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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 Feb 15. 2022

[그럼에도 우리는 ④] 우리 집 세리머니

- 음악하는 두 여자와 열아홉 고양이 두 마리의 이야기

우리 집 세리머니


보통 뜀박질을 즐기거나 몸을 재게 움직이는 건 오로였다. 스크래쳐, 방석, 숨숨집, 낚싯줄 등이 택배로 도착하면 오로가 먼저 관심을 보이며 자신의 냄새를 묻혔고 그 후에야 조로가 미적미적 다가오곤 했다. 그래서 나는 은연중에 조로가 좀 더 정적인 성격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에게 새로운 동네였던 곳이 익숙한 동네로 바뀌고 방마다 볕이 드는 창문이 있는 지금의 집으로 이사 왔을 때, 처음으로 전력 질주하는 조로를 보게 되었다. 야무지게 네 발을 교차하며 달리는 오로와 달리 겅중겅중 어설프게 달리는 모습이었다. 그동안 살아왔던 집들은 마음 놓고 뛸 수 없는 공간이었던가 싶어 속이 상하다가도 기쁜 얼굴로 열심히 뛰는 조로를 보면 그저 대견했다.


그 이후로 우리 넷의 공동 노력으로 발전시킨 세리머니가 있다. 오로와 조로는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나오면 달리기 시작한다. 그러면 두 명의 인간이 그 뒤를 이어 ‘아유, 잘했어’를 여러 번 외치고 손뼉 치며 달린다. 방방마다 들락거리다 캣타워 꼭대기에 올라가 창문을 내다보는 게 그 행위의 정점이다. 어느 날 열심히 뛰고 난 오로가 절뚝거리는 모습을 본 뒤로는 속도를 조절하려 애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집 세리머니는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작년 겨울, 조로는 많이 아팠다.

장 무력증으로 시작된 거대결장이었다.

조로의 공허한 시선을 발견하는 날이 많아지고 늦은 밤, 이른 새벽마다 고통 어린 울음소리에 잠이 깼다. 먹어야 하는 약도, 병원에 가는 일도 늘어났다. 우리의 일상은 조로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슬쩍슬쩍 눈물을 훔치는 일이 잦아졌다. 원래도 붙임성이 좋은 편이었지만 조로는 점점 더 우리들과 살을 맞대는 시간을 원했다. 팔을 베고 잠이 들기도 하고 손 위에 앞발을 얹어놓은 채 한참을 마주 보고 누워 있기도 했다. 우리들이 움직이는 대로 졸졸 쫓아다니기 일쑤였다. 쪽잠을 자고 일어났을 때 코 앞에 잠이 덜 깬 조로의 얼굴이 있었다. 내 눈과 마주치면 초록색을 띤 맑은 눈을 꼭 감고는 ‘우앙-’하고 인사를 한다. 그러면 나는 항상 웃음이 났다. 춥고 길었던 겨울의 밤들이 쌓이고 해가 바뀌었다.


1월 4일 오후 4시에 조로는 우리 곁을 떠났다. 2002년 월드컵, 한국 4강 진출의 함성과 함께 태어났던 조로는 올해로 열아홉 살이었다.


침대를 좋아하던 조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1박 2일로 강원도에 다녀왔다.

물속에 들어가서 수영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최근 1,2년 동안 나는 자주 아팠다. 원인과 증상도 다양했다. 일을 하다 낙상으로 인해 오른발 뼈가 부러져서 오래 고생했다. 왼발에 비해 작아진 오른발은 아직도 걸을 때 순간순간 아프다. 성대 폴립 수술, 자궁 근종 수술로 입・퇴원을 반복했고 디스크 때문에 양말이나 신발 신기가 힘들어졌다. 최근에는 고관절에 무리가 와서 병원에 다니고 있었다. MRI 촬영 이후 3차 병원으로 가라는 의사 소견을 듣고 추천해 준 병원을 예약해 둔 상태다. 사실 이 모든 상황에 도무지 적응할 수가 없다. 내 몸은 갑자기 내 것이 아닌 양 마음대로 움직이기 어려워졌고 반복되는 일상의 많은 부분에 고통이 수반된다. 건강하지 않은 몸을 운용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님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처음 가 본 소돌해변은 작고 아름답고 깨끗했다. 바다에 가는 내내 고관절 통증 때문에 수영할 수 없을까 봐 두려웠는데 물속에 들어가자 몸은 희한하게 부드러워졌다. 자유형은 물론이고 평영도 소극적으로나마 구사할 수 있었다. 급하게 예약했던 숙소는 꼼꼼하지 못했던 나의 실수로 인해 여러 가지 불편함이 도사리고 있었지만 바다수영을 성공하고 난 뒤에는 모든 게 그럴싸해 보였다.


점심 나절 집에 돌아오자 오로가 반가움과 원망을 동시에 담아 긴 울음을 울며 우리를 맞이했다. 조로가 떠난 뒤 오로는 좀 달라졌다. 처음엔 조로를 찾는 눈치였다.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었다가 법석을 떨던 우리들 앞에 슬그머니 나타나거나 애옹거리며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그때마다 우리는 울먹이며 오로를 쓰다듬거나 끌어안았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조로를 병원으로 데려간 뒤 유골함만 들고 돌아왔으니 오로는 의아했을 것이다. 큰 방 선반 위, 동동이와 시로 옆에 조로가 있노라고 어떻게 오로에게 설명할 수 있을까. 오로는 식욕이 감소했고 주 생활공간이 바뀌었다. 우리는 집안 구조를 바꾸고 침대를 낮췄다. 오로를 애지중지하며 과잉보호하기 시작했고 아주 작은 변화만 보여도 전전긍긍했다. 몇 주가 지나자 오로는 서서히 사람 곁으로 돌아왔다. 몇 주가 더 지나자 침대에서 함께 잠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난 오늘, 우리는 오로를 끌어안으며 다녀왔다고 인사를 했다. 여행에 가져갔던 짐을 정리하고 수영복과 옷가지들을 빨아 널고 삶은 계란과 콩나물을 넣은 쫄면을 만들어 먹었다. 화장실에 들어가 모래를 북북 긁던 오로는 배변 후에 달리기 시작했고 우리들은 그 뒤를 쫓아 박수를 치며 뛰었다. - 2021년 8월 20일. Fin.


베개를 좋아하는 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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