄 똑똑, 뚱뚱, 통통은 어떠려나. 그 생각을 하다가 한국어가 모국어인 것이 천만다행처럼 느껴지곤 했다.
그도 그런 것이 전 세계 언어에서 단어가 가장 많은 언어는 한국어이다. 각국 사전에 등재된 단어 수를 비교해서 분석한 결과인데, 한국어는 1,100,373개 (우리말샘, 2017)로 1위를 기록했으며 2위는 포르투갈어로 818,000개가량의 단어를 보유하고 있다. 많은 이들의 애증이 된 영어는 578,707개의 단어로 7위를 기록했다.* 단어 개수로 순위를 매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련만 한국어로 듣고 말하고 쓰고 읽는 우리에게 다른 언어로 표현 불가능한 말들이 많다고 느끼는 것에는 정당한 이유를 찾은 기분이다.
*출처: Which Language Has the Most Words? https://blog.rosettastone.com/which-language-has-the-most-words/#:~:text=Still%2C%20it's% 20a%20 stretch%20to, has%20 over% 20a%20 million%20 headwords.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에게는 반대로 새로운 표현들이 아주 많을 것이다. 이를 테면 소리를 표현하는 의성어와 형태를 표현하는 의태어가 그렇다. 의성어 의태어가 무엇인지 헷갈린다면 그 분야의 장인을 보면 된다. 우리나라 의성어 의태어 장인을 꼽으라면 방송인 이영자 씨와 전국 어린이집, 유치원에서 일하는 선생님들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떡이 아주 쫠깃하고 국수가 야~들야들하니 맛이 정말 고소하고 사이다가 톡! 쏘면서 시원해요. 이영자 씨가 음식을 묘사하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침이 꿀꺽 넘어간다.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의 묘사법은 마치 음식을 코 앞에 대접하듯 만든다. 이 묘사에서 중요한 것은 '쫄깃한 떡' '야들야들한 국수' '톡 쏘는 사이다'처럼 살아 움직이는 표현들이다. 말만 해도 침이 고이는 이유는 언어가 감각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 역시 이런 표현의 장인이다. 여러분 쉿! 조용히 하세요. 박수 세 번 짝짝짝. 손을 깨끗하게 박박 닦아요. 손이 반짝반짝하지요? 아이들에게 쉽고 효과적으로 의미를 전달해야 하는 말하기 역시 의성어와 의태어가 많다. '쉿', '짝짝짝', '박박', '반짝반짝'은 조용한 상태, 박수를 칠 때 나는 소리, 손을 닦는 모습, 깨끗한 손을 글자를 벗어나 감각으로 익힐 수 있도록 한다.
이렇게 감각을 생생히 전달하는 의성어와 의태어는 어감에 따라서 전달하는 느낌도 다르다. 깔깔거리며 웃는 사람과 껄껄거리며 웃는 사람의 모습이 다르고, 구수한 칼국수와 고소한 부침개의 맛이 다르고, 고불고불한 길을 가는 꼬불꼬불한 머리의 여자가 다르다. 비슷한 단어이지만 모음과 자음의 어감에 따라 묘사하는 느낌이 조금씩 바뀐다. 대체로 센소리를 내는 겹자음이 들어간 경우 (ㄲ, ㄸ, ㅆ, ㅉ, ㅃ) 어감이 세고, 모음 역시 'ㅏ' 보다는 'ㅓ'가, 'ㅗ' 보다는 'ㅜ'가 어감이 더 크다. 앙앙 우는 아이와 엉엉 우는 아이, 뛰뛰빵빵 달리는 자동차, 이와 같이 어떤 자음과 모음을 쓰느냐에 따라 표현하는 것이 다르다. 그림을 그린다고 치면 물감이 많은 화가가 한국어 화자들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많은 물감을 구별하며 하나씩 배워가는 수습생이 학생들이지 않을까?
우리가 영어를 배울 때, Wow! 를 Wuw로 바꾸면 또 다른 느낌이 되고 Waw로 바꾸면 또 새로운 뜻이 생긴다고 했을 때 나는 그 단어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하... 나도 한숨이 나올 것 같다.) 그 생각을 하면 천천히 물감을 구별하며 한국어라는 그림을 그려나가는 학생들이 대단하고, 온 감각을 동원하며 표현하는 우리말을 새삼 낯설게 바라본다. (생각해 보니 직장인들이 사용하는 '네' 역시 어감에 따라 달리 표현하더라..! 예컨대, 넵! 네~ 네. 넹! 넵...) 영어로 바꾸면 YES! YUP! YASS! YES... 이러려나. 외국어를 공부할 때 그 나라 말을 상황에 맞게, 느낌을 살려서 체득하기란 생각보다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언어를 통해서 세상을 바라볼 때 감각하게 되는 숨겨진 영역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면 더듬더듬 더 손을 뻗어 보려 한다. 먼 나라 체코에서 한국어로 문장을 만드는 학생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말이란 이렇게 하다 보면 어딘가에 닿게 되는 신비한 마법이 있나. 세상 곳곳을 더 세밀하게 알아가는 연습은 아마 계속될 것이다. 풍성하게 물려받은 백만 개 이상의 단어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