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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루주 Aug 03. 2021

형용사로 말하는 시간

*<당연해진 말들>은 프라하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며 겪은 일들을 글로 담은 시리즈입니다. 이 글은 우리에게 익숙해진 말들을 생소한 눈으로 보는 학생들을 통해서, 한국어가 가진 특별한 점, 신기한 단어와 재미있는 표현들을 함께 공부한 자료이며, 말과 언어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이 붙은 에세이입니다. 


언어를 배울 때, 우리들이 가장 먼저 익히는 문장은 대강 이런 구조이다. '___은/는 ___이다.(이에요/예요)' 예를 들어, 나는 학생이다. 나는 한국인이다. 이 사람은 우리 엄마이다. 이것은 연필이다. 단어 몇 개로 나를 소개하고 내 주변 사람을 소개하고 물건들을 지칭할 수 있다. 그때 구사하는 말은 단조롭고 문장 자체가 핵심이다. 그 안에 숨어있는 의도를 파악하거나 혹은 반대로 의도를 심어서 얘기하기가 어렵다. 


그다음으로 배우는 것은 동사다. '___은/는 ___하다(해요)' 자요. 가요. 사요. 공부해요. 먹어요. 운동해요. 그 밖에 수많은 기본 동작들의 묘사를 배운다. 동사를 말하기 시작하면서 나의 하루 일과를 묘사할 수 있다. 물론 현재 시제만 배운 경우, 묘사할 수 있는 범위는 오늘과 가까운 미래까지의 일만 해당한다. 동사로만 말하는 문장은 참 간단하다.


오늘 뭐 해요?

공부해요.

무엇을 공부해요?

한국어를 공부해요.

왜 한국어를 공부해요?

케이팝을 좋아해요.


학생들과 동사로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주관적인 생각이 개입되지 않은 사실만을 전달받는 느낌이 든다. 오늘 무엇을 공부하고, 무엇을 먹고, 어디에 가고, 누구랑 가는지. 이를 듣고 있으면 마치 사주풀이하기 전에 생년월일을 전달받는 무속인이 된 기분이다. 적은 정보만으로 앞에 있는 사람을 파악해야 한다. 이 사람이 어떤 성향의 사람이며 평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에 이 정보들은 충분하지 않다.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는 알아도 어떤 사람인지는 알 수 없다. '어떻게'에 대한 말의 주고받음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어떻게에 대한 대화는 형용사를 배우면서부터 시작된다. 보통 과거 시제를 배운 다음 형용사를 배우곤 하는데, 종종 어떻게 느꼈는지에 대한 질문은 과거의 일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다가올 미래에 대해서 내가 느낀 감정을 묘사하기란 (미래를 몰라서 두렵다, 혹은 설렌다를 제외하고는) 쉽지 않다. 우리가 나누는 대화는 보통 과거에 대한 것이며 방금 전까지의 일과 일을 둘러싼 사람, 그것에 대한 감정들에 대한 것이다. 이것들이 모여 형성한 역사가 한 사람의 우주를 만든다. 그 우주를 궁금해하고 알아가는 것이 대화가 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형용사*로 말하는 시간은 그 탐구의 과정이다. 며칠 전에 학생과 함께 형용사를 배웠다. 모두 사람을 묘사하는 단어들이었다.

(*한국어는 우리에게 익숙한 영어와 다르게 형용사라는 달리 사용한다. 동사와 형용사를 합쳐서 용언이라 부르며 이는 모두 서술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명사를 수식하는 형용사의 경우, 관형사라고 부르며 용언의 어미가 바뀐 형태를 띤다. 행복하다-용언(형용사)-서술 / 행복한-관형사-명사 수식)


친절해요. 착해요. 다혈질이에요. 용감해요. 멋있어요. 재미있어요. 지루해요. 재미없어요. 못 생겼어요. 조용해요. 말이 많아요. 소심해요. 부지런해요. 게을러요. 


우리는 가족사진을 보며 사진 속 사람들을 형용사로 묘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형용사로 말하는 시간이다. 학생과 나란히 앉아 사진을 보며, '누구예요?'하고 내가 물으면, 학생은 '할아버지예요.'라고 답했다. 다시 내가 '할아버지가 어때요?'하고 물으면, 학생은 '할아버지가 너무 좋아요. 그런데 다혈질이에요. 그리고 말이 많아요. 시끄러워요. 재미있어요. 착해요.'라고 말했다. 사진을 바라보면 꼭 사진 속 할아버지가 나를 향해 약간은 불편하고 시끄러운 농담을 던지고 앉은 후 내게 물 한 잔을 건넬 것 같았다. 인물들이 입체적으로 살아나는 순간이다.


사진 속에 사람들을 하나씩 얘기하고 마지막으로 학생에게 물었다. 그럼 '나'는 어때요? 학생은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질문을 들은 사람처럼 놀라더니 천천히 생각했다. 그리곤 '음.... 재미없어요. 게을러요. 지루해요. 조용해요. 똑똑해요.'라고 얘기했다. 나는 내가 느낀 학생에 대해 얘기했다. '나한테 학생은 친절해요. 착해요. 부지런해요. 똑똑해요. 겸손해요. 조용해요.' 학생은 겸손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겸손하다는 것은 실제의 나보다 내가 생각하는 나를 조금 더 작게 볼 줄 아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다음 시간에 물건과 경험에 대한 형용사를 배우기로 했다. 영화가 어땠어요? 여름휴가가 어땠어요? 책이 어땠어요?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단어들을 배우고 또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그럼 영화와 여름휴가와 책을 핑계로 학생을 더 많이 탐구할 수 있는 시간들이 있을 것이다. 형용사를 배우기 시작한 학생과의 대화는 명사와 동사로만 이루어진 대화와 결이 다르다. 더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며 예측 불가능한 말들이 툭툭 튀어나온다. 내 안에서 그 말들은 조각하는 칼날처럼 예리하게 그 사람의 윤곽을 잡아 나간다.


그와 동시에 쉽고 빠르게 누군가를 판단한 순간도 떠오른다. 동사만 듣고 나 스스로 짐작한 형용사들이 얼마나 많은 지. 대부분 직접 얘기를 나누지 못 한 누군가의 그랬다더라 하는 소식들이다. 그 안에는 형용사는 모두 빠지고 동사만 남는다. 누가 취업했대. 누가 승진했대. 누가 집을 샀대. 누가 복권에 당첨됐대. 누가 생일이래. 누가 헤어졌대. 누가 뭐 했대. 그 적은 정보 안에서 쉽게 그들의 형용사를 결정한다. 그래서 기쁘겠다, 그래서 슬프겠다, 그래서 아프겠다, 그래서 행복하겠다, 그래서 그러하겠다. 이런 쉬운 판단 속에 가려진, 내가 알지 못 한 사적인 형용사들은 아마 그들 삶 속에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만들고 있을 것이다. 


무엇을 했는 지보다 어떻게 느꼈는지를 묻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지금 무엇인지보다 어떤 상태인지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한 번 정해져서 잘 변하지 않는 명사 말고 눈에 보여서 쉽게 판단하기 쉬운 동사 말고 깊숙한 형용사를 말하고 듣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때야 비로소 그 사람을 조금 알게 되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야 비로소 그 사람에 대해 조금 판단할 자격이 주어지지 않을까 싶다.


시시각각 변하고 말도 안 되는 조합으로 마음을 어지럽혔다 사라지는 형용사들에 대해. 수많은 '나'들만이 가지는 내적이고 친밀한 묘사에 대해. 그 관심을 부지런히 가져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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