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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이 Aug 31. 2019

[안식년 7화] 1일 1책



참다 참다 에어컨을 켰다. 에어컨 없이는 도저히 살 수 없는 날씨가 왔다. 얼음 가득 든 오렌지 주스를 준비하고 책을 읽기 시작한다. 에어컨 바람과 시원한 주스 그리고 책. 이것이야 말로 완벽한 여름날의 오후다. 이 완벽한 상황에 감탄하고 있는 나를 남편은 신기한 눈으로 쳐다본다. 정확히 말하면 책 읽는 내 모습을 신기하게 보고 있다.
남편은 책 읽기가 너무 싫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제일 싫었던 수업이 책 읽기였고 제일 싫었던 숙제가 독후감 이이었다고 한다. 읽으라고 하니 억지로 읽는 거였으므로 느낀 점이 있을 리 없는데 느낀 점을 쓰라니 너무나 힘들었다고 한다. 그런 자신과 너무 다른 아내의 모습이 신기하고 심지어 멋있다고 한다. 24시간 붙어 있어 자칫하면 서로가 지루할 수 있는데 여기서 매력 어필 한 번 하여 남편에게 신선함을 더 할 수 있다니. 여러모로 좋은 목표이다.

사실 이런 독서에 대한 욕구는 요즘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 알쓸신잡에서 비롯되었다. (이제 3번째 반복 시청 중이다.) 식당 운영할 때 내가 절대 보지 않은 프로그램 2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윤식당(강식당도 마찬가지)과 알쓸신잡이었다. 윤식당은 그것을 보는 동안 노동생활의 연장으로 느껴져 싫었고 알쓸신잡은 당장 먹고살기도 바쁜 생활에(식당은 이 말이 순수하게 적용되는 곳이다) 나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삶으로 느껴져 싫었다. 서로 상반된 이유지만 싫은 것은 같았다. (비슷한 이유로 작장생활 할 때는 다들 보는 미생을 보지 않았다.)

그런 내가 매일매일 ‘알쓸신잡’ 다시 보기를 하고 있다. 밥 먹을 때도, 설거지할 때도, 운동 할 때도, 자기 전에도, 한 토막씩 보는 게 낙이다. 서로 너무나도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같은 주제로 이야기하는데 어쩜 이렇게 다른 의견이 존재하는지 놀라울 뿐이다. 그리고 난 여기에 더할 의견 하나 없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2년 간의 식당 생활은 집과 식당만을 오가는 삶의 연속이었고 그 외의 것은 사치로 느껴졌다. 자유 시간도 거의 없었지만 있다면 잠 자기 바빴고, 그나마 체력이 남으면 밖에 나가 밥 먹고 쇼핑하는 게 전부였다. 그런 시간이 쌓여 갈수록 공허함은 커지고 그것은 우울함으로 이어졌다. 안식년을 시작하게 된 이유 중 하나이다.

이제 알쓸신잡은 나에게 편안함을 준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들처럼 되고 싶게 만들었다. 다양한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더 풍부하게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독서였다. 이왕 안식년 시작했으니 좋아하는 것을 맘껏 하자는 생각과 그래도 조금 생산적인 것을 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에 모두 맞닿아 있는 것이 독서이기 때문이다. 책 속에는 다양한 지식이 있고 내가 좋아하는 책으로 지식을 접한다면 이는 지루하거나 어렵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이번 안식년에는 책을 마음껏 읽어보려 한다.

그래서 오늘도 시원한 에어컨 아래 음료수와 책 한 권을 들고 여유를 만끽하고 있다. 그런데 얼마 안가 졸리기 시작한다. 점심에 내가 좋아하는 돼지고기 묵은지찜을 너무 많이 먹어서인가 아침 운동을 격렬히 해서 인가.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그러다 얼마 안가 책을 덮고 옆에서 공부하고 있는 남편을 슬슬 건드린다. 오늘따라 이발하지 않은 구레나룻이 신경 쓰인다. 심한 곱슬머리인 남편은 머리가 조금만 길어져도 제이지(카카오톡 캐릭터. 래퍼 아님)가 되므로 자주 잘라 주어야 하는데 안식년이라는 핑계로 머리를 잘 깍지 않는다. 깎으라는 압박을 담아 구레나룻을 동그랗게 문지른다. 그래도 반응 없는 남편의 옆구리를 간지럽힌다.
애써 집중하려는 남편은 손가락으로 요리조리 간지럼 태우는 나를 피하다가 노트북에서 고개를 든다.

가장 집중 안 되는 시간에 책을 읽으려 하니 졸리지. 피곤하면 좀 자고 나서 해.
안돼. 지금 자면 또 밤에 일어날 걸. 그럼 하루를 날렸다는 생각에 엄청 우울해져.
그렇다고 날 계속 괴롭힐 거야?
조금만 나랑 놀아줘. 나 잠만 깨고 다시 책 읽을 거야.
피곤하면 그냥 좀 쉬어. 책은 내일 읽어도 되잖아.

오늘 꼭 지금 이 시간에 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나에겐 1일 1책이라는 목표가 있다. 안식년에 무슨 목표까지 세우며 책을 읽어야 하나 싶겠지만 아무런 목표가 없는 안식년은 전과 다를 바가 전혀 없어진다. 더구나 책 읽기는 아무런 스트레스도 주지 않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는 점이 안식년에 딱 맞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 때 아 오늘 나는 책 1권을 다 읽었구나 하는 뿌듯함과 적절한 피곤함이 생겨 편안하게 잠들 수 있게 한다. 우리에겐 약간의 강제성이 필요하다. 남편 귀찮게 하기를 그만두고 온전한 내 시간으로 돌아간다. 함께 있지만 잠시 떨어져 있는 시간. 안식년에는 약간의 고독함이 필요하다.

졸려서 미칠 것 같으면 스콘을 하나 꺼내 든다. 간식을 먹으며 잠을 보내고 책을 읽는다.

처음에는 평소 내가 좋아하는 장르의 책만 골랐다. 오랜만에 읽는 책이다 보니 어려운 책으로 시작하면 금방 포기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전등에 불이 들어오는데 시간이 필요하듯이 나에게도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여기서 잠깐 제 취향을 소개하자면, 저는 추리 소설 마니아입니다. 셜록, 루팽, 애거사 같은 고전 추리 소설은 기본이고 요 네스뵈, 스티그 라르손과 다비드 라게르크란츠의 밀레니엄 시리즈, 그리고 요즘에는 미야베 미유키 책을 탐독 중이다.

하지만 이런 책만 읽는다는 것은 비슷비슷한 경험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다 다양한 경험을 하기로 한 나는 요일별 다른 책을 읽기로 했다. 월요일은 추리소설 (월요병은 누구에게나 있으니까), 화요일은 현대 한국소설, 수요일은 사회 과학, 목요일은 고전 문학, 금요일은 에세이 그리고 주말이나 법정 공휴일은 일반 노동 생활인처럼 깔끔하게 논다. 대부분 소설인데요? 이게 무슨 다양한 경험이에요?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것 위주로 하는 게 안식년이라는 변명을 해 본다.

1일 1 책이라는 목표에는 300페이지 정도의 책이 딱 적당하다. 오후에 3시간, 저녁 먹고 2시간 정도 천천히 읽으면 충분히 소화한다. 하지만 문제는 700쪽이 넘는 두꺼운 책에서 발생된다. 아무리 빨리 읽어도 1페이지를 1분 안에 못 읽는 내 특성을 고려하면 700페이지를 아무리 타이트하게 읽어도 12시간은 걸리는데 이렇게 하려면 아침 4시간 오후 4시간 저녁 4시간을 온전히 써야 한다. 식사시간은 1시간으로 타이트하게 잡아야 하고 중간에 쉴 수도 없다. 남편이 시답지 않게 던지는 농담을 받아 줄 시간도 없으며 같이 장 보러 가자는 애교에도 응할 수 없다. 그렇게 시간에 쫓겨 책을 읽다 보면 글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책장 넘기기에만 집착하게 된다. 그 순간 책장을 읽는 게 아닌 전화번호 책 넘기듯이 책을 넘기게 된다. 그것은 독서가 아니다. 그래서 300페이지 이상의 책은 이틀의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읽는다. 그리고 300페이지 이하의 책이라도 이해하기 어려운 책은 얇아도 여유를 두며 읽는다. 다독만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책을 한 권 끝낸다는 것은 하나의 완성된 지식을 얻는 느낌이었다. 내용이야 어떻든 작가가 쓴 하나의 지식. 그것을 온전히 알아내었다는 기쁨. 그리고 약간의 노곤함. 그것을 안고 잠이 들면 편안한 마음으로 잘 수 있다.

이제 알쓸신잡에도 문을 열었으니 윤 식당에도 마음이 열렸을까 하고 다시 보기를 눌렀다. 아직 윤식당은 마음의 준비가 안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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