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 Rex(티렉스) | Cosmic Dancer(코스믹 댄서)
xl나는 분홍색을 싫어하고 파란색과 검정색을 좋아하는 여자 아이였다. 그리고 치마 입는 게 싫어서 엄마와 다투는 일이 잦았다. 치마를 입으면 고무줄놀이나 철봉 놀이, 그밖에 뛰어 노는 모든 경우에 불편했고 남자 아이들의 소위 ‘아이스케키’를 견뎌내야 했으며 무엇보다 내 눈에 치마는 예뻐 보이지 않았다. 나는 ‘머슴아’같다는 얘기를 많이 들으며 자랐고 성인이 되어서는 차림새와 머리 모양 때문에 남자로 오인 받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내 뒷모습을 보고 무심코 여자화장실에 뒤따라 들어온 남자, 여탕에 들어가려는데 나를 제지하던 아주머니, 어느 골목길에서 “남자에요, 여자에요?”라고 천진하게 묻던 아이들. 성별이 궁금한 이유도, 성별을 판단하는 기준도 참 모호하면서 명확했다. 그리고 모두들 멋쩍은 웃음을 짓거나 볼 멘 소리로 불평을 했을 뿐, 본인의 실수에 사과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나는 반짝이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차갑고 아름다운 엄마의 액세서리, 색색으로 빛나는 화장품, 고운 무늬가 들어간 색유리와 타일, 다양한 박자로 깜빡이는 크리스마스 전구, 매끈하게 곡선을 이룬 에나멜 구두 같은 것을 보면 언제나 만지고 싶거나 갖고 싶었다.
그래서였을까. 폭발할 듯 반짝이는 비주얼과 음악, 오스카 와일드의 탐미주의와 글램 록(Glam Rock)에 대한 오마주로 가득한 영화 <벨벳 골드마인>(Velvet Goldmine, 감독 토드 헤인즈, 1998)을 보았을 때 큰 울림과 함께 눈이 번쩍 떠지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 바로 그 영화에서 T. Rex의 ‘Cosmic Dancer’라는 곡을 처음 듣게 되었다.
I danced myself right out the womb
I danced myself right out the womb
Is it strange to dance so soon
I danced myself right out of the womb
난 춤을 추며 태어났죠
난 춤을 추며 뱃속에서 나왔죠
그렇게 일찍 춤을 춘 것이 이상한가요
난 춤을 추며 태어났어요
Is it wrong to understand
the fear that dwells inside a man
What's it like to be a loon
I liken it to a balloon
인간의 내면 속에 사는 공포를
이해하는 것이 잘못된 건가요
미치광이가 되면 어떤 기분일까요
그건 풍선이 된 기분일 거야
I danced myself right out of the womb
I danced myself right out of the womb
Is it strange to dance so soon
I danced myself into the tomb
But then again once more
난 춤을 추며 태어났죠
난 춤을 추며 뱃속에서 나왔죠
그렇게 일찍 춤을 춘 것이 이상한가요
난 춤을 추며 무덤에 들어갔죠
하지만 그때 다시 한 번 춤을 추었죠
시적인 가사 안에는 세상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하는 사람의 특성이나 재능, 그리고 편견에 의해 ‘다른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듯 했다. 몇 년 뒤,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첫 장면에서 이 음악을 다시 듣게 되었을 때 정말 반갑고 기뻤으며 이전과는 또 다른 울림으로 다가왔다.
누군가 턴테이블 위에 T. Rex(티렉스) 레코드판을 올려놓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바늘을 얹는 손이 보인다. 동그란 판이 돌아가면서 Cosmic Dancer가 시작된다. 그리고 누군가 침대 매트리스 위에 올라 뛰기 시작한다. 두 팔을 펄럭이며 힘차게 움직이는 소년은 마치 날아오르는 것 같다. 아름답다. 화면 가득 춤을 추는 사람의 이름은 빌리, 영국 잉글랜드 북부 더럼 카운티에 살고 있는 11살 소년이다. 어머니는 병으로 돌아가셨고 알츠하이머 증상을 보이는 할머니를 돌보며 탄광촌의 광부인 아버지, 형과 살고 있다.
〈빌리 엘리어트〉(Billy Elliot, 감독 스티븐 달드리, 2000)에서 빌리가 살고 있는 에버링턴은 가상의 마을이지만 아버지와 형의 파업은 실제로 있었던 영국 광부 파업(1984~1985년)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1979년, 노조를 겨냥한 법질서 회복, 친 기업 정책 등을 중심으로 한 신자유주의적 노선을 걸고 승리한 마거릿 대처 수상은 1984년에 탄광 폐쇄와 인력 감축 등 석탄 산업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시작한다. 전국광부조합은 전면 파업을 선언하며 반대 투쟁을 시작하지만 대처 정부는 석탄 비축과 대체연료 대책을 세워 놓았기 때문에 1년 정도의 파업을 견딜 수 있는 완충재를 마련한 상태였다. 그리고 무장한 경찰력을 투입해 노조의 파업을 강경 진압하는 동시에 일을 하겠다는 광부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등 다양한 전술로 노조를 압박했다.
임금을 받지 못하는 광부들은 생활고에 시달리다 점차 파업을 중단했으며 그렇게 피켓 라인을 넘어 일을 하러 가는 광부들에게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혔다. 빌리의 아버지가 어머니의 유품인 피아노를 부숴 땔감으로 쓰면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는 이런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리고 1985년 3월 3일, 노조의 지도부는 조합원들에게 업무 복귀 명령을 내리며 항복한다. 잔인할 정도로 냉혹한 대처의 정책은 많은 비난을 받았으나 결국 탄광은 폐쇄되었고 석탄 산업은 민영화의 길을 걸었다.
이와 같은 배경으로 광부들의 파업이 한창이던 마을은 무겁고 날카로운 공기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어느 날, 빌리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복싱을 배우러 체육관에 간다. 아버지는 남자라면 축구나 복싱을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빌리는 관심이 없다. 정작 그 곳에서 발견한 건 여자 아이들의 발레다. 본능적으로 그 무리 속을 향해 걸어 들어가는 빌리, 감정 표현에 서툴고 아버지의 윽박지름에 주눅이 들어 있던 소년은 그 안에서 전기가 통하는 것 같은 강한 불꽃을 만난다. 그렇게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그러나 생존을 위해 목숨 건 싸움을 하고 있던 아버지와 형의 눈에 발레를 하겠다고 선언하는 빌리는 철없는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발레란 귀족이나 부유한 사람들, 게다가 여자들이 하는 춤이 아닌가. 노조 핵심세력인 형이 경찰에 구속되는 사건으로 인해 아버지 몰래 준비하던 오디션의 기회는 날아가 버린다. 집으로 찾아 온 윌킨슨 선생의 격정적인 설명과 설득에도 아버지와 형은 빌리의 꿈을 인정하지 않는다.
눈이 내리는 크리스마스의 밤, 빌리의 변화와 재능을 지지해 온 친구 마이클은 빌리의 뺨에 입을 맞춘다. 발레를 좋아한다고 게이(gay)는 아니라는 빌리에게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달라고 하는 마이클, 빌리는 웃으며 친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둘이 체육관에서 춤을 추다가 아버지에게 발각되는 순간, 빌리는 단호함과 진심을 담은 춤으로 격렬하게 자신을 표현한다. 그 모습을 본 아버지는 크게 놀라며 마음을 바꾸게 된다. 소년은 이제 가족과 마을의 지지를 받으며 발레리노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곡을 만든 마크 볼란(Marc Bolan, T. Rex)은 영국의 음악가이자 시인이며 ‘글램 록(Glam Rock)’이라는 장르를 만든 선구자이다. 또 다른 글램 록 스타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와 함께 퀸(Queen), 오아시스(Oasis), 더 스미스(The Smiths) 등 수많은 음악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글램 록은 사이키델릭 록과 아트 록의 흐름에서 탄생했고 강렬하면서 중성적인 시각적 이미지가 중요한 특징이다. 록 역사상 처음으로 성 정체성을 화두로 던지기도 했고 고정된 성별 정체성에 대해 반기를 들며 1970년대에 큰 인기를 얻었다.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 생업 전선이 파괴되어 버린 탄광촌에서, 그것도 가난한 가정에서 빌리가 발견된 것은 이질적인 일이다. 소년이 자기검열을 넘어 꿈을 향해 날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곁에서 성별이나 환경에 대한 편견을 깨뜨려 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윌킨슨 발레 선생, 게이 친구 마이클, 사고의 경계가 없던 할머니, 그리고 편지로 존재했던 어머니가 그렇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사고의 흐름과 가치관, 살아 온 역사, 외형적인 취향, 식습관과 신체적 특징 등 타인과 비슷한 경우도 있지만 온전히 ‘같은’ 경우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에서 요구하는 특성, 자질 등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다움’을 강요받으며 살아간다. 특히 차별과 편견,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은 자라나는 아이들의 창의적인 세계를 옭아매며 진정한 ‘나다움’을 찾아가는 길을 방해한다. 우리는 모두 다른 만큼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 다만 고유의 특징을 있는 그대로 두고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면 된다. 다른 건 잘못되거나 틀린 것이 아니다.
끝으로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담보할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만인선언 ‘평등하다’의 <만인선언문>을 함께 싣는다. 성별과 장애 유무, 성적 지향, 학력 등을 이유로 한 모든 차별을 금지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2007년 국회에서 발의되었고 15년이 지난 현재까지 계류 중이다. 지난 5월 2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평등법(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국회 공청회가 열렸지만 국민의힘이 보이콧하여 민주당 법사위원들과 추천 진술인 3명으로만 진행됐다.
모든 사람은 존엄하며 자유롭고 평등하다.
우리는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국적, 피부색, 출신지역, 외모,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전과,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학력, 고용형태, 병력 또는 건강상태, 사회적신분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다.
모두의 존엄과 평등을 위해 우리는 요구한다.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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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창원 노동사회교육원, <연대와 소통> 64호(2022년 여름호)에 전게(前揭)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