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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영준 Dec 05. 2020

글쓰기법칙

27_다상량

‘다상량多商量’을 ‘많이 생각하기’라고 이해하지만 국어사전에서 ‘상량商量’을 찾아보면 ‘헤아려 생각하다’라고 풀고 있습니다. ‘상량’은 ‘헤아리기’와 ‘생각하기’를 합친 행위입니다. 일방적으로 혼자만의 생각을 하지 않고 여러 가지로 헤아려 생각하는 것이 상량입니다. 혼자만의 생각을 하면 섣부르고 성급한 판단을 내리기 쉽습니다. 섣부른 생각은 잘못된 판단을 부르지요. ‘헤아리기’는 그런 실수를 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상량'은 단조롭게 생각하는 것을 넘어선 '궁리하기'의 과정으로 보입니다.      


‘헤아리기’는 복합적 사고방식입니다. 책을 쓴 사람의 입장과 현재 그 책을 읽는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 생각을 현안懸案에 비추어 검증해야 합니다. 좀 더 깊이 상량商量하기 위해서 저자가 책을 쓰게 된 배경이 되는 사회 상황을 고려하고, 지금의 환경도 비교해야 합니다. 저자의 주장이 상황에 관한 것인지, 본질에 관한 것인지 검토해야 하고, 그런 저자의 생각을 자신의 생각과 비교하여 자신의 생각과 저자의 생각이 본질적으로 동일한지 여부도 살펴야 하죠. 만약 독자가 저자의 생각과 다르다면 자기 생각을 버리고 저자의 주장에 동조할 것인지, 독자의 생각을 지키고 저자의 생각을 비판할 것인지도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옵니다.    

 

독서에서의 필수적인 ‘헤아리기’는 책과의 이런 깊은 대화를 통해 완성됩니다. 다상량多商量은 책의 주장을 독자의 내면에 체화體化하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솔직해야 합니다. 책을 읽으며 기존에 가지고 있던 바꾸었다고 해도 그것을 비난할 사람은 없습니다. 성실한 독서는 어쩌면 과학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합니다. 과학자는 자기주장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습니다. 과학은 그런 주장에 이르게 된 과정과 데이터를 공개하여 다른 과학자로 하여금 그 사실을 검증해 볼 수 있게 하지요. 다른 과학자들의 검증을 통해 사실이 뒤집히면 원래의 주장자는 불만 없이 자기주장을 철회합니다. 과학이 발전하게 된 것은 이런 검증의 자유로움과 자기주장을 철회하는 유연함 덕분입니다. 독서도 그래야 합니다. 독서를 통해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것은 몇 줄로 요약할 수 있는 얄팍한 지식이 아니라, 자유로움과 솔직함, 그리고 유연함입니다. 유연함을 얻기 위한 사고방식思考方式이 바로 다상량多商量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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