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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루주 Jul 04. 2024

02. 루피는 갈지(之)자로 걷는다

그런 때가 있다. 존재하는데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때, 사는 데 사는 것 같지 않을 때, 바쁘게 많은 일을 해내고 나면 하루가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는 때. 그리하여 내 두 발이 공중에 붕붕 떠서 살아가고 있는 듯 한 어느 날들. 체코에 와서 타지생활을 이어온 지 5년이 다 되어갈 무렵, 하루 하루 외국인 신분으로 맞이하는 피로에 조금 지쳐있을 때였다. 루피를 그런 날들 중 하루에 만났다. 루피는 러시아에서 태어난 웰시 코기와 폴란드에서 태어난 웰시 코기가 만나 체코의 어느 가정 집에서 태어났다. 진돗개보다 조금 작은 엄마와 말티즈보다 조금 큰 아빠 사이 어중간한 몸집을 자랑한다. 태어난 지 11개월하고 꼬박 며칠이 지났으니 아직 자랄 날이 더 남았다. 엄마의 피를 많이 물려받았다면 몸집이 클 것이다. 며칠 전 몸무게를 재니 그 사이 1kg이 자라 11kg이 되었다. 이 정도의 몸집을 흔히 중형견으로 분류한다.


조금 큰 강아지와 함께 사는 사람들이라면 이들의 힘이 얼마나 센 지 알 것이다. 같이 산책을 할 때 강아지가 무엇을 발견하기라도 하면 목에 연결된 줄은 즉시 팽팽하게 당겨진다. 한껏 커진 어깨와 단단한 앞발로 성큼 성큼 전진할 때면 인간은 힘없이 뒤에서 끌려간다. 어떨 때는 산책의 주인이 강아지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내가 강아지를 산책시키는게 아니라 강아지가 나를 산책시킨다. 발이 닿는 모든 방향은 강아지가 원하는 방향이 된다. 루피는 줄곧 일자로 걷는 법이 없다. 유유한 곡선을 그리며 한 번은 오른쪽을 또 한 번은 왼쪽을 바라보며 갈지(之)자로 걷는다. 그러다 어떤 소리가 들리거나 무엇이 보이면 일제히 걸음을 멈추고 그곳을 응시한다.


루피를 데려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걸음마다 멈추는 느린 산책에 답답한 마음이 불쑥 올라왔다. 출근 전 아침과 점심 시간에 짬을 내서 산책을 하는 것이기에 마음이 급한 것도 있었다. 빨리 가서 일해야 하는데, 왜 자꾸 멈추지. 네이버에 ‘산책 중 강아지 멈춤’, ‘산책하는데 강아지가 안 감’, ‘강아지 산책 문제 행동’ 이런 키워드들을 검색해가며 걷는 도중 멈추는 루피의 행동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찾아보았다. 하루는 멈춰 있는 루피를 들어 올려 집까지 간 적도 있다. 점심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돌아가서 일을 해야 했다. 물론 이렇다 할만한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주말 여느 때처럼 루피와 길을 나섰다. 루피는 오른쪽으로 가서 오줌을 누고 왼쪽으로 가서 꽃 향기를 맡았다. 다시 오른쪽으로 가서 나뭇가지를 입에 물고 왼쪽으로 가서 풀을 뜯었다. 모처럼 여유가 나서 그 모든 방향을 훌훌 따라갔다. 문득 루피는 멈추었다. 평소 같으면 빨리 가자며 채근했을텐데 그 날만큼은 루피의 눈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그곳에는 놀랍게도 청설모가 있었다. 이 공원에 청설모가 살았나. 놀랍고도 반가운 마음에 나도 따라 걸음을 멈춰서곤 청설모를 바라봤다. 동그랗게 말린 꼬리와 총총거리며 가볍게 움직이는 걸음. 무엇인가를 바쁘게 찾는 눈동자와 기민한 귀. 태어나서 청설모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숨을 죽이고선 청설모가 시선을 눈치챌 때까지 가만히 지켜보았다. 눈치빠른 청설모는 주의가 집중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빠르게 나무를 타고 올라갔다. 그러자 루피가 걸음을 뗐다.


순간 루피가 걸음을 멈춰왔던 수많은 날들이 훅훅 지나갔다. 잘 가다가도 멈춰 서곤 어딘가를 응시하던 루피. 루피는 그 순간에 무엇을 본 것이다. 내가 못 보고 지나친 많은 것들을 본 것이다. 정확히는 내가 보고도 중요하지 않아 흘린 많은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다. 이상한 소리처럼 들리지만 그 날의 청설모는 내게 중요했다. 돌아가서 해야 하는 일 보다 중요한 것처럼 시간을 내어 그렇게 봤다. 그렇게 보고 나니 세상에는 일보다 중요한 것이, 내 머리 속을 복잡하게 흐트리는 걱정보다 중요한 것이 더 많다는 걸 믿고 싶어졌다. 청설모를 시작으로 우리는 걸음마다 멈추며 시간을 내어 보고 또 보았다.


한 번은 지나가는 기차였고 또 한 번은 머리 위에서 떼를 지어 날아가는 새였다. 또 다른 한 번은 마주 달려오는 이웃집 강아지였고 다른 한 번은 창문에 기대어 고개를 빼꼼 내보인 고양이였다. 루피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머리 속에 떠오르는 문제들은 그 순간 존재를 감추었다. 비자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월세는 어떻게 감당하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 해도 좋을까, 지금 만나는 사람과 미래를 그리는게 맞을까, 이런 고민들은 우습게도 아주 사소한 것, 이를 테면 지나가는 바람에도 사라졌다. 그 바람을 내가 중요하게 생각할 수만 있다면.


루피의 시공간에는 과거와 미래는 없고 오롯이 현재만이 존재한다. 그 현재에만 존재하는 작은 것들을 눈에 담다 보면 갑자기 살만한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존재하고 있고 잘 살아가고 있고 오늘 하루는 청설모를 보았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오늘은 바람에 세차게 흔들리는 나무를 함께 보았다. 루피와 함께 이 모든 순간들을 빼곡히 담아 우리에게 쏟아지는 현재를 보낼 수 있다면 과거와 미래 따위는 안중에 없어도 될 것 같았다.


하나의 파도가 지나면 또 다른 파도가 올 것이다. 현재를 무너뜨리는 과거의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은 어김없이 찾아 올 것이다. 그럼에도 루피의 눈을 빌려 살 수 있다면 공중에 붕붕 떠다니는 두 발이 내려와 나는 진정 살게 되지 않을까. 우리의 산책은 계속 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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