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처음 라온이를 만난 건 2개월 된 강아지였을 때였다.
그때의 나는 이미 7살의 작은 암컷 믹스견을 키우고 있었고 논산으로 귀촌한 지도 1년이 채 안되었을 때였다.
내가 귀촌을 하고 다음 해에 이웃으로 두 집이 더 귀촌을 하였는데 나를 논산으로 내려올 수 있게 도와준 부부의 지인들 이어서 쉽게 친해질 수 있었고 그들은 나와는 다르게 모두 집을 새로 지어서 들어왔고 두 집 중에 하나가 라온이의 집이었다.
라온이의 주인들은 도시의 아파트에서 이곳으로 이사를 오는 것이었는데 라온이를 너무 일찍 분양받게 되는 바람에 대식구가 사는 작은 아파트 실내에서 쑥쑥 커버리는 이 풍산개를 감당 못해 사람도 개도 모두 힘든 생활을 하게 되었다며 이사오기 전까지 한 달 정도만 라온이를 임보 해줄 수 있겠냐는 부탁을 받은 것이었다.
그렇게 라온이는 가족과 떨어져 조금 일찍 시골로 내려왔고 나와 쫑이의 집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2개월이라 해도 풍산개이다 보니 7살이 넘은 쫑이보다도 훨씬 컸고 예민하고 사교적이지 않은 쫑이는 천방지축 라온이의 장난에 생전 처음 들어보는 앙칼진 목소리로 짖어대서 그저 누나와 놀고 싶은 라온이를 받아주지 않았다.
아마도 그때 이미 둘의 서열이 깔끔하게 정리된 듯하다. 지금 몇 배는 더 큰 라온이가 이 작은 쫑이에게 꼼짝을 못 하는 것 보면 말이다.
덩치만 컸지 어린 강아지라 라온이는 나의 모든 옷을 물어뜯었고 호기심에 이것저것 먹는 통에 그 짧은 한 달의 임보기간 동안 동물병원으로 달려가기도 하고 이런저런 사건사고들로 나를 웃게 해 주며 사랑을 듬뿍 주게 되었다. 그러다가 한 달이 쏜살같이 지나갔고 드디어 라온이의 주인들이 이사를 왔으며 그 사이 또 라온이는 쑥쑥 자라서 더 커진 라온이를 위해 주인은 집을 짓고 남은 자재로 라온이의 집을 아주 커다랗고 멋지게 지어서 문 앞에 자리 잡아주었다.
그리고 그 자리는 우리 집 마당에서 바로 보이는 자리였고 라온이와 나는 그 정도의 사이로 4년을 보냈다.
귀촌한 우리는 아주 친하게 지냈으며 언니라 부르며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기에 라온이가 커가면서 겪었던 많은 일들을 함께 공유하며 웃고 울었다. 나름 나는 개를 키우고 있는 경험자이고 새로 이사 온 두 집은 처음 개를 키워보는 지라 행여라도 이놈들이 목줄을 풀고 자유를 만끽하고 있으면 내가 선두가 되어 해결하곤 했었다. 정작 내가 키우는 개는 5킬로도 안 되는 소형견이고 그들은 덩치 큰 대형견들이었는데도 말이다.
라온이의 주인 부부는 주말에만 내려왔다.
시골집은 어머님이 관리를 하셨고 아이들은 기숙사생활을 해서 부부만 금요일밤에 내려와 월요일 새벽에 올라가는 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이사 온 첫 해 여름휴가 때 언니는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갔다가 많이 진행된 암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렇게 3년을 투병하다 돌아가셨다.
그 3년 동안 우리는 30년을 알고 지낸 사람처럼 내 인생에 큰 축이 되었고 함께 아파하고 고민하고 해결해 나갔다. 그리고 나는 그녀가 라온이를 걱정하는 마음을 알았기에 언제나 라온이는 걱정하지 마 내가 있잖아!라고 안심시켰다. 언니는 19년 7월에 돌아가셨고 그 시기 가족과 우리 모두 언니에게 집중하느라 라온이를 못 챙기는 바람에 결국 심장사상충에 결리고 말았다. 다행히 완치를 했지만 지금도 그때의 라온이를 생각하면 너무나 마음이 짠하다.
언니가 떠나고 남은 가족들이 다시 서울로 올라가게 되면서 라온이는 내가 입양을 하게 되었다.
그때가 20년 1월 말이었다.